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의 글을 썼지만 구독이 없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이 쌓여 나를 만들 때

by 팀포라

브런치 작가 서랍의 숫자가 어느새 '100'을 가리키고 있었다.

100개.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누군가에게는 책 한 권이 될 분량이고, 누군가에게는 100일간의 성실함에 대한 증명일 것이다. 나는 잠시 그 숫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뿌듯함이 밀려올 줄 알았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옆으로 돌리면 마주하는 숫자는 잔인할 만큼 고요하다.

'구독자 1명'

마치 텅 빈 강당에서 홀로 마이크를 잡고 100번의 연설을 마친 기분이었다. 목은 쉬었고, 원고는 너덜너덜해졌는데, 박수 소리는커녕 인기척조차 들리지 않는 막막함. '발행' 버튼을 누를 때마다 느꼈던 그 짧은 설렘은, 통계 창을 확인할 때마다 묵직한 허무함으로 바뀌어 돌아왔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글쓰기는 참 어렵다.

단순히 자판을 두드리는 물리적인 수고로움을 말하는 게 아니다. 글을 쓴다는 건 내 안의 우물을 길어 올리는 일이다. 어떤 날은 흙탕물만 올라오고, 어떤 날은 두레박줄이 끊어지기도 한다. 내 평범한 생각, 부끄러운 감정, 어설픈 문장들을 마주하는 일은 때론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남들은 뚝딱 써내는 것 같은데, 나는 단어 하나를 고르는 데 한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공들여 쓴 글이 조회수 '1'에 머물러 있을 때의 비참함이란. 세상은 나에게 관심이 없고, 내 이야기는 소음조차 되지 못하는 것 같아 자판 앞에서 멈칫거린 날이 수두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빈 화면을 연다.

왜 쓰는가?

100개의 글이 허공으로 흩어진 것 같았던 그 순간, 나는 역설적이게도 내가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곳엔 100일 전의 내가 있었고, 50일 전의 고민이 있었고, 어제의 다짐이 있었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가장 성실한 독자는 '나'였다.

글을 쓰면서 나는 엉킨 마음을 풀었고, 모호했던 생각을 정리했으며, 나조차 몰랐던 내 안의 상처를 위로했다.

구독자가 없어도 글은 남는다.

100개의 글은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전단지'가 아니라, 내가 내 삶을 버텨낸 '발자국'이었다. 그 발자국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써본다.

누군가의 "좋아요"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의 나를 기록하기 위해서.

텅 빈 강당이라 해도 상관없다. 내 목소리를 내가 듣고 있으니까.

어쩌면 101번째 글은 누군가에게 가 닿을지도 모른다.

아니, 닿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쓰는 사람이고, 쓰는 행위 그 자체가 이미 나를 구원하고 있으므로.

오늘도 나는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숨을 고른다.

그리고 101번째 문장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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