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돈되지 못한 생각의 파편을 기어이 기록하는 이유에 대하여
우리는 완벽한 글, 정제된 문장을 강요받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생각을 표현하려 해도 수십 번의 자기 검열을 거친다. 이 표현이 맞을까. 이 단어가 최선일까. 혹시 논리적인 비약은 없을까. 그렇게 머릿속을 맴돌던 수많은 생각은 정작 키보드 위에서 한 줄도 채 쓰이지 못한 채 휘발되곤 한다. 세상은 잘 다듬어진 글을 선호한다. 빈틈없는 논리와 화려한 미사여구로 채워진 글은 박수를 받는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우리의 생각이 과연 그렇게 명료하고 반듯하기만 할까.
적어도 나의 내면은 그렇지 못하다. 어떤 날은 이유 모를 불안에 휩쓸리고, 어떤 날은 설명할 수 없는 기쁨에 들뜬다. 어제는 확신했던 신념이 오늘은 의심으로 흔들리고, 도무지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상념의 조각들이 시시때때로 떠오른다. 내 안에는 수많은 ‘나’가 존재하며, 그들은 매일같이 소란스러운 대화를 나눈다.
이런 혼돈 속에서 ‘완벽한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그것은 내 삶의 본질을 외면하는 기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냥 쓰기로 했다. 정돈되지 않으면 정돈되지 않은 채로, 두서가 없으면 두서가 없는 채로.
나의 글은 매끄러운 논문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삶의 스케치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쓰는가. 왜 이 두서없는 글을 굳이 세상에 내어놓는가. 그것은 ‘기록’이라는 행위가 가진 힘 때문이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내가 기록하지 않은 생각은, 존재하지 않은 세계와 같다’고,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은 연기처럼 사라지기 쉽다. 감정의 파도는 아무리 거셌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잦아들고, 그 파도의 높이를 잊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글로 옮겨 적는 순간, 무형의 생각은 유형의 존재가 된다. 나의 혼란스러움, 나의 기쁨, 나의 깨달음은 모니터 화면 위에, 혹은 종이 위에 박제되어 시간을 견디는 힘을 얻는다.
나는 그렇게 나의 세계를 구축한다. 두서없는 글이라도, 그것은 분명 그 순간 내가 존재했다는 증거다. 내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아파하고, 사랑했다는 흔적이다. 훗날 다시 돌아보았을 때, 그 거친 문장들은 그 어떤 잘 쓴 문장보다도 선명하게 그날의 나를 증언해 줄 것이다.
글쓰기는 나에게 있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행위다. 잡히지 않는 생각을 붙잡아 현재에 묶어두는, 가장 절실한 생존의 방식이다.
기록이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면, ‘발행’은 타인을 향한 조용한 노크다.
내가 남긴 두서없는 기록들은, 내가 인터넷이라는 망망대해에 띄워 보내는 유리병 속의 편지다. 이 편지가 누구에게 닿을지, 아니 닿기는 할지조차 알 수 없다. 대부분은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거나, 아무도 없는 해변에 쓸쓸히 부서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희미한 가능성에 기댄다.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파도를 겪고 있을 누군가가, 이 투박한 유리병을 발견하고 열어보게 될 가능성 말이다.
우리는 모두 외로운 섬과 같다. 각자의 섬에서 홀로 파도를 견디고 있다. 하지만 저 멀리 다른 섬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불빛을 볼 때, 혹은 내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을 받을 때,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다. 나의 글을 발견한 누군가가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작은 위로를 얻는다면. 나의 솔직한 혼란이, 비슷한 혼란 속에 있는 그에게 ‘당신도 괜찮다’는 무언의 공감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나의 글은 그 소임을 다한 것이다.
공감은 가장 완벽한 형태의 위로다. 그리고 나의 두서없는 글은, 그 공감을 찾아 헤매는 나의 가장 솔직한 손짓이다.
더 나아가, 나는 ‘한 문장’의 힘을 믿는다.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런 순간을 만난다. 거대한 담론이나 체계적인 이론이 아니라, 우연히 마주친 단 한 줄의 문장에 마음이 흔들리고, 삶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 그것은 책의 한 구절일 수도, 영화의 대사일 수도, 혹은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발견한 이름 모를 문장일 수도 있다. 거창한 가르침이 아니었다. 그저 그 순간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내 마음을 정확히 관통하는 그런 말이었다. 나에게도 그런 문장들이 있었다. 절망의 끝에서 나를 붙잡아준 문장, 안주하려는 나를 채찍질한 문장,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믿게 해 준 문장. 그 문장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록을 남긴다. 어쩌면 나의 이 두서없는 글 속에,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그 한 문장’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서. 나의 경험이, 나의 깨달음이, 혹은 나의 실패가 누군가의 결정에 작은 영감이 되고, 그의 마음가짐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사람의 세상, 그 마음을 바꿀 단 하나의 문장이 될 수 있다면, 그 가능성 하나만으로도 나의 두서없는 기록은 계속될 가치가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손에 들린 유리병 속 편지가 바로 그런 문장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