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여행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

by 손봉기

모스크바에 도착하자 대학시절 보았던 영화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가 떠올랐다. 노동자의 단결과 파시즘의 타도 같은 주제에서 벗어난 영화는 시골에서 상경한 세 소녀가 모스크바의 공장에서 일하며 사랑과 꿈을 이루려는 모습을 담았다.


영화 시작과 함께 나오는 노래 <알렉산드라>는 모스크바가 하루아침에 건설되지 않았듯이 힘든 일이 있더라도 결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면 모스크바는 더 이상 낯선 도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아직도 수많은 여행자들에게 낯선 도시인 모스크바 여행은 도시의 대성당인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부터 시작한다.



크렘린 궁전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구세주 성당은 1812년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로부터 후퇴한 후 신의 은총에 감사하기 위해 알렉산더 1세의 지시로 짓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공사가 지연되다가 알렉산드르 1세의 후계자이자 동생인 니콜라이 1세에 의해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를 참고하여 공사를 재개한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난 1860년에야 건물이 완공되었고, 화가들을 동원하여 실내 인테리어 작업을 하는데 다시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결국 니콜라이 1세의 손자 알렉산드르 3세에 와서야 성당은 완공되었다. 차이콥스키가 1881년 이곳에서 서곡을 초연한 지 1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오랜 세월을 소모하며 지어진 대성당인 만큼 그 규모는 압도적으로 아직까지도 세계에서 이 성당보다 높은 정교회 성당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성당은 그 역사만큼 오래가지 못했다.


1932년 12월 볼셰비키 혁명으로 공산정권을 장악한 스탈린은 종교 탄압 정책으로 이 성당을 폭파하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높은 100층 규모의 소비에트 궁전을 건설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 계획은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스탈린의 죽음과 함께 무산되고 말았다. 이후에 이곳은 물을 채워 거대한 공공 수영장으로 사용되었다. 1995년 구 소련이 붕괴하자 국민성금과 러시아 정부의 지원으로 성당을 재건하였으며 2000년 5월에 완공했다.


당시 완공된 성당의 꼭대기 부분은 가짜 금으로 덮었으며 본래의 석재 장식은 청동과 플라스틱으로 대체되었다. 또한 외부는 대리석 판으로 덮었지만 이 건물의 존재 자체만으로 험난한 러시아 역사를 상징화하기에 충분하였다. 이 성당을 폭파한 스탈린은 조지아 출신으로 레닌 휘하에서 러시아 혁명에 동참해 러시아 제국을 전복시키고 소련 건국에 일조했으며 레닌 사후 권력을 장악해 소련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최고 권력자가 된 그는 절대 권력 장악하기 수백만 명의 정적들을 처형하였다. 동시에 낙후된 소련을 발전시키 위해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으로 중화학공업 위주의 공업 국가로 전환시켰다.


1939년 세계에 전운이 감돌자 나치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맺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한 발짝 물러서려 했지만, 독일의 기습적인 침공으로 연합국에 가입,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이후 2천만 명을 훌쩍 넘기는 인명 손실을 견뎌내며 끝끝내 승전하였으며 인민을 희생해 이룩한 공업화는 소련을 초강대국의 자리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스탈린은 나치에 맞서기 위해 러시아 정교회와 손을 잡았으며 종전 후에는 국가의 엄격한 감시하에 러시아 정교회의 활동을 허용했다고 한다.




현재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은 모스크바에서 가장 사진이 잘 나오는 핫 스팟으로 많은 여행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이제 성당에서 지하철을 타고 아르바트 거리로 가자.


그러나 그전에 모스크바의 유명한 지하철역을 방문하자. 모스크바의 지하철역은 지하궁전으로 불릴 만큼 다양하고 아름답게 지어졌다.



그중 콤소몰스카야 지하철 역은 기차를 이용해 도착하는 사람들에게 수도 모스크바의 첫인상을 선사하는 곳으로 스탈린 시대에 유래한 바로크 양식의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이 곳 장식은 1958년에는 브뤼셀 국제박람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또한 키옙스카야 역의 장식은 1953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 선출된 흐루쇼프의 작품으로 그는 자신의 고향 우크라이나의 전통 장식을 이용해 지하철 역을 꾸몄다. 이 중 1954년에 완성된 18개의 모자이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스마트 폰을 들고 있는 작품이 보이는데 이는 사실 우크라이나의 독립 투쟁을 위해 싸웠던 빨치산의 야전 무전기라고 한다.


이제 아르바트 거리로 이동하자.



모스크바의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아르바트 거리는 보행자 전용 도로로 젊음과 예술 그리고 문화 등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인 푸시킨과 레르몬토프 그리고 투르게네프 등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르바트 거리를 걸어서 내려가다 보면 금색의 투란도트 공주 동상이 있는 거대한 건물을 만난다.


이 건물은 배우이자 연극 감독이었던 바흐탄고프의 이름을 붙인 바흐탄고프 극장이다. 1921년 그는 이 곳에 자신의 극장을 만들었으며 10년 후 이곳에서 <투란도트 공주>를 첫 시연했다. 이후 그가 사망하자 그의 창립 정신과 성과를 추모하기 위해 투란도트 공주 동상을 만들었다.



극장을 자나 아르바트 거리를 계속 내려가면 1962년에 태어나 1990년까지 활동하다가 사망한 록커 빅토르 최를 기리는 <통곡의 벽화>가 나타난다. 벽화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오늘 초이가 죽었다.
Сегодня погиб Виктор Цой



그 아래 초이는 살아있다 라는 말이 덧붙여지면서 이 벽화는 <초이 벽>으로 불리기도 한다.


빅토르 최는 1962년 6월 21일에 소련 레닌그라드에서 아버지 로베르트 막시모비치 최와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무녀독남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가 본래 대한제국 함경북도 성진 출생으로 일제 강점기 초기에 러시아 제국으로 건너간 고려인이었다. 할아버지는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했고 4남 1녀를 두었는데 그중 둘째 아들이 빅토르 최의 아버지인 로베르토이다.


빅토르 최는 20세 때인 1982년 <카노>라는 록그룹을 결성하여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당시 그의 노래는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낀 젊은이들이 고르바초프의 혁명 노선에 지지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하지만 라트비아에서 공연 후 의문의 교통사고로 28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다음으로 아르바트 거리에서 만나는 곳은 푸시킨의 집이다. 푸쉬킨은 모스크바에서 출생했지만 이곳이 생가는 아니다. 그가 32살이 되는 1831년에 18살이었던 나탈리야 니콜라예브나 곤차 라바와 결혼하여 신혼집으로 이곳에서 몇 개월 살았다. 그는 이 집에서 가까운 그랜드 승천 교회에서 결혼했다.



집 건너편에 있는 공원에 푸쉬킨과 그의 부인 곤차로바의 동상이 서 있다. 동상의 손을 만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두 사람의 손만이 유난히 반짝거린다.



아르바트 거리 끝에 스탈린 시대에 지어진 건축물 중 걸작으로 꼽히는 신고딕 양식의 외무성이 있다. <스탈린 시스터즈>로 불리는 7개의 건물 중 하나인 외무성은 스탈린 건축 철학에 가장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무성은 172m 높이로 길 건너편에서도 사진에 그 모습을 완전히 담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다.



<스탈린 시스터즈>는 모스크바에 8채가 원래 계획되었으나 스탈린의 죽음으로 7채가 지어졌다.


이제 아르바트 거리 끝에 있는 지하철을 타고 마지막 방문자인 노보데비치 수도원으로 이동하자.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그 의미와 역사를 자랑하는 곳으로 다양한 건축물뿐만 아니라 공동묘지에서는 고골과 보리스 옐친 등 유명인사의 묘를 만날 수 있다. 수도원에 있는 여러 건물 중 최고로 꼽히는 건축물은 스몰렌스키 성당과 종탑이다. 양파 모양의 돔이 5개가 얹어진 스몰렌스키 성당과 종탑은 16세기 러시아 성당 건축의 전형으로 선정될 정도로 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수도원 안에는 여러 가지 이콘화를 비롯해 여러 점의 종교 미술품과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곳을 찾는 이유는 호수 반대편에서 바라보는 성당과 수도원의 아름다운 모습 때문이다. 차이코프스키는 이곳에서 <백조의 호수>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 유람선을 탑승하자.



노을이 질 무렵 모스크바 유람선의 탑승은 파리 유람선과 같이 모스크바 여행을 한다면 반드시 해야 할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다.



유람선을 타고 모스크바 강을 따라 천천히 흘러가면 오전에 보았던 화려한 다리와 궁전의 모습이 서서히 다가왔다가 사라진다. 푸쉬킨의 시가 떠 오른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아라
슬픈 날은 참고 견디라
기쁜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


모스크바 강 위로 화려하지만 쓸쓸하고, 쓸쓸하지만 기품이 넘치는 모스크바의 야경이 흘러가고 고단하지만 선물 같은 우리의 인생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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