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주홍 Apr 27. 2024

선을 넘어서

선을 넘는 것이 더 큰 성과를 만들어내는 방법 중 하나인 것 같다는 생각을 최근에 했다.

우리 팀이 만들고 있는 Airbridge라는 서비스는 구글 애즈, 메타 애즈 등 다양한 매체들의 광고 성과를 측정하는 서비스이다. 다들 알다시피 이런 매체들에서는 광고를 하면서 돈을 쓰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매체의 대시보드에서도 매체가 측정한 성과와 비용을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가 있는데, 메타 애즈의 대시보드 상에서 나타나는 숫자와 Airbridge 대시보드 상에서 나타나는 숫자가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메타 애즈의 대시보드에서는 특정 캠페인이 1000번의 노출과 100번의 클릭, 이로 인해 10건의 설치가 발생했다고 나타나는데 Airbridge에서는 메타 애즈의 캠페인이 5건 설치만 발생시켰다고 나타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당연히 수치 차이가 발생하는 상황이 혼란스럽기 때문에 설명을 요청하는데, 정말 다양한 이유로 수치 차이가 나기 때문에 트러블슈팅에 시간이 꽤 드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이런 케이스는 우리 자체 데이터에 대한 분석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외부 의존성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런저런 가설을 테스트해봐야 하는데 고객의 메타 애즈 대시보드에서 어떻게 숫자가 찍히고 있는지를 매번 요청해서 물어봐야 하다 보니 커뮤니케이션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다.

나도 최근에 메타 애즈와의 수치 차이 이슈를 봐야 할 일이 있었는데, 이런 상황이 되니 정말 너무 답답했다. 심지어 고객은 CS팀과 커뮤니케이션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는 두 번의 홉을 거쳐야 내가 요청한 데이터를 받을 수 있었고, 고객으로부터 응답을 전달받기까지 하루 정도는 걸리곤 했다. 한두 번 이런 요청을 하다가 문득 이렇게 커뮤니케이션에 시간이 오래 걸리면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늦어지는 게 정말 고객이 원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그 고객이라면 빨리 수치 차이의 원인을 파악하고 캠페인을 집행하고 싶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생각이 든 뒤 곧바로 고객에게 메타 애즈 대시보드에 나를 초대해 달라고 했다. 물론 비즈니스 계정에 외부인을 초대하는 게 껄끄러운 일인 것은 알지만 문제 해결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고객은 흔쾌히 나를 초대해 줬고 이리저리 데이터를 확인해 본 결과 아예 다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전달할 수 있었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 과정에서 내가 느낀 것은 선을 넘었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마 내가 권한을 받지 못했으면 분명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고객과 우리의 CS팀, 그리고 나까지 모두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껄끄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선을 넘어 나에게 권한을 달라고 함으로써 문제를 더 빨리 해결할 수 있었다.

꼭 다른 회사와 협업할 때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조직 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개발자라면 당연히 기획자와 긴밀하게 협업하는 경우가 많고, 기획자의 기획에 따라 나의 일이 매우 달라진다. 그리고 전체의 생산성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기획에서 놓친 부분이 있어서 처음부터 다시 개발해야 하는 상황을 겪어본 사람들이라면 모두들 공감할 것이다. 릴리즈 직전에 “어, 이 부분은 좀 이상한데요?”라는 말이 나와서 자세히 확인해 보니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의 충격이란… 겪어본 사람은 안다.

당연하게도 이건 기획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한 기획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어렵다. 개발도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완벽한 코드를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어쨌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기획 단계에서 수정하는 게 가장 비용이 싸기 때문에 기획 단계에서 잘못되거나 빠지는 부분이 없도록 잘 챙기는 게 중요한데, 기획자 입장에서는 개발과 관련된 문제나 상황을 모르다 보니 당연히 놓치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럴 때 개발자가 선을 좀 넘어서 기획에 더 개입하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기획은 좋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어려움이 있으니 차라리 이런 식으로 UX를 바꾸면 어떻겠냐 등의 제안을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게 기획자의 일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더 효율적으로 일하게 될 수 있기도 하다. 다만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게 될 수도 있다 보니 조심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을 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이라면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이미 충분히 똑똑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럼 차이를 만들어내는 게 무엇인가 하면 결국엔 태도가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말한 선을 넘어서 일이 잘 되게 만드는 태도를 갖고 있는 것, 이것이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내 마음을 고쳐먹는 것은 남들을 바꾸는 것보다 비교적 더 쉬운 일이기도 하다. 내가 조금만 더 굳게 마음먹고 달리 행동해서 더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러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남들이 내 일을 침범하더라도 그렇게 함으로써 더 큰 성과가 나올 수 있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