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가 견뎌야 하는 '도돌이표'의 가혹함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려대는 카카오톡 알림음은 이제 공포를 넘어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사내 메신저라는 공식적인 통로를 두고 굳이 개인의 휴식 시간을 침범하는 상사의 변명은 늘 한결같다. "미안해요, 생각날 때 적어둬야 해서." 그 '생각'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잠을 깨우고 일상을 갉아먹을 만큼 고귀한 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입술을 깨물며 삼켰던 밤들이 모여 내 얼굴을 어둡게 만들었다.
3주 전에 보고하고 이미 지나간 내용을 이제야 꺼내어 뒤늦은 지적을 퍼붓는 상사. 회의에서 분명히 컨펌했던 기획안을 두고 완성된 결과물 앞에서 "이건 망했다"며 말을 바꾸는 무책임함. 본인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그건 모르겠고, 아무튼 이건 하고 싶다"는 억지는 실무자의 영혼을 유령처럼 흐릿하게 만든다.
카카오톡 로그인조차 헤매는 이가 거창한 플랫폼 개발을 논하고, 유튜브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가 단번에 '골드 버튼'을 가져오라 호령하는 풍경. 코미디 영화에나 나올 법한 비상식적인 장면들이 나의 현실에서는 매일같이 상영되는 호러물이었다. 더욱 절망적인 건, 그 무능의 결과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실무자의 몫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결국 나를 구원한 것은 대단한 결단이 아닌, 고작 '36만 원'의 차이였다.
그 작은 금액 때문에 망설였던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사표를 던지고 나온 뒤 마주한 공기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달콤했다. "그렇게 잘 아시면 직접 하세요"라는 말을 가슴속에만 품고 살 때는 몰랐다. 그 한마디를 뱉어내고 내딛는 발걸음이 이토록 가벼울 줄은.
세상에 길은 많고, 우리가 숨 쉴 곳은 이곳이 아니어도 충분히 존재한다. 조금 더 힘들거나 덜 힘든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상식 밖의 존재에게 내 마음과 몸을 난도질당하며 머물 이유는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휴대폰 화면에 뜬 상사의 이름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쁜 마음이 당신의 얼굴을 망치게 두지 마라. 몸과 마음이 상해가면서까지 지켜야 할 자리는 세상에 없다. 때로는 과감하게 '한 방' 던지고 나오는 것이, 당신의 남은 생을 향한 가장 정중한 예의일지도 모른다.
"그럼, 직접 하세요." 이 짧은 문장이 당신에게 줄 자유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