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오 Sep 26. 2021

휴식기

인생퀘스트


생리주기가 40일을 넘어가면서 이게 생리인지 아닌지 모를 이상 출혈이 계속되었다. 얼마 전 생리인지 아닌지 몰라 병원을 다녀왔지만 그다음 날은 전혀 출혈이 없었고 그다음 날은 찔끔 나오는 듯 아닌 듯 부정출혈증상이 반복되었다. 병원을 옮기기 전에도 계속되었던 증상에 마음이 불안했다.

그러던 중 와락 쏟아지는 증상이 나고, 섣불리 움직이기보다는 병원에 전화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저.. 담당 선생님 방 간호사 분과 통화할 수 있을까요?

- 지금은 6시가 넘어서 힘들구요. 번호를 가르쳐드릴테니 내일 전화해보셔야 할 듯해요.

시계를 보니 6시 2분이었다. 이런 된장..

간호사실 번로를 듣고 전화 방법을 설명을 들었다. 그러고 그냥 시간이 흘러 다음날 점심시간이 되기 전 전화를 했더니 다음날 예약하고 초음파를 잡아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침 일찍 도착한 병원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곧장 달려간 초음파실 앞에는 사람들로 만원이었고 초음파실 밖까지 기다리는 사람들로 그득했다. 사람이 많다 보니 대기자 명단에 내 이름은 보이지도 않았다. 빈자리 없이 가득 찬 대기실 앞에서 초음파하러 들어갈 때까지 1시간 30분이 걸렸다. 아침에 눈뜨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던 터라 입안에 침이 찐득하게 말랐지만 기다렸다 나중에 진료실 앞에서 커피나 한잔 마시자 싶어 참았다. 그래도 긴장이 되었는지 화장실은 가고 싶어 지더라. 이번엔 제발 친절한 분이 초음파 봐주길 기도하며 초음파실로 들어가자 새로운 분이셨다. 다행이다.

- 며칠 전에 오셨는데 또 오셨네요.

- 네 그때 부정출혈이었는지 이제 쏟아져서요..

역시나 큰 설명은 없었지만 피가 많이 고여있다는 말은 해주셨다. 물혹에 대해서는 진료실 가서 들으라는 말만 듣고 초음파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진료실 앞으로 이동해서도 기다림은 계속되었다. 유명한 선생님 방 근처로 진료실이 옮겨져서 그런지 각방의 대기자들이 섞여 서있는 사람이 다수였다. 그 속에서 난 아줌마처럼 좁은 자리에 엉덩이부터 들이밀고서 앉아버렸다. 여기서는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걸까.. 기다렸던 커피를 마시려 해도 오늘은 커피머신이 고장이 나서 반대편 수술실 앞까지 가야 한다고 옆에 여럿이 모여있던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알려주었다. 자리가 없어질까 옷이랑 가방을 자리에 두고 커피 한잔을 서둘러 가져왔지만 오는 길에 거의 다 마셔버리고서는 막상 자리에 앉아서는 빈 컵만 들고 있었다.

9시 30분이 진료예약시간이었지만 정작 11시가 넘어 진료실에 들어갔다.

생리의 문제보다 물혹이 조금 줄어들기는 해도 크게 차도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피임약을 먹어 한 달 쉬고 그다음 달로 시술을 미루는 것이 좋다고 했다. 피임약을 먹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많이 아팠다고 말했더니 그나마 좀 덜한 걸로 처방하겠지만 별수 없단다. 안 그러면 계속 시술이 미루어져서 먹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별수 있나 그냥 처방해 달라고 했다. 참는 수밖에..

그렇게 짧은 진료가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데 뒤따라 간호사가 나오면서 많이 아프면 타이레놀 한알 정도 먹고 그래도 아프다 싶으면 아예 약을 끊어버리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임신 테스트를 하기 위한 소변검사를 신청해뒀다고 검사 뒤에 집에 가면 된다 알려주었다.

병원 볼일이 끝나도 점심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나온 김에 동네 구청에 있는 보건소를 찾아가 정부지원금 신청도 해야지 싶었다. 서울을 반 바퀴를 누비면서 일을 끝내도 3시였지만 이미 24시간을 다 쓴 기분이었다. 예전에 받아둔 커피 쿠폰이 생각나서 스타벅스로 들어갔는데 젠장.. 쿠폰이 지난달까지였다. 뒤에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어 결국 카드로 결제했다. 시켜 놓은 아아를 기다리면서 피임약을 먹으려 뜯는데 왜 이렇게 낯부끄러운지.. 죄 지은 것도 아니고 이상한 약도 아니고 내 치료를 위해 먹는 건데 슬쩍 뒤돌아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한알을 꿀꺽 삼켰다. 시켜둔 아아가 나오자 그 자리에서 반을 한숨에 드링킹하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오늘 신경 쓸 일이 끝났구나 싶어 긴장이 풀어지기 시작하더라.




다음 주기까지 한 텀 쉰다는 게 시간을 그냥 버리는 것 같아서 아쉽기만 하다. 그동안 내 몸에게 안 한 운동과 정신수양의 시간을 주라는 건가. 먹고 살 것도 생각해야 하는데 경력단절 여성을 몸소 체험하게 되려니 두려움만 앞선다. 이래저래 또 심란해진다.

작가의 이전글 애타게 기다리는 배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