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전야의 고요, 그리고 54개의 가능성을 마주하며

혼자였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었던, 3개월간의 인턴십 프로그램 준비 기록

by 팀포라

새벽 공기가 차갑다. 모니터 속 깜빡이는 커서는 이제 멈췄고, 수십 번 고쳐 쓴 큐시트와 체크리스트는 비로소 '최종_final_진짜진짜최종'이라는 이름을 달고 바탕화면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창밖은 아직 어둡지만, 내 안에서는 이미 거대한 파도가 들이닥치기 직전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내일, 아니 몇 시간 뒤면 시작된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54명의 약대생 인턴들을 맞이하는 날. 지난 3개월간 나를 지탱해 온 유일한 목표이자, 나를 벼랑 끝까지 밀어붙였던 그 시간이 드디어 막을 올리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안도감보다는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묘한 감정이 앞선다. 보통 50명 규모의 행사, 그것도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실무 위주의 교육과 압도적인 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인턴십 프로그램이라면 최소한 한 팀이 전담하여 붙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기획, 운영, 디자인, 섭외, 예산 관리 등 각 파트를 나눠 맡아도 벅찬 규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회사 내 산재한 수많은 프로젝트들 사이에서, 이 거대한 배의 키를 잡은 것은 오로지 나 혼자였다. 지난 90일은 그야말로 '고군분투(孤軍奮鬪)'라는 사자성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처음 기획안을 잡던 날의 막막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이 많은 인원을 혼자 감당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 끊임없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하고자 지원한 학생들의 기대가 어깨를 짓누르면서도 동시에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나 '변수'와의 싸움이었다. 혼자 진행하다 보니 의사결정 과정에서 놓치는 부분이 생길까 봐 늘 노심초사했다. 계획은 수시로 변경되었다. A 안이 확정되는가 싶으면 예상치 못한 외부 요인으로 B안으로 틀어야 했고, 예산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줄었다 늘었다를 반복하며 나를 괴롭혔다. 특히 예산 문제는 매 순간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넉넉지 않은 비용으로 소위 '있어빌리티'한 행사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미션. 저렴해 보이지 않으면서도 세련되고, 알차면서도 감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나는 디자이너가 되었다가, 총무가 되었다가, 개발자가 되었다가 때로는 짐꾼이 되어야 했다. 견적서를 수십 번 다시 쓰고, 업체와 실가 랑이를 벌이며 100원 단위까지 계산기를 두드리던 밤들. 그 과정에서 나의 자존심은 깎여나갔을지 몰라도, 행사의 퀄리티는 조금씩 다듬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실무자의 숙명이라 여기며 버텼다.


이 과정에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체력'의 중요성이었다. 20대 때는 밤을 새우고도 다음 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면 거뜬했는데, 해가 갈수록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실감한다. 쏟아지는 잠을 쫓기 위해 들이킨 카페인과, 불규칙한 식사, 끊임없는 긴장 상태가 이어지며 몸은 비명을 질러댔다. "체력이 곧 실력이다"라는 말을 이토록 절실하게 깨달은 적이 있었던가. 의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물리적인 한계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 건, 내일 만날 54명의 눈빛이었다.


전국 약학대학에서 모인, 아직은 풋풋하지만 열정만큼은 프로 못지않은 '피코프렌즈'들. 그들이 이곳에서 보낼 시간은 길지 않다. 짧은 인턴 기간이지만, 나는 그들이 단순히 '시간을 때우고 가는' 경험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될 확실한 '무언가'를 가져가길 바랐다.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현장의 치열함, 업무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기쁨 같은 것들 말이다. 내가 겪은 이 시행착오와 고생이 그들에게는 잘 닦인 길이 되어주기를, 그들의 열정이 빈 공간을 채우기를 간절히 바라며 콘텐츠 하나하나를 다듬었다.


혼자 준비했기에, 내일 현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구멍들이 발견될 것이다. 동선이 꼬일 수도 있고, 기자재가 말썽을 부릴 수도 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지만, 이제는 안다. 완벽함보다 중요한 것은 진심이라는 것을. 그리고 든든한 지원군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글을 빌려, 내일 현장으로 달려와 줄 우리 팀원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본인들의 업무도 바쁠 텐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외근을 자청하며 "혼자 너무 고생 많았죠? 내일은 우리가 도울게요."라고 말해주는 동료들. 그 한마디가 지난 3개월간의 고독을 씻겨 내려가게 했다. 혼자 준비했지만, 결국 나는 혼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의 배려와 덕분에 나는 내일 조금 더 당당하게 학생들 앞에 설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이 고생과 경험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바닥난 체력과 맞바꾼 이 치열했던 시간은 어딘가에 단단한 굳은살로 박혀, 훗날 더 큰 파도가 덮쳐왔을 때 나를 지탱해 줄 버팀목이 되리라 믿는다. 다른 곳에서, 다른 프로젝트를 맡게 되더라도 나는 이 번 프로젝트를 기억하며 "그때도 해냈는데"라며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날이 밝으면 54명의 청춘들이 문을 열고 들어올 것이다. 그들의 설렘 가득한 표정을 마주하면, 지난밤의 피로는 눈 녹듯 사라질 것 같다. 비록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준비는 끝났다. 시행착오는 겪을지언정 실패는 없을 것이다. 나의 진심이, 우리의 노력이 54명의 가슴에 닿기를. 웰컴, 약대생 피코프렌즈.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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