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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쓰 Eath Sep 21. 2019

나는 위내시경이 힘들지 않다 (상)

위염을 달고 사는 야식 중독자들에게 과학으로 희망을


첫사랑에 버림받고, 평생 동반자라 믿었던 과학에 배신당하고, 죽고 못 살던 어린 시절의 친구와도 절교한 고독한 본인의 곁을 근 20년째 지키고 있는 근면한 존재, 위경련과 위축성 위염. 본인은 한 해도 허투루 보내는 법이 없이 매년 한 번씩은 위경련과 위축성 위염 진단을 받는다.



아... 이러면 완전 나가리인데..


‘아, 이렇게 살면 안 될 거 같은데..’ 싶을 즈음에 그들은 날 찾는다. 한밤중에 자다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위장을 손아귀로 쥐어짜서 터트려 버릴 것 같은 고통에 깬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다. 문자 하나 보낸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 내일 출근이 어렵겠습니다. 연차 결재는 모레 올리겠습니다.’ 

아아, 불쌍한 사노비. 아파 뒤져도 연차 결재 보고가 우선이다. 이후로는 방법이 없다, 그저 견딜 수밖에. 

(본인은 위경련에 진통제를 따로 먹지 않는다.)



Case 1. 아침 즈음에 좀 나아지는 경우. 

상당히 기뻐하며 정상 출근하고, 바로 병원에 연락해서 위내시경을 예약한다.


Case 2. 계속 아프다.

울면서 병원 가서 약 먼저 얻어먹고, 위내시경을 예약한다.


결론은 내시경 엔딩.



위내시경의 첫 경험


뭐든 첫 경험이 중요한 법이다. 재수가 없기로 나와바리에서 제법 이름 날리는 본인이지만, 그 날은 참으로 운수가 좋았다. 급한 김에 찾은 학교 근처의 허름한 내과에서 본인은 첫 위내시경을 경험했다. 

손. 본인에게 위내시경은 ‘손’이다. 그 시절엔 위내시경을 일반 마취로 진행했다. 고작 스무 살. 어떻게 베드에 오른 지 기억도 없다. 내시경도 상당히 고통스러웠겠지. 눈물, 콧물, 침을 질질 흘리며 왁왁 소리를 밖으로 뱉지도 못하고 벌벌 떨었을 거다. 그렇지만 고통스러운 기억은 남지 않았다. 기억나는 건 “괜찮아요, 잘하고 있어요” 라며 내 손을 꽉 잡아주던 간호사님의 따듯한 손. 그 손 덕분에 버텼다.


운이 좋았다. 의사 선생님도 참으로 친절하셨다. 여기저기 점막이 벗겨지고 피가 질질 나고 있는 본인의 위벽 사진을 손수 커터칼로 잘라서 작은 앨범을 만들어서 돌려주시더라. 와, 살면서 그런 기념품은 처음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조우한 나의 평활근*. 그것이 나의 위내시경 첫 경험이다.


*평활근: 민무늬근이라고도 한다. 가로무늬가 없는 근육으로 내장이나 혈관 따위의 벽을 이룬다.


이후에는 늘 일반 마취로 내시경을 받았다. 본인의 손이 본디 잡음 직한 것인지, 수면마취가 있는데 굳이 일반 마취를 고르고서는 눈물 콧물 쏟아내는 꼴이 측은지심을 가진 인간이라면 도무지 외면하기가 어려워서인지, 손을 잡아주는 간호사님들을 제법 많이 만났다. 근데 웬일인지 요즘은 정말 안 잡아준다. 대신 본인의 몸을 결박하듯이 붙잡는다. 섭섭하다.



가장 최근의 위내시경은 반년 전이었다. 반차가 없는 회사라, 오전에 위내시경, 오후에 사랑니 발치 예약을 잡은 날이었다. 본디 위내시경을 잘 참는다는 병원 관계자들의 찬사가 지겨운 본인이지만 그 날은 정말 달랐다. 필연적으로 구토 반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눈물 콧물에 침은 세트로 흘리는 것이 정상인데, 그 날은 상당히 드라이하게 끝났다. 눈물만 조금 흘렸던가. 몸부림도 없었다. 단언컨대 그 날 그 병원에서 위내시경을 받은 환자들 중에 가장 멀끔한 환자였으리라. 이 기념비적인 날을 여기저기 카톡을 보내 자랑했다. 

‘내가 위내시경 마스터다 이 말이야’ 하면서. 물론 내시경에서 아껴둔 눈물은 그날 오후 치과 의자에서 다 쏟았다. 그날 저녁 침대에 모로 누워 얼음팩을 볼때기에 올리고서 훌쩍이며 카톡을 보냈다. 

‘저 오늘 사랑니를 뽑았는데요, 내일도 출근 못 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하니 상사가 답장을 보낸다. ‘저런.’


‘나는 왜 위내시경을 잘 견딜까’


며칠 전에 돌연 궁금해졌다. ‘왜 나는 위내시경이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지?’ 본디, 본인은 둘째가라면 서러워서 눈물이 줄줄 나고 손발이 벌벌 떨리는 정도의 엄살쟁이다. 회사에서 책상 모서리에 무릎이라도 한 번 박으면 3분을 무르팍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는 엄살쟁이다. 그런 내가 도대체 어떻게 남들은 맨 정신에 견딜 수가 없어서 수면마취까지 한다는 내시경을 뻔뻔스레 잘 받는 걸까.


궁금한 게 생겼으니 밤낮으로 그 고민만 한다. 아르키메데스는 아니지만 유레카의 순간이 오긴 한다. 저녁에 양치를 하다가, 혀를 닦다가, 몸통이 한껏 수축하는 그 느낌과 함께, ‘혹시 이건가!’



대쪽 같은 의지를 지닌 투사와 같이 의연하게 위내시경에 임할 수 있는 과학적 꿀팁이 (하)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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