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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홍 Aug 23. 2021

스타트업 악순환 부수기

다소 자극적인 제목 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종종 스타트업에서의 성공은 곧 악순환을 부수는 것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론부터 먼저 글머리에 쓰자면 그래서 악순환을 부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나도 지금 회사에서 그 과정 중에 있지만 항상 먹히는 어떤 전략은 없어 보인다. 


생각하기 쉬운 세일즈 예시부터 생각해보면 이렇다. 세일즈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포인트 중 하나는 포트폴리오일 것이다. B2B 비즈니스를 생각해보면 기업 입장에서 좋은 선례가 없는 서비스를 함부로 도입하는 결정은 흔치 않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 책임질 일을 만들기 싫어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만약, 월 몇 천만 원의 비용이 드는 솔루션을 도입했는데 그만한 효용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그 솔루션을 도입한 담당자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요즘 들어서는 Notion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지만 초기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Confluence와 같이 다들 이미 잘 사용하고 있는 Knowledge Base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Notion이라는 마이너한 제품을 선택할 필요는 없었다. 요즘 뜨는 SaaS들에 대해 빠르게 접하는 사람들 중 먼저 시도해보는 사람들이 있는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잘 나가는 스타트업들이 Notion을 사용한다는 입소문이 퍼지고 곧 수많은 회사, 사람들이 사용하는 SaaS가 됐다. 심지어 내가 지금 이 글에서 Notion을 언급한 것도 하나의 바이럴이다.


요약하자면 내 제품 써달라고 하니 유명하지 않아서 안 된다고 하고, 안 써주니까 유명해지지 못하는 악순환이 있는 것이다. Notion은 결국 어떤 계기로 그 악순환을 깼고, 비슷한 수많은 사례들이 있을 것이다. 그로스 해킹 책 혹은 포스팅들이 자주 얘기하는 것 중 하나는 Wow point이다. Wow가 나올만한 제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제품은 굳이 홍보를 하지 않아도 바이럴로 퍼질 것이라는 말이다. 

말은 쉽지만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아니, 아마 상황마다 너무 다르므로 공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 악순환을 깨기 위한 방법,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돌파구를 찾아내는 게 그 사람의 역량이라는 뻔한 결론이 나온다. 방법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정말 많은 인맥(사람들이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지만)을 가지고 있어서 좋은 회사에 있는 지인에게 내 제품을 써달라고 할 수 있다면, 그렇게 얻은 고객을 포트폴리오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다른 기업들에게도 진출하기 훨씬 쉬워진다. 이런 사례들 때문에 대표의 인맥을 생각보다 훨씬 더 높게 평가하는 것이 이해된다. 또는, 정말 너무 멋진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 물론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요즘의 우리 팀을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약한 악순환 속에 있는 것 같다. 성숙한 기술적 수준을 갖췄지만 아주 고수준까지 도달하진 못했다. 많은 부분들을 자동화하고 관리 가능하게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최근의 우리 팀 내의 주제는 kubernetes였다. 요즘 여러 테크 기업들이 kubernetes를 쓰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우리 팀은 아직 도입하지 않았다. 팀 내에 kubernetes 운영을 온전히 담당할 사람이 있지 않기도 하고, 이미 기존의 시스템이 어느 정도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Infra를 대체하는 작업이 매우 높은 우선순위를 가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kubernetes를 도입하면 운영 자동화 및 훌륭한 툴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있다. Argo CD와 같은 것들이 그 기대 중 하나이다.

나는 내년 정도까지는 분명 kubernetes로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최근에 팀원과 논쟁했던 부분이 있다. 팀원의 주장은 우리가 삽질을 하는 것보다 kubernetes를 운영 혹은 경험해본 사람이 팀에 들어온다면 훨씬 쉽게 도입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그 삽질을 하는 것은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위에서 이야기한 포트폴리오 악순환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kubernetes를 해본 사람이 있으면 더 쉽게 도입할 수 있다는 말은 물론 맞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구해오는 것은 어렵다. 요즘은 특히 시장에 개발자가 귀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무엇을 미끼로 그런 개발자를 유혹할 것인가? 솔직히 말하면 네이버나 라인, 카카오, 쿠팡과 같은 큰 기업이 현금성 보상도 더 많이 주고, 오히려 일은 더 편하다.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 기준으로는 그렇다) 리소스가 충분하고 좋은 개발자도 많은 환경이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기본 보상이나 업무 여건에 있어서는 우리 회사가 경쟁력을 갖추기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런 좋은 회사를 가기에 능력이 충분한 사람을 우리 회사로 올 수 있게 해야 한다. 아직 멋진 방법은 모르겠지만 데려오고 싶은 개발자가 있을 때마다 열심히 생각해서 어필을 하고 있다. 아마 이런 인력 수급 문제 또한 악순환 깨기와 같은 주제의 문제일 것이고, 이것을 깰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전의 kubernetes 관련 주제로 돌아오면 내 결론은 내가 능력을 갖춰서 악순환을 깨야겠다는 것이었다. "해본 사람이 오기만 하면"이라는 가정을 성립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정이 성립할 때에 비해 가성비는 떨어질지 몰라도, 현실은 누군가 해내거나 아니면 제자리에 머무르는 것이라 믿는다. 

어떻게든 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스타트업에서 필요한 핵심 역량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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