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관광에 대한 다양한 시선
관광을 떠올리면 대부분 '관광객'을 먼저 생각한다. 호텔과 리조트, 관광명소와 기념품 가게들이 관광객의 발길을 기다리며, 지역 경제는 이들의 지갑이 열리기를 고대한다. 하지만 관광은 단순한 방문과 소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 중심에는 그 장소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지역주민들이 있다.
관광산업이 관광객의 수요에 집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관광객 중심의 관광은 무엇보다 뚜렷한 경제적 효과를 가져온다. 두바이는 사막 도시에서 연간 1,6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탈바꿈했다. 화려한 초고층 빌딩, 인공 섬, 쇼핑몰과 테마파크는 모두 관광객의 만족을 겨냥한 시설이다. 이러한 관광 인프라 구축은 두바이 GDP의 약 12%를 차지하며,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싱가포르 역시 관광객 중심의 개발로 성공을 거둔 사례다. 마리나 베이 샌즈, 가든스 바이 더 베이 같은 랜드마크 건설과 카지노 리조트 산업 육성을 통해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비즈니스 허브를 넘어 세계적인 관광 목적지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국제적 인지도를 크게 향상시켰다.
관광객 중심의 관광은 인프라 개발도 촉진한다. 공항, 도로, 대중교통 시스템이 개선되고, 이는 결국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으로도 이어진다.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는 '왕좌의 게임' 촬영지로 알려진 후 관광객이 급증했고, 이에 따라 도시 인프라가 현대화되었다. 또한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식당, 상점들은 지역주민들에게도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이점이 있다.
문화적 측면에서도 관광객 중심의 개발은 종종 지역 문화의 보존과 재활성화를 촉진한다. 관광객들이 역사적 건물, 전통 공연, 지역 축제에 관심을 보이면서, 이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증가한다. 일본 교토의 전통 축제인 '기온 마쓰리'나 스페인 세비야의 '세마나 산타' 같은 행사들은 관광객들의 관심 덕분에 더 화려하게 유지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광객 중심의 접근법은 종종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성장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건축물과 지중해의 아름다운 해변으로 매년 3천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하는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주택 임대료는 10년 사이 50% 이상 상승했고, 지역 상점들은 관광객 취향에 맞춘 가게들로 대체되었다. 결국 2015년부터 2017년, 지역주민들은 "관광객들이여, 돌아가라"는 문구를 든 시위까지 벌였다.
태국 피피섬 역시 영화 '더 비치'의 촬영지로 알려진 후 관광객이 급증했다. 이는 해양 생태계 파괴로 이어졌고, 결국 2018년 정부는 해변을 일시적으로 폐쇄해야만 했다. 제주도 역시 관광객 수 증가에 따른 교통 체증, 쓰레기 문제, 물 부족 현상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오버투어리즘'은 단기적으로는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부메랑이 된다. 지역 정체성이 사라지고, 물가는 오르며, 주택난은 심화된다.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이 떨어지면 결국 그 진정성을 경험하러 온 관광객들의 만족도 역시 하락하게 된다.
베네치아는 이러한 문제의 극단적 사례다. 한때 10만 명이 넘던 베네치아 본섬의 인구는 현재 5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수백만 관광객들이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우면서 지역주민들의 일상생활은 어려워졌고, 전통적인 상점들은 기념품 가게와 패스트푸드점으로 대체되었다. 결국 베네치아는 2023년부터 일일 방문객 수를 제한하고 관광세를 부과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반면, 지역주민 중심의 관광은 다른 접근법을 취한다. 대표적인 모델로 '커뮤니티 기반 관광(Community-Based Tourism, CBT)'을 들 수 있다. CBT는 지역사회가 관광 개발과 운영의 주체가 되어 의사결정과 이익 분배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이다.
캄보디아 시엠립 근교의 '참복(chambok)마을'은 CBT의 성공적인 사례다. 앙코르와트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현지 가정 홈스테이, 전통 요리 체험, 농촌 생활 체험 등을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의 수익은 마을 발전기금으로 적립되어 학교 건립, 의료시설 확충, 인프라 개선에 사용된다. 2010년부터 시작된 이 사업은 지역 빈곤율을 30% 가까이 감소시켰다.
동남아시아의 많은 국가에서는 이렇게 CBT에 대한 접근을 통해 지역주민 중심의 관광을 지속 육성하고 있는데, 필자 역시 캄보디아 몬둘끼리 지역에서 원주민 관광관련 프로그래밍을 개발하는데 참여하며 지역주민이 얼마나 참여를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코스타리카는 국가 차원에서 생태관광과 지역주민 중심의 관광 정책을 적극 추진한 성공 사례다. 토르투게로 국립공원 주변 마을들은 관광객들에게 바다거북 보호 활동 참여, 정글 트레킹, 카약 투어 등을 제공하며, 수익의 상당 부분을 환경 보존과 지역 교육에 투자한다. 덕분에 코스타리카는 국토 면적의 25% 이상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면서도 관광 수입을 꾸준히 늘릴 수 있었다.
일본의 오노미치나 토카마치 등의 마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주민관광 프로그램도 주목할 만하다. 농촌 지역의 고령화와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지역 노인들이 가이드가 되어 전통 농법, 향토 요리, 지역 역사를 관광객들에게 소개한다. 노인들은 새로운 소득원과 사회적 역할을 얻고, 관광객들은 일본의 전통적인 시골 생활을 깊이 이해하는 기회를 얻는다.
지역주민 중심의 또 다른 모델로는 '살아 있는 박물관(Living Museum)' 개념이 있다.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 몬사라즈는 중세 성벽 도시의 원형을 보존하면서도, 버려진 건물들을 지역 예술가들의 공방과 갤러리로 활용했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일상과 문화를 관광 상품화하지 않으면서도 방문객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지역 경제를 활성화했다.
이러한 접근법은 단순한 이상론이 아니다. 연구 결과는 지역주민이 주체가 된 관광 모델이 더 높은 관광객 만족도와 재방문율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UNWTO(세계관광기구, 현 UN Tourism)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사회 참여도가 높은 관광지는 관광객 만족도가 평균 27% 더 높았으며, 재방문 의향은 32% 더 높게 나타났다.
지역주민 중심의 관광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핵심 요소가 필요하다:
지역사회의 주체성: 네팔 히말라야 지역의 '커뮤니티 홈스테이 네트워크'는 지역 여성들이 주도하는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된다. 이들은 트레커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수익의 일부는 지역 학교와 의료시설에 기부한다. 의사결정 과정에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구조가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였다.
공정한 이익 분배: 인도네시아 발리의 '반자르 시스템'은 마을 단위로 관광 수익을 공유하는 전통적 방식이다. 우붓 지역의 마을들은 이 시스템을 통해 문화 공연, 수공예품 제작, 음식 체험 등의 관광 활동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공동체 전체와 나눈다. 이는 개발 혜택이 소수에게만 집중되는 문제를 해결한다.
진정성 있는 경험 제공: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마라에 스테이'는 관광객들이 마오리 부족의 전통 집회소에서 머물며 그들의 의식, 노래, 춤, 요리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상업적으로 각색된 것이 아닌 실제 문화를 공유함으로써 더 깊은 교류가 이루어진다.
환경적 지속가능성: 에콰도르 아마존 지역의 '카파위 에코로지'는 원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생태 관광지로, 관광 수익을 산림 보호와 지역 교육에 투자한다. 이들은 엄격한 환경 가이드라인을 통해 생태계 보존과 관광의 균형을 유지한다.
관광객과 지역주민의 이해관계는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다. 조화로운 공존을 이룬 사례들을 살펴보자.
스위스 루체른은 관광객 수를 제한하는 대신, 방문객들의 체류 기간을 늘리는 전략을 채택했다. 지역 문화와 깊이 교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관광세를 통해 환경 보호와 주민 복지 사업에 투자한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1인당 지출액은 증가했고, 지역주민들의 관광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화했다.
부탄은 '고가치 저영향(High Value, Low Impact)' 관광 정책으로 유명하다. 일일 관광세($200~250)를 부과하고 패키지 투어만 허용함으로써 관광객 수를 제한하면서도 높은 수준의 관광 경험을 보장한다. 관광세의 상당 부분은 무료 교육, 의료, 복지 서비스 형태로 국민들에게 환원된다. 부탄의 '국민행복지수(GNH)'는 GDP 대신 국가 발전의 핵심 지표로 삼는데, 이는 물질적 성장보다 국민의 행복과 환경 보전을 우선시하는 철학을 반영한다.
국내에서는 전라북도 완주군의 '로컬푸드 직매장'이 지역 농산물과 관광을 연계한 성공 사례다. 지역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이 시스템은 농가 소득 증대와 함께, 도시 소비자들이 농촌을 방문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를 기반으로 농촌 체험, 전통 음식 체험, 자연 생태 관광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발전했고, 지역 정체성과 자부심 역시 강화되었다.
균형 잡힌 관광 정책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지역주민의 참여 보장: 관광 계획 수립 단계부터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한다.
수익의 공정한 분배: 관광 수익이 대기업만이 아닌 지역 경제 전반에 흐르도록 한다.
수용력 관리: 지역이 감당할 수 있는 관광객 수를 고려한 정책을 시행한다.
문화적 진정성 유지: 상품화된 체험이 아닌 진짜 지역 문화를 공유한다.
디지털 기술의 활용: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실시간 혼잡도 앱(Amsterdam Crowd Monitoring)을 통해 관광객 흐름을 분산시켜 오버투어리즘 문제를 완화하고 있다.
교육과 인식 개선: 페루 쿠스코는 '책임 있는 여행자' 캠페인을 통해 관광객들에게 지역 문화 존중과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교육한다.
최근에는 지속가능한 관광을 넘어 '재생 관광(Regenerative Tourism)'이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관광이 단순히 환경과 문화에 해를 덜 끼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방문 지역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철학이다.
뉴질랜드는 2019년부터 '관광재생 프로그램(Tourism Regeneration Program)'을 시행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단순한 관광 활동을 넘어 나무 심기, 해변 청소, 멸종 위기 종 보호 활동 등에 참여하며 지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남기도록 장려받는다. 이는 여행의 목적이 단순한 소비와 즐거움을 넘어, 방문한 곳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뉴질랜드는 지속가능한 관광에 대한 모델에 대해 다음과 같은 형태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지속가능성”을 관통하는 뉴질랜드 관광산업의 전략을 한 장으로 요약한 것이며, 관광이 (1) 지역 주민과 방문객 모두에게 긍정적 기여를 하고, (2) 환경·문화적 자산을 보존·복원하며, (3) 마오리 공동체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협력을 통해 (4) 뉴질랜드 전역의 경제·사회적 번영을 도모하겠다는 큰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즉, 단순한 ‘관광객 유치’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문화, 환경 모두에게 이로운 순환 구조(Regenerative Tourism)를 지향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관광 성장을 이루려는 청사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와이의 '말라마 하와이(Mālama Hawai'i)' 프로그램도 비슷한 개념이다. '말라마'는 하와이어로 '돌봄'을 의미하며, 관광객들은 산호초 복원, 전통 농법 체험, 문화 유산 보존 활동 등에 참여함으로써 할인이나 무료 숙박 등의 혜택을 받는다. 이는 관광객의 역할을 수동적 소비자에서 적극적 기여자로 전환시키는 시도다.
관광의 진정한 매력은 그 장소만의 고유한 특성과 문화,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서 비롯된다. 지역주민들이 자신의 삶의 터전에 자부심을 갖고 관광객들과 기꺼이 나누고자 할 때, 관광은 단순한 상품 소비를 넘어 문화적 교류와 상호 이해의 장이 된다.
"관광객이 중심인가, 지역주민이 중심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지역주민이 행복한 곳이 결국 관광객에게도 가장 매력적인 장소가 된다는 것이 바로 지속가능한 관광의 역설이다. 디즈니랜드가 아닌 실제 베네치아를, 인공적인 리조트가 아닌 진짜 발리를 경험하고 싶어하는 현대 관광객들에게 '지역주민이 사랑하는 장소'보다 더 큰 매력은 없기 때문이다.
관광은 궁극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다. 이 만남이 서로에게 풍요로운 경험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관광의 중심에 '사람'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단기간 머물다 떠나는 관광객보다,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지역주민이어야 한다. 지역주민을 중심에 둔 관광이 결국 모두가 승리하는 관광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관광의 본질, 쟁점과 대안은 매주 목요일에 연재하도록 합니다. 본 연재글에 대해 의견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로 달아주세요~ 환영합니다.
관광의 본질적 접근도 좋지만, 관광개발이나 기획을 하는 입장에서 필요한 것은 관광사업을 어떻게 진단하고 분석하는 방법이 필요할 것입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관광사업 진단체계모델 이야기도 연재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