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정의 하이엔드 월드(High-End World) 55
스리랑카를 다녀와서 오랫동안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추천을 했지만, 그다지 반응이 좋지 않았다. 인도도 조심스러운데, 인도보다 더 작고 못사는 나라 스리랑카에 뭐 볼게 있는지, 위험하진 않을지 걱정스럽기 때문인 듯 했다.
그렇지만 거대한 인도 대륙의 남쪽, 인도양의 섬나라 스리랑카는 말 그대로 보석같이 아름다고 흥미진진한, 소중한 여행지이다. 불교 성지 순례를 떠나는 나라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그 외에도 전 세계 7종류의 바닷거북 중 5종류가 알을 낳고 자라는 곳이며, 수준 높은 관찰선을 타고 거대한 고래를 지켜볼 수 있고 세계 최고의 야생 코끼리 사파리, 표범 사파리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오렌지 빛 석양이 물드는 하늘과 야자나무를 바라보며 이국적이지만 현대적인 리조트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다양한 향신료를 이용해 자극적이지만 맛있고 푸짐한 해산물에도 도전해본다.
스리랑카에서는 무엇보다 실론티를 즐긴다. 실론티는 홍차 혹은 블랙티 라고 불리는 세계적인 발효차이다. 섬의 남부에는 산맥을 따라 이어지는 넓은 차 밭이 펼쳐져있다. 아침이면 몽롱한 안개·이슬과 함께 가지각색의 꽃과 푸른 차 밭이 맞이하는 곳, 이곳에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최고의 호텔 실론 티 트레일(Ceylon Tea Trail)이 있다.
고도 1250m에 위치한 티 트레일 호텔은 세계 최초의 차 농장 리조트로 1888년과 1950년 사이에 지은 4채의 식민지 시대 전 농장주의 저택을 호텔로 개조한 곳이다. 4개의 저택은 아름다운 차 밭 사이에 보석처럼 박혀있다. 각 저택은 호수나 차 농장, 계곡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전망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객실이 프라이빗 가든을 가지고 있고 모두 전문 버틀러 서비스를 제공한다. 수영장, 도서실 등이 갖추어져 있어 고요한 휴식을 취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다. 이곳에서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최고의 리조트. 식민지 시대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점은 아쉽지만 역사 속 한 장면으로 돌아가 농장주의 집에 초대받은 듯 이국적인 편안함과 서비스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덜컹거리는 시골길을 지나 차로 찾아가도 좋지만 콜롬보 공항에서 헬리콥터로 구릉진 차 농장과 울창한 삼림이 맞닿은 인도양을 내려다보며 이동하는 편이 더욱 멋지다. 시간에 여유가 있고 좀 더 이국적인 순간을 원한다면 열차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도착하면 눈 앞에 차 밭이 펼쳐지는 영국식 정원에서 전담 버틀러가 맞이한다. 영국식 애프터 눈 티나 차로 만든 칵테일로 오후를 시작한다.
주변에 들를 곳이 없는 리조트의 위치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래된 전통 속에 유지되어온 트레일 하우스의 자존심 때문에도 하루 세 번의 식사와 차, 간식이 모두 올 인클루시브(All Inclusive)로 포함되어 서비스된다. 티트레일에서의 식사는 따로 메뉴가 없고 셰프와 논의하여 결정한다. 스테이크 등의 익숙한 양식에서 스리랑카 스타일 커리까지 다양한 음식이 제공된다.
또한 간식은 물론 와인·스피릿·소프트드링크 등 음료와 주류도 무제한으로 제공된다. 수영장과 도서실에서 시간을 보내며 차 밭의 푸른 빛에 푹 빠져 쉬어도 좋고 산과 호수와 구불구불한 길과 폭포를 따라 이른 아침 손으로 찻잎을 따는 동네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느릿느릿 산책을 해도 좋다. 고지대까지 올라보는 본격적인 트레킹도 흥미롭다.
이 지역에서는 매년 30만t이 넘는 실론티를 생산해 전 세계에 판매한다. 호텔에서도 딜마(Dilmah)라는 브랜드로 차를 생산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신선한 차'로 유명하다. 그래서 실론티 트레일에서는 홍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배우고 시음해볼 수도 있다. 현지에서 만들어진 신선한 차는 물론, 품종과 잎의 상태, 발효 정도에 따라 다른 다양한 차를 전문가의 세심한 설명을 들으며 맛본다.
인도양의 푸른 바다, 수도 콜롬보의 이국적인 모습, 캔디 불치사를 비롯한 불교 유적, 그리고 실론티. 이 작은 나라 스리랑카의 매력은 끝이 없다.
* 이 글은 2016년 2월 10일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