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형 대안교육기관, 삼각산재미난학교 학부모의 24문 24답
도시형 대안학교, 삼각산재미난학교 학부모의 24문 24답도시형 대안학교, 삼각산재미난학교 학부모의 24문 24답
아이가 5살 때니까, 딱 10년 전이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에 입학한 해니까 정확히 기억한다.
봄기운이 살랑이는 5월 즈음의 오후였다.
놀이터에서 아이랑 시소도 타고 그네를 밀어주며 놀고 있었다. 올해 입학한 체능단은 재밌게 다니는지 궁금했다.
"유치원은 어때? 친구도 많은데, 어린이집 보다 재밌어?"
이런 식의 질문을 했었다. 아이는 그네를 흔들흔들 타며 흥얼대듯이 말했다.
"놀 시간이 없어요."
의외의 대답.
‘놀 시간이 없다는 게 무슨 뜻이지? 놀 시간이 없으면 아쉽게 말할 법도 한데, 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지?’ 아리송했다.
"놀 시간이 없다는 게 무슨 말이야?“
아이와 나눈 이야기를 풀이해 보면 대략 이랬다. 어린이집에서는 노는 시간도 많고, 밥 먹고 낮잠도 자고, 만들기 하는 시간도 많았는데, 유치원은 수업들이 꽉 차 있어 쉬는 시간이 부족하고, 그래서 노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살짝 아쉬운 듯 씩씩하게 또 강조하며 말했다.
“밥 먹고 노는데 시간이 없어요"
아이들의 단축 화법은 참 신비롭다.
이 말은 점심시간이 그나마 길게 쉴 수 있는 시간이고, 그때 블록들로 이것저것들을 만들고 노는데, 그 시간마저도 어린집이 보다 짧기 때문에 노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아이는 블록으로 비행기나 소방차, 덤프트럭을 만들고 입으로
“쓩~” "부웅~~”
소리를 내며, 노는 걸 참 좋아했다. 말하는 것도 여물지 않은 5살 꼬맹이가 놀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났었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들었던 것 같다.
‘벌써 너도 바쁨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구나’
아이 입장에서 유치원은 바쁜 곳이었다.
왠지 아이가 벌써부터 사회생활의 첫발을 뗀 느낌과 약간 아쉽기도 짠하기도 했다. 앞으로 학교를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지금보다 더 바빠질 텐데. 시간은 점점 줄어들 텐데. 노는 시간이 없어 보여도, 마음껏 놀 수 있는 시간은 지금이 가장 많을 텐데…
10년이 지났어도 이날의 모습은 오래된 사진을 보는 것처럼 뚜렷이 기억난다. 이날을 생각하면 그 시절 잔상들이 함께 떠오른다.
아이랑 같이 목욕탕을 가고, 목욕이 끝난 후 바나나맛 우유를 한 개씩 손에 쥐고 빨대로 쪽쪽~ 빨아먹었던 기억.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한 손은 아빠 손을 꼬옥 쥐고, 한 손은 주먹을 쥔 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스스로 뿌듯하게 웃던 모습.
이 모습을 본 동네 상인들이 귀여워하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던 기억.
그땐 아이가 정말 어렸었는데, 정작 그때는 그렇게 어리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항상 오늘 보는 아이가 어제보다 더 커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른이 된 내가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의 나인 것처럼.
이날이 이따금씩 떠오른다.
따뜻했던 봄,
주말의 어느 날,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서 보냈던 평범하고 한가로웠던 오후.
바쁘다는 단어를 알기도 전에
이미 바쁜 일상을 맞이해버린 5살 꼬맹이의 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