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다 가는 자리에서 배우는 것들
최근 들어 '시절인연'이라는 단어를 자주 본다.
모든 것에는 시기가 되어야 일어나고, 모든 인연은 때가 있다는 뜻으로 시작과 끝도 모두 자연의 섭리대로 그 시기가 정해져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 몇 개월 동안 꾸준히 관심을 갖고 돌보던 방울토마토 몇 그루 들을 초록별로 떠나보냈다.
처음에는 물을 너무 많이 주어서일까, 아니면 비료를 너무 많이 준 탓일까
매일 점점 시들해져 가는 작은 생명들을 보고 있자니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돌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무겁게 느껴졌던 거 같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이 시절인연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은 느끼게 된다.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해 봐도 모든 것은 자연의 섭리대로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다는 것.
예전에 나는 멀어지는 관계들을 어떻게든 붙잡아 보려고 안간힘을 써보기도 하고,
마음에 둔 사람에게 어떻게든 관심과 환심을 사보려고 모든 것을 쏟아부으면서 까지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그 모든 것이 사실은 나의 얄팍한 욕심이자 두려움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인간관계가 줄어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줄어드는 건 사람의 수가 아니라 관계의 '밀도'가 아닐까.
함께 있을 때 가장 나다운 모습일 수 있는 사람인지,
완전히 공감하진 못해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인지,
서로의 상처와 불안을 드러내도 외면하지 않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인지,
시간이 지나 모습이 변하고, 무너지고, 잠시 멀어지더라도 묵묵히 지켜봐 주는 사람인지,
어떤 인연은 잠시 머물다 가고, 어떤 인연은 오랜 시간 옆을 지키며 함께 자라기도 하고,
자주 보지는 못하더라도 오래 이어지는 관계들이 있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마치 관계에도 정해진 유효기한이 있는 것처럼 들릴 때도 있지만,
돌아보면 그 적절한 때에 스쳐갔던 사람들 덕분에 웃을 수 있었고, 때로는 울 수 있었으며,
그 모두가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결국 모든 만남과 이별들은 적당한 배움을 남긴다.
그리고 그 배움이 쌓여 오늘의 나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