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을 위한 ADHD 영상 추천
일전에 병원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약간의 집중력 장애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후로 ADHD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것을 극복해내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그 시도의 일환으로 ADHD를 보다 정확하게 알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찾다가 Understood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ADHD 전문가의 인터뷰 영상 하나를 찾았다.
예일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임상심리학자인 Thoma E. Brown 박사는 ADHD 분야의 전문가로 꽤나 유명한 모양이다.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무수한 ADHD 관련 영상이나 웹페이지가 나온다. 그의 영상을 추천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말을 꽤 잘하기 때문이다. 뭔가에 오랫동안 주목하는 것이 어려운 나는 특히 ‘말을 잘 못하는 사람들’의 영상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들다. 서론이 지나치게 길다, 본론이 바로 나오지 않는다, 문장에 맥락이 없다, 결론이 뭔지 모르겠다, 중언부언한다는 식의 말을 참고 듣는 것이 굉장히 고통스럽다. 가끔은 못 참고 화를 내기도 한다. 영상이면 바로 꺼버린다. 회의 시간에는 말을 끊을 수가 없어서 속으로 미치고 펄쩍 뛴다. 무릇 말은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남들이 들어야 하는 내용을 해야 하는 법이다.
아무튼, 이 양반의 인터뷰는 재미있었다. 나도 끝까지 집중해서 볼 수 있었고, 딱히 이상한 억양도 없었고, 주제를 전환하면서 뭘 얘기할 건지를 짚어주고 중간중간에 예시로 드는 내용들이 적절했다.
영상의 링크는 여기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uZrZa5pLXk
아래의 내용은 그의 인터뷰를 보고, 실제로 집중력 장애를 겪고 있는 입장에서 공감 가는 부분들을 정리한 내용이다. 모쪼록, 의지와 상관없이 여러 부분에서 좀처럼 정돈되지 않는 삶이 서럽고 피곤한 분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1. ADHD 증상은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초창기의 ADHD 연구 (1900년대 초부터 1980년대까지)는 어린이들의 과잉행동 장애만을 다루고 있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이 뇌의 매니지먼트 시스템에 생긴 문제로,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 상의 문제가 없더라도 집중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까지가 ADHD의 범위로 인지되기 시작했다.
2. ADHD는 지능과 상관없다.
과잉행동이나 집중력 장애로 인해 학업 성적이 나쁠 수도 있지만, 실제로 ADHD 환자 중에는 의사, 변호사, 교수도 있다.
3. ADHD는 증상은 단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다.
그것은 집중을 잘 못하고, 주의가 아주 쉽게 흐트러진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딱 나의 얘기였다.) 예를 들어, ADHD가 있는 사람이 시험을 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처음에는 시험지에 집중한다. 그러다 옆에서 누가 연필을 떨어뜨리면 굳이 그걸 확인한다. 다시 시험지에 집중하는 것 같지만 곧 2시간 전에 했던 대화의 내용이 떠오른다. 다시 시험지를 쳐다보는데 갑자기 어제 본 티비 내용이 떠오른다. 다시 시험지의 문제를 풀다가 갑자기 창 밖의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면 또 하염없이 창밖의 풍경을 구경하는 식이다. 회의 시간에도 비슷하다.
4. ADHD는 증상의 범위가 상당히 넓다.
ADHD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는 저런 상태가 24시간 계속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ADHD가 있어도 좋아하는 일에는 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이 때문에 ADHD를 의지의 문제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ADHD는 절대 개인의 의지력과는 상관이 없다.
ADHD는 임신처럼 했냐 안했냐의 문제가 아니라 넓은 범위의 ‘정도’의 차이가 있는 문제다. ADHD로 진단되지 않는 사람도 주의가 흐트러지는 경험을 한다. 다만 그 정도가 어떠냐에 따라 ADHD로 분류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ADHD 환자는 무엇인가를 정리, 정돈하는 것이 어렵다. 주변의 사물을 정리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업무나 시간, 일정 등을 체계화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또 글을 잘 못쓴다. 문장이나 문단을 구성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뭔가를 시작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제때에 마무리하는 것까지 어려워진다. 정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서야 시작한다.
생각을 멈추지 못해 잠에 드는 것이 어렵다.
행동이나 감정의 조절이 어렵다. 특히 목소리의 크기나 말의 빠르기를 잘 조절하지 못한다. 다칠지도 모르는 과격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장기 기억은 상당히 뛰어나지만 단기 기억에 문제가 있기도 하다. 몇 년 전의 사건은 어제 일처럼 기억하지만, 당장 어제저녁에 먹은 점심 메뉴는 기억하지 못하는 식이다.
5. ADHD는 유전적인 영향을 받는다.
어릴 때에 증상이 발현되기도 하지만, 사춘기 이후에 발견되기도 한다. 그즈음부터 해내야 하는 일의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체계화를 잘하지 못하는 ADHD의 증상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6. ADHD 증상을 가진 사람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뇌는 신경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신경세포가 기능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특성은 ‘연결’이다. 한 개의 신경세포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또 다른 신경세포와 연결되어 있는데, 이 연결은 물리적인 접촉이 아니다. 두 개의 세포 사이에 휴지 한 장보다 얇은 아주 좁은 틈이 있다. 앞선 세포에서 뒤의 세포로 신호가 전달될 때 두 가지의 형태로 전달된다. 전기의 스파크가 튀듯이 전달될 수도 있고, 앞 세포에서 신경전달물질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뿜어내기도 한다. ADHD는 후자의 경우와 관계가 있다. 앞 세포에서 신경전달물질 주머니를 뱉어내면 그 물질들이 다음 세포에 전달되어 신호를 전달한다.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 앞의 세포는 진공청소기처럼 내뱉은 신경전달물질을 다시 빨아들인다. 그렇게 신호가 켜지고, 꺼지고를 반복한다. 신경전달물질 주머니를 내보내는 데에 문제가 생기거나, 빨아들이는 데에 문제가 생기면 신호가 제대로 켜지고 꺼지지 않으니 결국 ADHD의 증상 따위가 발현하게 된다.
7. ADHD의 치료 (가장 중요!)
ADHD의 치료제는 항생제와는 다른 개념이다. ADHD 약물의 치료 효과는 안경과도 같다. 라식처럼 눈알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시각의 원래 목적인 ‘보는 것’을 좀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 같은 거다. ADHD의 치료 역시, 병을 고친다는 개념이 아니라, 환자의 증상에 따라서 정상적인 생활을 해내기 위해서 행동을 어떤 식으로 교정하는지를 알려주는 식이다.
얼추 이 정도면 나에게는 ADHD에 대해 필요한 정보가 다 마련된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7번이다. ADHD는 감기나 완치의 개념이 있는 병과는 다르다는 것. 위의 증상들을 정리하며 나는 내가 그간 사회생활, 일상생활을 하면서 어려워했던 부분, 문제가 있었던 부분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되짚어 볼 수 있었다. 나는 특히 주변 정리, 업무의 체계화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것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면 큰 도움이 될 거다. 이 글은 ADHD를 핑계 삼아 ‘나는 ADHD라서 그래’라는 말을 하자고 쓴 것이 아니다.
이 글은 성인의 사회생활에서 유능함의 척도가 되는 체계화, 집중, 추진력 등이 상당히 결핍된 상태로 살아가는 우리가, 그것을 단순히 의지 부족이나 게으름으로 치부해서 자책만 했던 우리가, 실은 이것이 뇌의 호르몬 문제이며 의지가 아닌 약물이나 행동 교정을 통해서 개선하는 ‘대책’을 마련하는 데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썼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문제를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우린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