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써봅니다
오늘도 하얀 모니터 화면 위에서 커서만 깜빡거립니다. 이 깜빡임은 마치 저에게 "그래서, 그 책은 언제 다시 쓸 거야?"라고 묻는 채무자의 독촉처럼 느껴집니다.
사실, 저는 얼마 전까지 의욕적으로 책을 쓰고 있었습니다. 주제는 '인스타그램'이었습니다. 누구나 관심을 갖지만 누구나 성공하지는 못하는 그 매혹적인 플랫폼에 대해, 나름의 노하우를 담아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원고는 폴더 깊숙한 곳에 멈춰 있습니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제가 도망쳤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글을 멈춘 이유는 명확합니다. 인스타그램이라는 세계가 너무나 빨랐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것이 정답입니다"라고 원고에 한 줄을 적고 나면, 다음 날 그 방법은 이미 '옛날 방식' 취급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알고리즘은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바뀌었고, 트렌드는 제가 자판을 두드리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달아났습니다.
정보를 전달하는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 정보의 유통기한이 너무 짧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독자들에게 유용한 팁을 주어야 하는데, 그 팁이 책이 출간될 즈음에는 이미 낡은 유물이 되어버릴까 두려웠습니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이론이 아닌 실전으로 증명해 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새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내 이론대로, 내 경험대로 키워보자.
결과는 어땠을까요? 계정은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속도'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리고 서점의 베스트셀러들은 '스타트업 같은 폭발적인 성장'을 원합니다. "한 달 만에 1만 팔로워 달성!", "단숨에 인플루언서 되는 법!" 같은 자극적인 타이틀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제 계정은 아주 정직하고 완만하게, 계단 하나하나를 오르듯 성장했습니다. 분명 성장이지만, 책으로 엮어내기에는 왠지 초라해 보였습니다. '이 정도 속도의 성장을 누가 궁금해할까?', '이런 평범한 성장을 성공 사례라고 책에 써도 되는 걸까?'
스스로 만든 결과물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펜을 놓게 되었습니다. 정보도, 동기부여도, 심지어 극적인 재미도 줄 수 없을 것 같다는 자괴감이 저를 덮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책 쓰기를 중단하고 나니 다시 원점입니다. 당장 내 브런치에는 구독자 한 명 없는데, 나는 도대체 어떤 글을 써야 할까요?
빠르게 변하는 인스타그램의 기술적인 팁(Tip)을 쫓아가며 정보를 주는 글을 써야 할까요? 아니면 비록 폭발적이진 않더라도, 묵묵히 성장하고 있는 제 계정의 이야기를 통해 '느림의 미학'을 이야기하며 심금을 울려야 할까요? 그것도 아니면 있는 그대로, "나 지금 이렇게 헤매고 있어. 내 방법이 다 옛날 거래."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며 저 자신을 보여주어야 할까요?
주제에 따라 접근 방식은 달라지겠지만, 여전히 '쓴다'는 행위는 어렵습니다. 독자가 원하는 것은 '성공한 결과'일 텐데, 저는 지금 '고군분투하는 과정' 속에만 있으니까요.
하지만 멈춰진 원고를 다시 들여다보며 한 가지 생각이 스쳤습니다. 세상에는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무용담은 넘쳐납니다. 폭발적인 성장을 이룬 천재들의 이야기도 서점에 가득합니다. 그렇다면, 저처럼 변화에 뒤처질까 불안해하고, 생각보다 더딘 성장에 조급해하는 '보통의 사람들'을 위한 글은 누가 쓰고 있을까요?
어쩌면 제가 써야 할 글은 '인스타그램 정복기'가 아니라, '변화하는 플랫폼 속에서의 생존기'일지도 모릅니다. 옛날 방법이 되어버린 나의 노하우를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이 방법은 이제 통하지 않으니 다른 길을 찾아봅시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진짜 살아있는 정보가 아닐까요? 스타트업처럼 폭발적이지 않아도, 꾸준히 한 걸음씩 나아가는 그 지루한 과정을 견디는 법을 공유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더 큰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요?
이제 저는 구독자의 수나, 폭발적인 성장의 그래프에 연연하지 않고 다시 글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심금을 울리려 억지로 감정을 짜내지도, 대단한 정보가 있는 척 포장하지도 않겠습니다. 대신 급변하는 트렌드 앞에서 당황하는 저의 모습, 느린 성장에 실망했다가도 다시 게시물을 올리는 저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적으려 합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처럼, 저의 이 지극히 개인적인 실패와 고민의 기록이, 어딘가에서 비슷한 속도로 걷고 있는 독자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비록 그 책이 베스트셀러 매대에 오르지 못할지라도, 누군가의 책상 위에서 "나도 그래요"라는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성공담이 아닌 실패담을, 정답이 아닌 질문을 글로 씁니다. 이것이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진실한 글쓰기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