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귀를 열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아이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묻고 또 물으며 열두 고개를 넘었다. A4용지 3장 분량의 아이가 쓴 백일장 글은 쉽게 이해되지 않은 내용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하나하나 이야기해 가며, 이런 뜻 저런 의미라고 설명했다. 먹을 갈아 붓으로 글을 쓰던 그 옛날 시조보다도 더 내용이 압축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아이의 설명을 충분히 이해하고 나니, 이런 생각을 하며 글을 썼다는 게 사뭇 놀라웠다. ‘이런 어려운 고민을 담으려고 했다고?’ 생각은 훌륭한데, 그 생각을 글로 옮겨 쓰는 건 또 다른 일이다. 아이가 쓴 백일장 글은 그 생각이 쉽게 드러나 있지 않았다.
얼마 전 ‘강정구추모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강정구문학상’ 백일장 대회를 준비하며 있었던 일이다. 기념사업회에서 강정구문학상의 첫발을 내디디며, 참교육의 산실인 삼각산재미난학교(실제 존재하는 학교 이름이다)에 그 첫 번째 기회를 고맙게도 제공해 주었다. 주제는 ‘민주주의의 정신은 무엇인가?’. 아이가 작성한 짧은 글 안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담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내용의 중심이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그 여러 가지 생각을 모두 담아내려면, 책 한 권 분량은 족히 필요해 보였다. 여러 가지 생각들 중 한 가지 주제를 명확하게 정리하는 게 필요해 보였다.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온 신경을 집중할 때 나오는 진실의 미간. 이 진실의 미간으로 설명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아이의 생각을 이렇게 이해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이 기본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의 의견이 소외될 수밖에 없다. 동시에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해야 보다 성숙한 제도로 유지될 수 있다. 다수결의 원칙과 소수의 의견이 대립될 수밖에 없는 민주주의의 이 한계점’을 아이는 어렵사리 말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백일장 글에 앞서 아이가 생각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도록 토론을 시작했다. 아이는 소수의견이 약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다수가 조금 더 배려하고, 신경을 써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자기도 언제든 약자의 입장에서 소수의견을 말할 수 있다고 하면서. 나는 순순히 공감해 주지 않았다.
이건 단순히 배려와 양보의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소수의견을 포용하고 반영하는 것은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할애되는 만큼 경제적 측면과 사회적 효율성도 고려해 봐야 하고, 뒤따르는 불편함도 다수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다른 관점을 꺼냈다. 학교에서 수업시간표를 정하거나 여행지를 결정할 때를 예로 들며, 소수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인지를 이야기했다.
무엇보다 자신과 다른 소수의견이 나왔을 때 ‘나는 소수의견을 수용해 줄 수 있는가?’를 아이에게 되물었다. 머뭇머뭇하던 아이는 끝까지 의견 일치가 안되면 어쩔 수 없이 다수결로 하겠지만, 그래도 더 많이 대화를 시도해 볼 것이라 했다. 진정성이 의심되어 떠보듯이 한 번 더 물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진짜로? 너 쫌만 그러면 짜증왕이잖아. 짜증임금. 짜증황제. 짜증계의 아이돌.” 아이는 놀림에 발끈하면서 잘 안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려고 노력할 것이라 다짐했다. 아이의 다짐을 보며,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강정구문학상에 참여하는 가치는 이미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기고 표현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보고서든 이메일이든 글쓴이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회사에서 묻고 또 묻는 일은 내 경험상 허다했다. 아이가 쓴 백일장 글을 보고, 부연 설명을 들으며 “지금 하고 있는 말을 그대로 적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이 말을 몇 번 했었다. 덧붙여 “왜 니 생각을 있는 그대로 쓰지 않고, 자꾸 어렵게 글을 만들려고 하는 거야?” 이 말도. 아이는 자기 생각을 풀어쓰면서, 이게 더 좋은 것인지를 물었다. 중언부언 구구절절 쓰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가끔 눈을 쳐다보기도 했다.
“자 충분히 다 썼으면, 이제 필요 없는 말은 하나씩 빼 보자.”
소리 내어 읽어보면서 중복되는 단어나 불필요한 글자들을 지워보기 시작했다. 중복되는 단어는 금세 찾았지만, 불필요한 글자들을 골라내는 건 어려워했다. 문장들을 한 줄씩 꼼꼼히 읽어보며, 굳이 없어도 내용에 지장이 없는 글자들을 찾아보고, 있을 때와 없을 때를 비교해 가며 읽었다. 불필요한 글자들이 많을수록 말하고자 하는 진짜 내용이 잘 드러나지 못한다, 같은 내용이라면 열 문장보다 한두 문장이 더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글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아이는 곧 익숙해졌는지 불필요한 글자를 지운 후 읽어보고, 문장이 어색하다 싶으면 다시 되살리기도 했다.
간단해 보이는 과정이지만, 아이와 백일장 글을 가지고 한 번씩 토론할 때마다 두 시간가량이 금세 지나갔다. 지겹고 힘들 만도 할 텐데, 아이는 끈기 있게 이틀에 한 번씩 수정한 글을 내게 가져왔고, 이렇게 다섯 차례나 토론을 이어갔다. 뒤로 갈수록 아쉬웠던 건 나의 지식이 부족하다는 걸 스스로 체감하면서였다. 글의 어색한 부분을 알아보는 눈은 있지만, 문장의 구조와 호응관계 같은 문법적 지식을 체계적으로 설명해 줄 입은 없었다. 그저 느낌적인 느낌으로만 이야기를 해줄 뿐 제대로 된 이론적 설명을 뒷받침해 주진 못했다. 부모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말을 새삼 공감한 순간이었다.
강정구문학상 백일장 제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청소년 민주주의 말하기대회’ 소식을 접했고, 아이는 이번에도 도전해 보기로 했다. 주제는 같았지만 대회 성격에 알맞게 새로운 내용으로 다시 글을 썼고, 자연스럽게 퇴고는 아빠와 함께하는 걸로 이어졌다. 연거푸 글쓰기 대회를 통해 무언가 경험한 것이 좋았던지, 아이는 다른 백일장 대회에도 또 도전할 생각을 하게 됐다. 짧은 기간 두 번의 경험을 통해 나름 글쓰기에 재미를 붙인 것 같다.
내게도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초등 6년의 시간 동안 아이 교육과 담을 쌓았던 나에게, 처음으로 아이와 아빠가 무언가를 함께해 본 참교육의 경험이었다. 아이와 아빠가 나란히 책상에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고민을 하며, 때로는 마주 보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서로 웃고,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하며, 아이와 동료애 같은 느낌도 받았다.
훗날 이때를 되돌아보면, 정말 뿌듯하고 행복했던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값진 사실은 이번 대회로 끝이 아닌, 이런 경험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