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앞으로 개발자로서 어떤 성장을 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을 하곤 한다. 식상한 주제이긴 하지만 요즘 같이 AI가 부상하는 시대에는 더더욱 고민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는 AI가 빠르게 고도화돼서 개발자라는 직업이 금세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오곤 한다. 나 또한 ChatGPT와 같은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특히 최근에 릴리즈 된 GPT-4o 모델부터는 속도와 성능이 발전해서 이제는 정말 도움 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아졌다. 구체적인 경험을 공유해 보면 이렇다.
이번에 MySQL의 query 결과를 Snowflake로 옮겨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Airflow DAG을 개발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배경 지식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를 위해서는 MySQL query 결과에 대한 DDL을 Snowflake에 맞게 잘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옛날 같았으면 이를 위해 이런저런 검색을 해보면서 아이디어 초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을 텐데 이번에는 ChatGPT에 바로 물어봤다.
결과는 놀라웠는데, MySQL query 결과에 대한 cursor의 description을 활용하면 query 결과의 각 컬럼이 어떤 타입인지를 알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DAG 코드를 작성해 줬다. 코드에 잘못된 부분들도 있었고, 내 환경에 맞게 커스터마이징이 필요한 부분들도 있긴 했지만 금방 수정하여 사용할 수 있었다. ChatGPT가 완전히 개발을 대신해준 것은 아니었지만, 개발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드는 부분인 핵심 아이디어 도출 과정을 빠르게 해결해 줬기 때문에 생산성에 크게 도움 됐다고 느껴졌다.
이러니 몇 년 뒤면 개발자라는 직업이 사라질 것 같다는 소리가 나오지 싶다. 정말 금방 그 미래가 올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5년, 10년 이상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한다. 생각보다는 변화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으니까. 하지만 AI 때문에 개발자의 수요가 점점 줄어들기는 할 것 같다. 그런 미래에 살아남기 위한 개발자의 방향성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방향성은 정형화된 문제에 대한 해결 능력을 더 성장시키는 것이다. 간단하고 일반적인 문제들은 AI가 해결해 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문제들은 여전히 사람의 힘이 필요할 것이다. 뛰어난 아이디어나 알고리즘을 생각해 내거나, 까다로운 환경을 고려하여 코딩을 하는 일 등이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 방향성은 문제를 정형화하는 능력을 더 성장시키는 것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를 식별하고, 요구 사항들을 정리하고, 구체화되지 않은 일을 구체화하는 일 등이 여기에 속한다. PM의 일인 경우가 많은 바로 그 일들이다.
사실 나는 두 번째 방향성에 더 집중하고 있다. 첫 번째 방향성에서 두각을 보이기 위해서는 상위 몇 퍼센트 이내의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사람이 돼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쟁도 치열할 거라 생각한다. AI 뿐만 아니라 온갖 SaaS들도 정형화된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며 다가온다. 데이터 웨어하우스를 운영하는 게 까다로우니까 Snowflake 같은 SaaS가 문제를 해결해 주고, Elasticsearch를 운영하는 게 까다로우니까 Elasticsearch를 관리형 서비스로 제공해 준다. 아예 검색이라는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하는 Algoria 같은 서비스도 있다. 반면, 문제를 정형화하는 것은 AI나 SaaS가 대신하기 더 어려운, 인간의 창의성과 통찰력을 요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문제를 정형화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AI 시대에 더욱 중요한 개발자의 역량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안타까운 점은 많은 개발자들이 두 번째 방향성의 성장에 대해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개발자의 일이 아니라 PM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나는 개발자의 업의 본질이 컴퓨터를 활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관점에서 문제를 정형화하는 것 또한 개발자의 업에 포함된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잘 정리된 문제는 남이 해결해 주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개발자로서의 포지셔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GPT-5는 또 어떻게 나올지, AI가 비용 대비 효용이 더 높아질 수 있는지 등에 따라 또 미래가 달라지겠지만 지금까지의 생각은 이렇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어떤 세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