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시니어를 꿈꾸며라는 글을 발행했었다. 시니어 개발자란 대체 무엇인지, 우리는 왜 시니어 개발자를 원하는지 생각을 흘려보냈던 글이었다. 그때, 시니어 개발자가 없는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는지에 대해 몇 가지 안들을 썼었다. 1) 내가 시니어 개발자가 된다, 2) 외부의 조언자를 구한다, 3) 시니어 개발자가 없어도 발전할 수 있는 팀이 된다, 3가지였다.
오늘 이 글을 다시 쓰게 된 계기는 팀원들의 의견을 익명으로 수집하다가 발견한 의견 때문이었다. 얼마 전, 팀원들이 팀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지 만족도를 조사하는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이 설문조사에는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질문의 답변으로는 실력 있는 동료, 내게 자극을 주는 동료 등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답변들이 많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시니어 개발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하나도 없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시니어 개발자가 없어서 아쉽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곤 했었고, 따로 One on one을 할 때도 시니어 개발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받곤 했었는데, 이번 설문에서는 그런 의견을 주신 분이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 또한 시니어 개발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사라진 지 꽤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실력 있는 동료 중에 시니어 개발자가 많을지언정, 시니어 개발자가 없어서 어려운 상황이라는 생각을 작년 정도부터는 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이유는 여러 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자신감이 생겨서일 수도, 도저히 다른 사람의 조언 없이는 해결하기 어려운 어려움에 막혀있는 게 아닌 것일 수도, 애초에 기대를 안 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설문조사에 제출해주신 의견 중에서 공감되는 의견도 있었다. "고경력자나 시니어가 간절하게 필요하다고 느끼진 않는다. 함께 하면서 경험을 쌓고 같이 어려운 문제들을 극복하며 성장할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비록 회사에서 설문조사를 wrap up 한 문서에는 쓰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깊게 공감했다. 나를 가르쳐줄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 함께 챌린지를 극복할만한 동료들이 이미 곁에 있으니 마찬가지로 해결 과정을 함께 할만한 믿을만한 동료라면 된다는 생각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무엇이 이 변화를 만들어냈는지가 궁금할 텐데, 나도 확실한 이유를 꼽긴 어렵다. 하지만 하나 골라보자면, 흔히들 말하는 성공 경험의 누적 덕분이 아닐까 한다. 내 엔지니어링 결과물이 마법 같은 수준이 아니면 뭐 어떤가. 아니어도 프로덕트는 계속 발전하고 고객이 만족한다. 그렇게 문제들을 계속 해결해나가다 보니 자신감이 쌓이고, 자신감이 생기니 계속 어려움들을 헤쳐나갈 수 있다.
AB180에서 일한 지 5년이 되는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나름대로 경력으로는 이미 5년 이상의 개발자가 됐는데 그동안 정말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이 글과 맞닿아 있는 생각만 꺼내보자면, 누군가에게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컸던 옛날과 달리 지금은 그런 생각이 사라진 것 같다. 마찬가지로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고 앞에서 언급한 이유들과 비슷할 것 같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니 오히려 자유로워졌다. 누군가에게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 구직 시장을 헤매는 한 마리의 짐승(?)이 아니라 그냥 내 길을 어떻게든 내가 개척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배산임수 전략으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해결해나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아쉬움도 없다. 내가 배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은 거고, 그렇지 않더라도 팀과 함께 헤쳐나가면 된다.
이제는 시니어 개발자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려고 한다. 나를 비롯한 우리 팀에서 원하는 건 시니어 개발자가 아니라 "좋은 동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니어 개발자가 없어도 발전할 수 있는 팀이 됐다. 그동안 함께 달리며 성장한 팀원들 모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