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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홍 Jan 03. 2023

20대 후반전 회고

이제 30이다

이제 30이다. 과거 20대가 꺾일 즈음에 20대 전반전 회고를 썼었는데 30이 되면 후반전 회고도 써야겠다 생각했었다. 다시 한번 읽어보니 옛날에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구나 하고 흥미로웠다. 어떤 내용은 이번 글에서도 비슷하게 언급되어서 웃겼다. 이 회고도 미래에 다시 보면 재밌지 않을까 싶다.


무엇을 했나?

20대 후반전은 사실상 AB180이라는 회사에서의 경험이 전부이다. 2017년 9월에 입사해서 지금까지도 계속 일하고 있으니 20대 후반전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함께한 셈이다. 이전까지는 회사를 다닌다고 하면 방학 때 짧게 짧게 일하거나 학기 중에 일을 병행했던 것인데 AB180에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풀타임으로 연속적으로 일하고 있다.

AB180에서는 Airbridge라는 디지털 마케팅에 대한 성과 측정을 돕는 서비스의 백엔드 시스템을 개발했다. 백엔드 시스템 개발뿐만 아니라 MTA(Multi Touch Attribution)라는 새로운 성과 측정 방법론 개발에도 참여했고, 그 결과를 인정받아 메타의 공식 파트너십을 따냈다.

메타 비즈니스 파트너십 체결 기념 파티

"마케팅"의 "성과"를 측정해야 하니 당연히 사람들이 어떤 광고를 많이 보고 클릭하는지에 대한 광고 데이터와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전환 데이터가 필요하다. Airbridge에서는 Tracking Link, SDK 등을 통해서 이러한 데이터를 수집하는데 그 볼륨이 작진 않다. 그러다 보니 흔히 말하는 "트래픽"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마케팅 성과 측정이라는 분야를 계속 파헤치다 보니 광고라는 비즈니스 도메인에 대해서도 이해도가 높아졌다.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서 하나의 광고가 노출되기까지 뒤에서 얼마나 많은 시스템과 노력, 그리고 돈이 들어가고 있는지 알게 됐다. 데이터를 이렇게나 활용하는 분야가 또 있을까 싶다.

한편,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났다. 처음 입사했을 때 회사는 고작 15명 정도 규모였는데 이제는 120명이 넘었다. 같이 백엔드 시스템을 개발하는 사람들도 5명 이내였었는데 이제는 20명이 넘는다. 처음 회사 규모보다 지금 팀 규모가 더 커진 것이다.


기억에 남는 순간들

회고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초안을 작성할 때 무작정 생각나는 기억들을 떠올려봤다. 꼭 중요한 기억한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과 같았다.


처음 AB180 입사 전 면접을 봤을 때

회사에서 일하면서 경험을 쌓기로 결심하고 이런저런 회사들에 이력서를 돌린 뒤 국내 여행을 떠났다. 남해쯤에 있을 때였던 것 같은데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왔었다. 

전화받았던 곳에서 찍었던 사진

여행을 끝내고 면접을 보기 위해 사당역 부근의 오렌지팜에 방문했다. 당시 AB180은 오렌지팜이라는 공유 오피스를 이용 중이었는데 회의실은 지하에 있었다. 공유 오피스다 보니 회의실은 예약제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회의실에서 면접을 보고 있던 중 시간이 넘어서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마땅히 옮길 곳도 없으니 회의실 공간 앞 라운지의 테이블에 앉아서 마저 이야기를 나눴다.

이 기억이 왜 남아있나 곱씹어봤는데, 우리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던 시절이라는 것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우리만이 사용하는 회의실이 5개가 넘는데도 회의실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예약 시간을 넘겼을 때 심지어 다른 회사 분들에게 양보해야 했었다. 결핍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일까?


장시간 DB 사망 사건

내가 처음 AB180에 합류했을 때만 해도 회사에서는 Aerospike라는 In Memory NoSQL DB를 운영하고 있었다. 내가 이 친구를 왜 운영하게 됐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어느 날 갑자기 DB 프로세스가 죽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나는 서울대입구역 근처 투썸플레이스 카페에서 작업 중이었는데 갑자기 사건이 터져서 대응을 시작했다. 근데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가 너무 Aerospike를 모르기도 했는데, 일단 파악한 것은 In Memory DB이다 보니 DB가 서비스를 시작하려면 스토리지의 모든 데이터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읽어야 할 데이터의 양이 매우 많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알아보다 보니 카페 영업시간이 끝나서 급하게 주변 24시 카페를 찾았고, 할리스 커피가 24시간 영업을 한다는 것을 보고 이동했다. (그 와중에 탐탐은 가기 싫었다.) 할리스 커피에 자리 잡은 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는지 계속 더 찾아봤지만 마땅한 액션 아이템을 찾진 못했다. 그렇게 4시간 정도가 지난 뒤 나의 노력들과 상관없이 그냥 복구됐다.

지금은 너무 옛날 일이고 기록을 잘해두지 않아서 원인은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내가 운영하는 물건이 어떻게 작동하는 건지 모르면 안 된다는 뼈저리게 느꼈다. 단순히 재시작이 이렇게 오래 걸릴 수 있다는 것도 몰랐고, 스토리지에서 대량의 데이터를 읽는 것도 이렇게 오래 걸릴 수 있는 줄 몰랐다.

시간이 지난 뒤, 또다시 DB가 죽는 일이 발생했는데 그래도 이때는 좀 더 잘 대응했던 것 같다. 바로 이어지는데...


피자 시킬까요?

어쩜 장애는 꼭 밥 먹기 전에 터지는지. 점심시간 1시간쯤 전에 DynamoDB를 사용하는 코드에서 갑자기 에러가 발생했다는 alert을 받았다. 서비스가 중단되는 일이었어서 긴급하게 대응을 시작했고, 원인 추적을 하다 보니 설마 설마 했는데 테이블을 삭제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전혀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했던 원인이라 원인 추적이 오래 걸렸다.)

원인 추적을 마친 뒤 최대한 빨리 정상화를 하기 위한 조치를 시작했고 어느 정도 상황이 해소되니 배고픔이 몰려왔다. 아직 모니터링이 필요한 상태여서 사무실에서 파파존스 피자를 시켜 먹기로 했다. 피자를 먹으면서는 이런 놀라운 일이 다 발생하냐는 이야기로 떠들었다.

이 사건이 당시 팀원들에게는 매우 깊게 각인됐던 것 같다. 당시 장애 대응을 한 팀원들은 아직 함께 일하고 있는데 이때 이후로 식사 시간 즈음에 장애가 터지면 "피자 시킬까요?" 하는 게 팀 내 밈이 됐다.


EMR로 migration 하기로 결정했을 때

처음 AB180에 합류하고 했던 일이 대용량 데이터 처리를 할 수 있는 Hadoop cluster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Cluster를 처음 올릴 때에는 아는 게 없으니 열심히 공부하면서 한 땀 한 땀 띄웠고, 프로덕션에 올린 뒤에는 밤낮없이 터지는 장애를 대응하면서 영혼을 갈아 넣었었다 보니 내 새끼나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관리에 대한 어려움은 많이 있었는데, 그러던 중 AWS에 EMR이라는 Managed Service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Migration을 하는 게 맞을지 고민을 시작했는데, migration을 하고 나면 내가 공들여 세운 탑이 사라진다는 생각에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다. "내가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당시 이 문제에 대해 같이 일하던 성호님과 짧게 상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고민이 있다고 했을 때 잘 공감해주셨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고 넋두리에 더 가까웠던 것 같긴 하다. 고민 끝에 감정을 배제하고 더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managed service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곧 Migration plan을 세웠고 완료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띄웠던 instance들을 terminate 할 때는 조금 떨림이 있었지만 결국 모두 없애버렸다. 남은 건 EBS 뿐... 그마저도 얼마 더 기간이 지난 뒤에는 없앴다.

상실감을 크게 느꼈던 기억이라 아직도 생각나는 것 같다. 그리고 넋두리를 잘하지 않는 편인데 잘 들어주신 성호님에게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남자 피자에게 뜨거운 맛을 보다.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다가 재원님과 용철님과 식사를 위해 남자피자에서 피자를 시키기로 했다. (또 피자다. 다행히 장애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자피자에는 "크레이지 피자"라는 매운맛의 피자가 있는데 이때 같이 식사를 주문하는 사람들이 매운맛에 대한 자신감을 뽐내던 사람들이었다. 코코이찌방야에 가면 4신을 시키니, 5신을 시키니 하면서 말이다. 이들이 매운 걸 먹자고 자꾸 하길래 괜히 더 오기가 생겨서 크레이지 피자에 소스 추가까지 해서 주문했다. 그리고 함께 먹을 버팔로 윙도 추가했다.

피자가 도착해서 한 입 먹어보니 웬걸, 진짜 이름대로 미친 피자였다. 너무 매워서 먹기가 힘들었다. 늦은 시간의 피곤함도 없애주는 매운맛이었다. 심지어 버팔로윙까지도 너무 매워서 매운맛을 가라앉혀 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마지막 조각은 다들 먹기 싫어해서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먹기로 했는데 다행히 나는 이겼다. 최종 패자는 용철님이었는데 비명을 지르면서 마지막 조각을 해치우는 걸 보면서 한참 웃었었다. 순수하게 재밌어서 웃겼던 때 중 하나라 아직도 기억나는 듯하다.


그 밖에도...

장애 나서 재원님과 밤새 복구 작업을 하다가 재계산 프로그램을 돌려놓고 한 숨 자고 일어났더니 에러가 나서 다시 작업해야 했던 것, 내가 병특 때문에 이직하려고 했을 때의 에피소드, 이번에는 내가 팀원의 이직 소식에 허겁지겁 대응했던 것 등 생생한 기억들이 많다. 하지만 이미 충분히 너무 많은 말을 써둔 것 같아 여기까지 하고 줄인다.


잘했던 것

내가 어떤 것을 잘했던 것 같은지 고민 후 몇 개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앞으로도 강점을 잘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강한 체력과 정신력

처음 운동을 시작한 것은 21살쯤으로 기억한다. 이때부터 긴 공백 기간 없이 꾸준히 운동을 했는데, 그 결과 쌓인 체력이 많이 도움 됐다. 체력이 있으니 정신력이 깎여나가도 버틸 수 있었다.

열심히 하던 크로스핏, 자신만만한 출격 전 모습과 개털린 뒤의 모습 비교

AB180 합류 초기에는 시스템 고도화를 많이 했었다. 고도화 과정에서 Druid, Kafka 등 새로운 시스템을 많이 도입했는데 당연히 나도 처음이라 아는 게 없었다.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모르니 주구장창 공식 문서를 읽었고, 공식 문서를 읽으면서 내부 작동 원리를 상상했다. 시스템 도입 후 장애가 발생하면 대응하면서 이 설정값이 그래서 존재하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어나갔다. 그야말로 (트래픽한테) 두들겨 맞으면서 성장했다. 24/7 온콜은 당연했다.

언제 한 번은 대대적인 보안 감사를 받았었다. 물론 미리 대비하면서 조치를 취해둔 것이 많았지만 여전히 미흡한 점이 많았었다. 우리가 받았던 보안 감사는 매일 다른 테마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일의 테마를 위한 미흡한 점을 보완하기 위한 작업, 증적 자료를 빨리 보여줄 수 있도록 준비하는 작업 등을 했다. 이 과정에서 10명이 넘는 백엔드 팀원들이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감사가 끝난 뒤 동료 중 한 분은 "1주일의 반 정도가 지나니 뇌가 정지했었다" 라며 고백하기도 했을 만큼 급박하게 많은 일들이 돌아갔었는데, 나는 생각보다 할 만했었다.

종종 발생하는 장애 상황은 정신력을 갉아먹었다. 특히 내가 잘 못했다는 것이 싫었다. "내가 이 정도 밖에 못하나?" 하면서 자책했다. 우리 회사의 문화로 장애에 대해 남을 비난하지 않는 것이 있지만 스스로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정신력도 떨어지면 힘들었을 것 같다. 다행히 체력적으로 극한에 몰렸다고 느낀 적은 없다. 그렇게 번아웃 없이 5년을 달려왔다. 일을 많이 해서 잘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지쳐서 멈추는 일 없이 짧지 않은 시간을 달려왔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문제 해결

무슨 문제건 해결될 때까지 붙잡고 갔다. 어떤 문제는 1년 넘게 고민하다가 해결한 것도 있다. 그 결과 어떤 문제건 시간의 문제일 뿐 해결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감이 생기니 도전이 두렵지 않다. 개발자 특인지 모르겠으나 컴포트존이 침범당할 때 급격한 스트레스를 느끼곤 했는데 그런 것이 많이 없어졌다.

많은 문제를 풀어낸 경험이 곧 노하우로 축적됐다. 그래서 최근에는 완전히 새로운 문제를 만나는 일은 거의 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문제를 마주쳤을 때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빠르게 해결 방법을 도출할 수 있게 됐다.

20대 전반전 회고에 (어떻게 보면) 기술짱이 되겠다는 포부를 써뒀는데 약간이나마 이룬 것 같다. 업에 따라 필요한 기술이 다르다 보니 다른 분야는 또 어떨지 모르겠다만, 적어도 나중에 또 다른 데이터 프로덕트를 만들게 된다면 누구보다 가장 잘할 자신은 없더라도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는 있지 않을까 한다.


자기 동기 부여

나라는 존재로 살아가면서 나에 대해 계속 더 알아간다. 나는 내가 설정한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된다 믿는다. 나라는 인간은 목표가 없는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대로 목표가 있다면 전의를 불태울 수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번아웃 없이 달려올 수 있었던 것에는 정신력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목표를 제시하는 것을 잘 반복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최근에도 어떤 문제에 꽂혔다가 파고들어 간 끝에 잘못짚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목표로 삼았던 것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에 대한 허무함이 밀려왔지만 곧 다시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다. 이렇게 계속해서 다음에 집중할 것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열심히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다.

또 다른 것으로는 내가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왜 중요하고, 조직과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를 누군가가 알려줘야만 한다면 이게 나를 위한 삶이 맞는 걸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뒤에서도 이야기할 정신 승리와도 비슷한데, 다행히 나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의미를 찾고, 찾기 어렵다면 만들어내는 것도 잘했던 것 같다. 덕분에 더 열심히 달릴 수 있었다.


못했던 것

반면 못한 부분도 참 많았다. 이렇게 공개된 곳에 올려두기엔 부끄러운 내용이지만 그만큼 더 인지하고 앞으로 개선하고 싶다.


기술력

문제 해결을 잘했다고 써놓고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을 것 같다. 기술적인 문제를 마주했을 때 시간을 들여 붙잡고 있으면 어떻게든 해결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다고 느낀다.

지금도 어느 정도의 시스템을 만들고 유지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부족하다는 걸 알지만 어떤 부분을 어떻게 개선하는 게 좋을 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마치 어떤 디자인을 봤을 때 예쁘고 못났고를 판단하는 건 쉽게 되지만 어떤 부분을 고치면 예뻐질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앞으로 내가 기술적으로 매우 깊게 파고드는 삶을 살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의 기술적 역량은 갖추고 싶다. 그런데 아직 내가 원하는 수준까지 가진 못했다고 느낀다. 기준을 말하기는 참 어렵지만,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을 것 같은 문제를 마주했을 때 빠르게 해답을 낼 수 있는 정도까지는 되고 싶다.


네트워킹

나는 팀장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팀 빌딩에 대한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팀 빌딩을 위해서는 기존 팀원들과 함께 잘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잘 영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한창 채용에 신경 쓸 때 나의 네트워킹 부족을 크게 느꼈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많이 소개받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 앞으로도 팀 빌딩을 책임지게 된다면 이와 같은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될 것이라 예상된다.

그 밖에도 고민을 공유하고 조언을 구하고 싶을 때 마주할 사람이 없어 답답함을 느끼곤 했다. 다른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하면서 서로 조언을 나눌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꼭 당장의 고민에 조언을 구하는 게 아니더라도 배울 점이 많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즐겁지 아니한가.


친근한 사람 되기

어떤 사람은 다가가기 무섭고 부담스러운가 하면 어떤 사람은 왠지 친근하게 느껴지고 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 나는 전자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친근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꽤 오래전부터 했었다. 

친근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사회란 혼자 사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뭘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일은 다른 사람과의 협업이 중요한데 다른 사람에게 불편한 사람이 되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20대 전반전 회고에도 더 밝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메시지를 써뒀던 것이 웃기다. 지금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다. 적어도 아직 나는 친근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사실 어떤 노력을 더 해야 할 지도 잘 모르겠다만 앞으로도 계속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교훈들

이렇게 살아오면서 요즘 종종 생각하는 교훈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공리란 없다. 매번 생각하고 해답을 찾는 것에 질리지 말자.

개발자로서 코드를 작성할 때, 사회인으로서 사회생활을 할 때 우리는 자주 문제 상황에 봉착한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한다. 특히 의사 결정을 해야 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하기 때문에 심력이 많이 소모된다.

심력을 쓰는 것이 고통스럽다 보니 의사 결정을 자동화할 수 있게 규칙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는다. 우리 회사를 예시로 들면 "얼마 이상의 돈을 쓰고 있는 고객이 요청하는 기능은 무조건 개발하기로 하자"와 같은 규칙을 만드는 식이다. 이렇게 해서 잘 된다면 얼마나 좋은가. 이 고객이 요청한 것이 다른 고객들에게도 유용하게 쓰일지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하다. 개발을 하고 보니 다른 고객이 안 쓰더라도 나는 규칙대로 했을 뿐이라고 책임을 피할 수 있다.

규칙을 만드는 건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내 주변 개발자들을 보면 세상을 좀 더 편하게 살기 위한 알고리즘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알고리즘을 만들면 자동화하기 좋지 않은가. 하지만 위 예시만 생각해보더라도 어느 때에나 적용될 수 있는 규칙을 만드는 것은 어렵고, 오히려 위험한 경우도 있다. 

규칙을 만들지 못했다고 자존감이 떨어질 필요도 없다. 그저 세상이 그리 단순하게 돌아가지 않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번 생각하고 해답을 찾아야 한다. 물론 이렇게 매번 생각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을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원칙이 필요한 것 같다. "섣불리 자동화나 추상화를 하지 않는다", "단기 이익을 위해 장기 이익을 포기하지 않는다", "내가 편한 선택이 아니라 모두에게 올바른 선택을 한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실행이 문제다.

우리는 성공 스토리를 본다. 아마존, 디즈니, 넷플릭스 등, 그들의 성공 신화를 쓴 책들을 보면 제각각의 방법으로 성공했다. 그런데 그 방법을 그대로 따라간 다른 회사들은 다들 성공했을까? 아닐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성공하고 실패한다. 좋은 방법이라서 성공하고, 나쁜 방법이라서 실패하는 게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좋은 방법이어도 실행을 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고, 나쁜 방법이어도 빡세게 실행해서 성공할 수 있다. 

채용을 할 때 "최고의 인재만을 채용해야 한다"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 그걸 실제로 행하는 게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이미 좋은 것들을 많이 알고 있다. 프로젝트 매니징 어렵다. 근데 마땅히 더 나은 매니징 방법이 있나? 없다. 그냥 해야 된다. 

우리가 못 하고 있을까 봐 성공 방정식을 찾아 헤매길 멈추고 그냥 해야 된다. 그래서 AWS re:Invent에서도 "Go build"라는 말이 나왔지 싶다.


의지력은 소중하다.

의지력은 마나, 실행은 스킬 같은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의지력이 떨어진다. 근데 마나가 없으면 스킬을 못 쓴다. 실행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의지력이 떨어져 있으면 실행을 안 하게 된다.

그런데 마나가 깎일 일은 수없이 많다.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자동화할 시간이 부족해서 수동으로 해야 할 일들이 자꾸 생기는 것에 스트레스받고, 매니저 입장에서는 온갖 인사 관련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사람으로서는 가정사와 사회에서의 일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의사 결정권자로서는 규칙 없이 의사 결정 하는 것에 스트레스받고, 더 잘하고 싶은 사람으로서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나는 왜 더 잘하지 못하고 있는지 회한하며 스트레스받는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의지력이 깎여나가면 실행을 하기 위한 마나가 남아나질 않는다. 다소 도발적인 말일 수 있지만 정신 승리는 꽤 좋은 것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내가 한 일이 잘못됐을까 봐 걱정하는 것을 그만두고 정신 승리를 하면 의지력 소모를 막을 수 있다. 막기만 할까? 회복될 수도 있다. 실제로는 좀 못했더라도 차라리 회복된 의지력으로 또 다른 실행을 더 많이 하면 결국 더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과 마음가짐

지금까지 나의 강점과 약점,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계속 생각할 교훈들을 살펴봤다. 회고의 백미는 역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가 아니겠나. 대략적인 계획과 마음가짐은 이렇다.


내가 원하는 내가 되기

내 삶의 모토이기도 한데, 나는 내가 원하는 나로 성형해나가고 싶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영역별로 생각해 보면...

첫 번째로 더 강한 육신을 만들고 싶다. 운동한다고 주름 좀 잡았다만 사실 여전히 헬린이에 불과하다. 흔히 농담처럼 말하는 3대 500도 찍고 싶다. 크로스핏 할 시절에 느꼈는데 세상엔 강한 사람이 많더라. 꼭 멋진 몸을 만들기 위한 보디 빌딩이 아니라 인자강이 되고 싶다.

두 번째로 더 강한 멘탈을 갖고 싶다. 의지력은 소중하다고 교훈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잘 안 되곤 하는데 멘탈 관리다. 요즘 들어서 느끼는 건 멘탈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잘 흘려보내는 능력도 필요한 것 아닌가 싶다. 태극권처럼 말이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수양이 필요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더 강한 매력을 갖고 싶다. 친근한 사람이 아직 못 됐다고 쓴 부분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일 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은 매우 큰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왠지 같이 일하는 게 재밌는 사람들 있지 않나. 아직 나는 같이 일하는 게 재밌는 것보다는 따분한 캐릭터라고 느낀다. 경청을 잘하는 사람, 리액션이 좋은 사람, 재밌게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 등 갖추고 싶은 것들은 많다. 


네트워킹 더 하기

갖고 있는 고민과 교훈을 더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더 만들고 싶다. 나도 혼자 고민하고 해결하는 경험을 많이 했는데, 그 과정에서 실수도 정말 많았다. 누군가 해봤던 경험을 나눠줬더라면 분명 실수를 줄일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얻은 것을 나누고 싶다. 처음 AB180에 입사했을 때의 나는 아는 게 없는 깡통이었다. 그때 기술 자문을 해주셨던 준기님께서 겪고 있는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성과 실제로 쓰이고 있는 기술들을 알려주시는 등 많은 도움을 주셨다.

어떻게 보면 자전거를 타는 법을 알려주신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한 번 타기 시작하면 쉽지만 그 한 번이 어렵다. 자전거 타는 법을 몰라 헤매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곳들도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반복에 지치지 않는 자가 성취한다. 

얼마 전까지 유행했던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이 있다. 괜히 이 말을 인용해서 유행에 편승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나도 문장을 보고 굉장히 공감했다. 나 또한 꾸준히 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살아왔었기 때문이다. 

요즘 나보다 더 오래전부터 일하기 시작하신 분들 중 여전히 에너지를 갖고 일하고 계신 분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존경심이 든다. 사생활이지만 최근에 집을 재계약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신경을 써야 했었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점점 많아지지 않을까 한다. 여전히 에너지를 유지하면서 일하고 계신 그분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렇게 의지력이 쓰일 곳이 늘어나더라도 지금처럼 계속 실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대에 본 기억에 남는 다큐멘터리 중 하나는 "지로의 꿈"이다. 오노 지로라는 초밥 장인에 대한 다큐멘터리인데 오노 지로가 무려 60년간 매일 초밥을 만들어 오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다룬다. 정상에 도달하려 애쓰면서 계속 올라간다. 하지만 아무도 정상이 어딘지는 모른다. 

좀 엇나간 감상인 것 같긴 하다만 나의 감상은 이렇다. 그냥 존나 하는 거다. 60년간 매일 초밥을 만든 지로처럼. 다만 나는 초밥을 만드는 게 아니라 문제를 풀 뿐이다.


마치며

고작 30 정도 나이를 먹으면서 든 생각이지만, 점점 더 앞을 보는 게 아니라 뒤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더 좋은 걸 찾으려 하는 게 아니라 하던걸 더 잘하려는 느낌이 든달까. 우리 팀장님은 자꾸 새로운 도구를 도입하는 걸 반대한다라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양쪽이 어떤 심정인지는 알겠다. 그리고 점점 더 나도 그 "반대하는 팀장" 같은 사람이 되어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내 까다로운 성격을 받아주며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회사 분들, 그리고 동료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리고 앞으로 미래의 나와 함께 일할 사람들에게 미리 잘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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