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어떤 이름은 부르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진다. 내게는 8개월간 함께 전장을 누볐던 신입 사원 A가 그렇다.
당시 나의 직함은 ‘리더’였지만, 사실 그것은 허울뿐인 껍데기에 불과했다. 상사의 지독한 마이크로 매니징 아래서 나는 결정권 하나 없는 실무자에 머물렀고, 내게 주어진 역할은 팀원을 보호하는 방패가 아니라 그저 위에서 내려온 지시를 전달하는 스피커였다. 리더로서 무언가 해주고 싶었지만, 정작 내 앞가림조차 버거웠던 시절. 나는 참 무능한 사수였다.
그런 나의 팀에 A가 들어왔다. 면접 날, "빨리 실력을 쌓아 팀장이 되고 싶습니다"라며 눈을 빛내던 그 아이. 그 패기 어린 대답이 나를 부끄럽게 하면서도, 한편으론 이 삭막한 곳에서 저 빛이 사그라지지 않길 간절히 바랐다.
회사에는 매일같이 파도가 쳤다. 불합리한 업무 지시와 갑작스러운 변수들이 우리를 덮쳤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미안해, 같이 조금만 더 고생하자"라는 말뿐이었다. 하지만 A는 원망 대신 공부를 택했다. 폭풍 같은 업무 속에서도 퇴근 후 책을 펼쳤고, 매일 조금씩 단단해졌다. 그 성실함은 무력했던 나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결국 우리는 8개월 만에 함께 짐을 쌌다. 도망치듯 나온 길이었지만, 서로의 앞날을 축복하며 각자의 방향으로 걸어갔다. 과연 우리가 잘한 선택일까, 그 아이에게 상처만 준 건 아닐까 하는 부채감이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한 달 뒤, 연락이 왔다. "팀장님, 저 정말 좋은 곳에 취업했어요. 너무 행복해요. 제가 꼭 맛있는 밥 한 끼 대접하고 싶습니다. 찾아갈게요."
다시 만난 A의 얼굴은 몰라보게 밝아져 있었다. 내게 건네는 따뜻한 식사 대접은 단순한 밥 한 끼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리더로서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고 자책하던 시간들에 대한 면죄부였고, 우리가 함께 견딘 8개월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증명이었다.
좋은 리더란 무엇일까. 높은 자리를 만들어주는 사람일까, 아니면 함께 비를 맞으며 다음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동료일까. 나는 여전히 답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날 우리가 나눈 식탁 위에는 어떤 성공 신화보다 값진 '성장의 온기'가 가득했다는 사실이다.
고맙다. 나의 서툰 리더십 아래에서도 꺾이지 않고 꽃을 피워줘서. 그리고 다시 돌아와 그 향기를 나눠줘서. 이제야 비로소 나도 마음 편히 웃으며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고생 많았어. 너는 충분히 그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