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말로 <요새>를 의미하는 크렘린 궁전은 1156년에 지어진 것으로 러시아의 정치와 종교 권력의 중심지였다. 크렘린은 모스크바 강을 따라 한 변이 약 700m의 삼각형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둘레에는 높이 920m, 두께 46m 성벽으로 둘러싸여 외침으로부터 보호했다. 크렘린의 주요 건물은 궁전 건물 5채와 성당 4개 그리고 대통령 집무실과 무기고 등이 있다.
옛 소련 시절에 크렘린은 서기장이나 공산당 정부를 가리키는 대명사로 비밀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곳으로 비추어졌다. 1952년 스탈린의 뒤를 이어 흐루쇼프가 소련 공산당 서기관이 되면서 탈 스탈린화 작업의 일환으로 크렘린을 전격적으로 공개하였다.
크렘린을 둘러싼 성벽에는 곳곳에 타워가 있어 일종의 망루 역할을 하고 있는데 동쪽으로 난 트로이츠카야 타워가 궁전의 정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트로이츠카야>란 삼위일체를 뜻하며 탑 꼭대기에 보이는 조그만 별은 러시아 공산당을 상징한다.
크렘린 궁전 안으로 입장하면 거대한 종과 대포를 먼저 만난다.
<종의 왕>으로 불리는 이 종은 200톤으로 세상에서 가장 큰 종이지만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고 한다.
1735년 우즈펜스키 사원의 종탑에 올리기 위해 제작되었으나 화재가 난 후에 뜨거운 열이 식어가는 중에 물이 닿자 11톤의 조각이 떨어져 그 상태로 현재 전시하고 있다.
종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전시된 황제의 대포는 1586년에 제작된 것으로 세상에서 가장 큰 대포이다. 포신의 지름이 1m가 넘으며 무게는 39톤이나 나가는 이 대포는 러시아 황제의 위엄을 상징한다.
종과 대포를 뒤로 하고 크렘린 광장으로 들어가면 러시아의 3대 성당인 성모승천 성당과 수태고지 성당 그리고 대천사 성당이 있다. 대부분의 건물은 15~16세기에 이탈리아 건축가들이 설계하여 지어졌다.
먼저 성모승천 성당을 감상하자.
황제의 가족들이 미사를 드렸던 성모승천 성당은 러시아 최고의 성당으로 이 곳 지하에 모스크바 대주교 및 총주교들의 시신을 모신고 있다. 또한 이반 4세를 시작으로 로마노프 황제 시대에 대관식과 결혼식이 이곳에서 거행되었는데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이곳에서 마지막 대관식을 가졌다. 성당 안에는 승천하는 마리아와 12제자들의 모습이 담긴 이콘화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데 입구에 한국어 설명서가 있어 감상하기가 편리하다.
러시아 정교회 성당은 다른 가톨릭 성당과는 달리 성화로 만들어진 <이콘>으로 성당을 장식한다. 보통 정교회 성당은 4단의 이콘으로 장식하는데 이 곳은 총 주교 성당이라 5단의 이콘이 있다.
10세기 비잔티움에서 전래되어 러시아 토양에 맞게 뿌리내린 러시아 정교는 외견상으로 가톨릭 성당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정교회 성당에는 신자들이 앉는 의자가 없어 서서 미사를 드린다. 또한 성호를 그을 때 가톨릭은 위에서 아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십자 형태를 만들지만 정교회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긋는 차이를 보인다. 또한 정교회 성당은 오르간과 피아노 등 악기가 전혀 없어 찬송가를 육성으로 부른다.
다음으로 대천사 성당을 둘러보자.
오랜 세월 동안 러시아의 수호천사였던 미카엘 대천사를 모시던 대천사 성당에는 이반 4세를 비롯하여 황제들과 그의 가족들의 무덤이 있다. 표토르 1세가 수도를 옮기자 그를 비롯한 그의 후손들은 새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성당에 안치되었다.
사원 내부 벽화에는 이곳에 잠들어 있는 황제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다음으로 황제의 가족들만 사용하던 수태고지 성당을 감상하자.
이 사원은 1848년 이반 3세의 명령에 따라 사원을 짓기 시작하여 5년 후 1889년에 완성하였다. 이후 궁전과 바로 연결된 통로를 만들어 황제의 가족들이 성당을 이용했으며 비밀리에 황가의 결혼식과 세례식이 이곳에서 열렸다.
내부에는 유명한 이콘화가였던 안드레이 루블료프와 페오판그레크가 참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성화들과 수태고지와 예수의 탄생 등의 이콘화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수태고지 성당 옆에는 이반 대제의 종탑이 보았는데 이곳이 모스크바의 정중앙 기준점이 된다. 1812년 러시아를 침공한 나폴레옹이 퇴각할 때 이 종탑을 비롯한 주변 건물들을 폭파했는데, 다행히도 종탑은 살아남았다고 한다. 20세기 이전까지 모스크바에서는 이보다 더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이제 러시아 황제들의 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무기고로 이동하여 황가의 유물들을 감상하자.
무기고에는 14세기부터 20세기까지 수집한 약 4천 개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여기에는 러시아 황제들의 의복과 장신구를 비롯해 각국 귀빈들의 선물 그리고 시대별 무기와 전리품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물들을 둘러보고 있으면 당시 유럽에서 러시아가 얼마나 큰 정치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실감할 수 있다.
특히 부활절마다 황제에게 선물한 바페르제 달걀과 비잔틴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4세가 선물한 모노마흐 왕관은 빠뜨리지 말고 감상하자.
이제 크렘린 궁전을 다 둘러보았으니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크렘린 상원>과 콘서트홀로 사용되고 있는 <국가 크렘린 궁전>을 지나 붉은 광장으로 이동하자.
크렘린 궁전의 담벼락을 넘으면 바로 붉은 광장이다. 하지만 크렘린 궁전에서 직접 광장으로 가는 길이 없어 처음 들어온 문으로 빠져나가 돌아와야 한다.
2차 대전 때 나치군을 격퇴시킨 주코프 장군이 말에 올라탄 동상을 쳐다보며 <부활의 문>을 지나면 길이 696m에 폭이 130m의 붉은 광장이 펼쳐진다.
입구에서 보면 오른쪽은 붉은 벽면의 크렘린 궁전이 보이고 그 아래 레닌 묘가 있다. 또한 정면에는 성 바실리 성당이 화려하게 서 있고 왼편으로는 러시아 국영백화점인 <굼>이 길게 늘어서 있다.
광장 중앙에 있는 레닌묘는 피라미드 형태의 검은 화강암 건물로 오전에만 개방하여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경건하게 참배하고 있다.
레닌 묘 앞의 맞은편에 있는 국영 백화점인 <굼>은 창이 없어 갑갑한 우리 백화점과는 달리 화려한 꽃장식과 더불어 백화점 천장이 투명하게 만들어져 있다.
이 곳 2층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이 모스크바 최고의 맛이라 한다. 아이스크림을 맛보았다면 백화점을 나와 오늘의 마지막 종착지인 성 바실리 성당으로 가자.
우리에게 테트리스 궁전으로 잘 알려진 이 곳은 성당이라기보다는 동화 속에 나오는 성의 모습을 하고 있어 언제나 사진 찍는 인파로 복잡하다.
성당 입구에는 마미닌과 포자르스키의 청동상도 있다. 이 청동상은 모스크바에서 최초의 비 황제 조각상으로 붉은 광장에서도 유일하다. 이들은 17세기 폴란드 연합군이 모스크바를 침공했을 때 의용군을 조직해 폴란드 군을 물리친 영웅들이다. 마미닌은 노브고로드의 정육점 주인이었고, 포자르스키는 수즈달의 대공이었다. 평민과 귀족이라는 조합으로 러시아를 수호하고 로마노프 왕조 시대를 열었다.
청동상 뒤로 보이는 성 바실리 성당은 이반 대제의 명령에 따라 카잔한국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건축되었다. 1555년부터 1561년까지 건축한 이 성당은 양파 모양으로 아홉 개의 돔이 제각각의 크기와 색깔로 봉긋 솟은 9개의 작은 성당들을 하나씩 건축한 다음 이 성당들을 복도와 통로로 연결하여 완성했다고 한다.
러시아 최고의 유산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이 성당에 1588년 당시 인기가 높았던 성 바실리를 모신 것을 계기로 오늘날까지 이 성당은 성 바실리 성당으로 불린다. 모스크바의 바보 성자인 바실리는 평생 무소유를 실천하며 옷도 안 걸치고 신발도 없이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는 예지능력으로 모스크바의 3분의 1이 소실된 1547년의 대화재를 예언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사망한 뒤 마카리 대주교가 그를 추도했고, 이반 대제가 직접 대 귀족들과 함께 그의 유해를 이 곳 성당으로 옮겨와 모셨다고 한다.
중세 러시아어에 <끄라스나야>라는 단어는 붉다는 뜻 외에도 아름답다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 붉은 광장은 본래의 의미로 아름다운 광장이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붉은>이라는 이름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의 원래 뜻인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려면 저녁노을 때나 밤에 한번 더 방문해야 한다. 그러면 붉은 광장의 진가를 온몸으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