국뽕의 유전학, 한국인의 암내 유전자
한국에 사는 한국인인 덕분에 나는 체취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그럴만한 경험을 한 적도 없었다. 여름이면 이따금 스스로 느끼던 암내 정도가 거슬렸고, 일본에서 유행한다던 겨땀 티슈나 스틱형 데오드란트도 두어 번 사보았으나, 사용의 불편에 비해 체취가 심한 문제가 아니어서 가끔 쓰다 버리곤 했다.
출장에서 돌아오던 길이었다. 유럽 내에서만 운항하는 4열 배열의 작은 항공기였다. 옆 자리에 금발의 키가 크고 늘씬한 코카시안 여자가 앉았다. 자리를 잡고 책을 꺼냈는데, 그녀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엄청난 암내가 코에 끼쳤다. 2시간의 비행 동안, 마냥 숨을 참을 수도 없고, 어디 도망을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나는 난생처음으로 생면부지의 무죄한 타인에 대하여 깊은 원망을 품었다. 그 사건으로 나는 처음으로 인간의 체취에 대해 자각했다.
대학원생 시절, 우리 연구실에는 인도인 학생이 한 명 있었다. 그녀는 꼼꼼하고 깔끔한 성격이었음에도, 암내가 엄청났다. 매년, 겨울을 지나 날이 풀리고 봄이 오고 있음을 나는 그녀를 통해서 가장 먼저 알아챘다. 그녀는 나보다 더 잘 씻고 깔끔했다.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사는 동안 나는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응당 청결 관념과 위생의 문제만으로 여겼지만, 분명 그와 상관이 없는 경우가 있었다.
2013년에 Frontiers in Genetics에 발표된 논문 하나는 아마 역사상 우리나라에서 짤이나 밈으로 가장 많이 쓰인 논문이 아닐까 싶다. ‘사람의 ABCC11 유전자의 약물유전학적 분석: 아포크린샘의 성장과 대사산물의 분비에 대한 새로운 시각’ (원제: Pharmacogenetics of human ABC transporter ABCC11: new insights into apocrine gland growth and metabolite secretion)이라는 제목의 논문은 한국인을 전 세계에서 가장 암내가 나지 않는 유전적으로 우수한 민족으로 만들어주어 국뽕 콘텐츠의 소재로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ABCC11 유전자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는 2006년부터 있었다. 바로 ‘귀지’다. 귀지는 인종에 따른 표현형의 차이를 보여주는데, 아프리카나 유럽 등 서구권의 사람들은 대부분 눅진한 귀지를 가진 반면,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마른 귀지를 가진다. 귀지가 끈적한가 건조한가의 차이가 바로 ABCC11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이 지저분한 사실은, 진화와 인류의 기원에 대한 연구의 초석이 되어 2006년 1월, 일본의 한 연구진은 Nature Genetics지에 ABCC11 유전자의 차이를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과 한국인의 북방 기원설에 대한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ABCC11 유전자는 ABC 수송체 중 C 11번 수송체 단백질의 설계도가 되는 유전자다. ABC 수송체는 세포막에 박혀 있으면서 세포 안팎으로 물질을 들이고 내보내는 일종의 택배기사 같은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다.
정상적인 ABCC11 유전자를 통해 만들어진 정상적으로 기능을 하는 ABCC11 수송체 단백질은 정상적인 수송 기작을 통해 암내 분자의 전구체를 만든다. 이러면 암내가 심해진다. 한국인의 자랑스러운 ABCC11 유전자는 돌연변이다. 원래는 538번 염기가 G (구아닌)이어야 하는데, 돌연변이가 일어나 A (아데닌)으로 바뀌었다. 돌연변이 유전자는 비정상적인 구조의 수송체 단백질을 만들고, 세포는 이 고장 난 단백질을 재빨리 부숴버린다. 암내 분자의 전구체는 만들어지지 못하고, 암내도 나지 않는다.
우리는 일상에서 ‘정상이다’, ‘비정상이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유전자의 ‘우성 (우세함)’, ‘열성 (열세함)’이 우열함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마저 있다. 정상적인 ABCC11 유전자는 우성이고, 지독한 암내의 원인이 된다. 돌연변이 ABCC11은 열성이고 암내가 나지 않는 매력적인 표현형의 원인이 된다. 정상이고, 우세한 것이 늘 옳거나 매력적인가. 비정상이고, 열세한 것은 그른 것인가. 장담컨대, 정상 ABCC11과 돌연변이 ABCC11 중 하나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면 돌연변이 유전자를 고르는 사람들의 수가 ‘우세’할 거다. 하나의 현상을 가늠하기 위한 잣대는, 또 다른 현상에 그대로 대응하지 않는 경우가 더욱 많다는 사실을 나는 다시금 이 연구를 통해 되새겼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클린한’ 민족이라는 자부심도 나쁘진 않지만, 생물학에 ‘절대’나 ‘100%’는 없다. 한국인이라도 암내가 심한 사람, 체취가 강한 사람, 액취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분명 있고, 그들은 일상 속에서 숱하게 상처받으며 살고 있다.
암내나 체취가 강하다고 해서 위생 관념이 미숙하거나 생활 습관이 ‘더럽다’고 쉽게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제 이런 형질에 개인의 위생만큼이나, 극복하기 어려운 유전적 영향이 있다는 것도 안다. 불쾌한 체취로 가장 힘든 사람은 당사자일 것이다.
Ref.
https://www.nature.com/articles/ng1733
https://www.frontiersin.org/articles/10.3389/fgene.2012.00306/fu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