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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정 Aug 23. 2024

작은 베르사이유, 샹티이 성과 오베르쥐 뒤 쥬 드 팜

서현정의 하이엔드 월드(High-End World) 38

프랑스 파리에서 북쪽으로 40km, 프랑스 소설 속의 한 장면에 들어선 듯 아름다운 샹티이(Chantilly)숲을 지나면 샹티이 성을 만날 수 있다. 옅은 회색빛이 감도는 프렌치 블루와 베이지로 이루어진 성과 마을은 영화롭던 근대 프랑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샹티이 성의 역사는 약 2000년 전의 요새에서 시작된다. 본격적인 성의 건설은 15세기부터였다.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7세기 태양왕이라고 불릴 만큼 막강했던 루이 14세의 사촌, 콩데(Conde)경에 의해서이다. 콩데 경은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권력자로 베르사이유를 만들었던 루이 14세를 따라 당대 최고의 조경 전문가와 연회 전문가, 기획자를 불러 자신의 성을 만들었다. 샹티이 크림으로 불리는 유명한 디저트 용 크림도 당시 성에서 거행되었던 연회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베르사이유의 연회를 관장했던 바텔(Vatel)은 이곳의 연회를 위해, 지역의 풍부한 유제품을 이용하여 샹티이 크림을 만들었다.  


대운하, 분수, 정원, 연못을 성 주위로 적절하게 배치하여 크기가 작다고는 하지만 베르사이유의 아름다움에 뒤지지 않는다. 대운하를 따라 나있는 길은 몰리에르, 라신 등 당대 최고의 문호들도 즐겨 걸었던 길이며, 정원은 프랑스식 정원의 원형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운하 옆으로는 ‘하모(La Hameau)’라고 불리는 작은 오두막 정원도 있다. 목가적인 풍경에서 휴식을 취하고자 만들었던 곳으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베르사이유에 만들었던 ‘쁘티 트리아농(the Petit Trianon Garden)’의 모델이 된 곳이라고 한다.


성 안의 콩데 미술관은 파리 교외의 미술관이라고 무시하기에는 규모와 작품 수준이 엄청나다. 1000여점의 유화, 5000여 점의 드로잉 등 15~19세기 르네상스 이후 근대까지의 유럽 명작들을 소장하고 있다. 라파엘(Raphael), 델라크루아(Delacroix) 등 최고의 예술가들이 남긴 걸작이 전시되어 있으며 라파엘의 ‘모레타의 성모’, ‘오를레앙의 성모’ 등이 유명하다. 이 미술관은 1886년 국가에 기증되었는데 기증 시 이곳의 작품들은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한다는 단서가 있었다고 한다.        

샹티이가 특별한 것은 성 외에도 프랑스 경마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성 옆으로는 18세기에 시작되어 1857년 완성된 경마장 겸 마굿간이 있다. 마굿간이라고 우습게 보기에는 그 규모나 아름다움이 상당하다. 파리의 유명한 롱샹 경마장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현재는 ‘살아있는 말 박물관(Musee Vivant du Cheval)’으로 일반 공개를 하고 있다. 말에 관한 자료 열람 이 가능하고 수 백 마리의 스페인산, 프랑스산 말을 직접 볼 수 있다. 말 쇼도 유명하다.


너도 밤나무와 떡갈나무로 이어진 길을 따라 말 박물관 옆의 생 드니 문(the Saint-Denis Gate)을 지나면 마을이 시작된다. 마을 입구, 성의 정원과 이어진 호텔 오베르쥐 뒤 쥬 드 팜(Auberge du Jeu du Paume)은 샹티이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게 해주는 또 하나의 특별한 곳이다. 심플하지만 우아한 베이지 톤의 저택으로 근대 프렌치 스타일의 절정을 보여준다. 단아하게 꾸며진 정원 전망의 방들은 장식적이지만 과하지 않다. 올해 미슐랭 2스타를 받은 메인 레스토랑 ‘라 따블르 뒤 꼬네따블(La Table du Connetable)’은 전통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한 음식을 제공한다. 도서관과 벽난로, 오래된 샹티이 도자기로 꾸며진 편안한 전통 레스토랑 ‘윈터 가든(Winter Garden)’도 있다. 샹티이 성이 수많은 왕과 귀족의 놀이터였던 당시 모습을 잇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얘기하는 곳이다.


아름다운 성과 정원, 숲 길을 거닐고 콩데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며 호텔 레스토랑에서 최고의 음식을 맛본다.


그리고 여유가 있다면 샹티이가 자랑하는 특별한 골프 코스를 방문해 봐도 좋다. 비교적 골프를 즐기지 않는 프랑스에서는 보기 드문, 세계 100대 순위 안에 드는 프라이빗 골프 코스 ‘골프 드 샹티이(Golf de Chantilly)가 있다.


샹티이 성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이곳에서의 라운딩은 숲 속에서 조용하고 고즈넉하게 나만의 시간을 즐기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영국이나 미국에서 라운딩 중 간단한 식사와 맥주를 즐긴다면 이곳에서는 와인을 마신다. 프랑스답다.



* 이 글은 2015년 10월 14일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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