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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Nov 24. 2020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지상 최고의 라이브 쇼

뉴욕의 브로드웨이는 전 세계 뮤지컬의 본거지로 밤이 되면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이 최고 수준의 공연을 감상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뮤지컬은 <라이온 킹>이다. 1997년 11월 13일 막을 올린 라이온 킹은 지금까지 19개국에서 9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관람했으며 그간 벌어들인 흥행 수입이 무려 79억 달러, 우리 돈으로 8조 5000억 원이 넘는다.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이 시작되자 주술사 원숭이 라파키가 무대 위로 나와 강렬한 아프리카 줄루족의 노래로 장차 왕이 될 아기 사자 삼바의 탄생을 축하한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서
눈을 깜박이며 세상으로 나왔을 때
일찍이 본 것보다 더 많은 볼 것이 있으며
이루어진 것보다 더 많이 이루어야 할 것이 있다네.

절망과 희망을 통해
신념과 사랑을 통해
우리 앞에 놓인 길을 가야 해.
우리의 보금자리를 찾을 때까지
이것이 자연의 섭리


뮤지컬이 시작되자마자 관람자들을 압도하는 것은 동물로 변장한 캐릭터의 분장과 의상이다. 일반적으로 동물을 연기할 때는 동물 가면을 쓰고 마치 실제 동물인 것처럼 연기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라이온 킹>에서는 동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얼굴과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스크와 배우가 떨어져 있지만 연기와 동작을 통해서 하나로 되면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면들을 탄생시켰다. 특히 사람의 손으로 치타의  앞발을 연결하고 사람의 얼굴과 치타의 얼굴을 연결시킨 치타의 분장은 놀라울 정도이다. 이외 배우의 팔로 활 모양을 그리며 날아다니는 새와 수레바퀴로 회전하며 전진하는 가젤 등 다양한 상상력을 동원해 표현된 동물들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왕 무파사와 그의 동생 스카가 대립하는 장면으로 배우의 얼굴 앞으로 내려온 강렬한 마스크가 서로 대치하지만 마스크 뒤 배우들의 표정 연기도 생생하게 함께 볼 수 있다.



주인공인 사자가 방황하다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승리한다는 성장 스토리의 <라이언 킹>은 브로드웨이의 이단아였다. 디즈니가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뮤지컬로 제작한다고 했을 때 브로드웨이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라이언 킹이 상영될 당시 브로드웨이는 영국산 작품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캣츠><오페라의 유령><레미제라블> 등 당시 유행하던 영국 웨스트엔드의 뮤지컬은 모두 문학 작품이나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하였으며 예술성이 매우 높았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은 예술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어린이용 만화영화를 뮤지컬로 만든다는 건 당시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실험은 대성공을 거뒀다. 라이온 킹은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과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1998년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6개의 토니상을 수상했다. 테이머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역사상 최초의 여성 최우수 감독상을 받았다.



누적관객 1억 명, 수익금 6조 원.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지난 23년간 거둔 성적표이다.


<오페라 유령>은 천사 같은 목소리와 기형적인 얼굴을 가진 오페라 유령이 노래를 부르던 크리스틴을 보고 사랑에 빠지면서 시작된다. 유령은 그녀의 사랑을 얻으려고 그녀의 꿈속으로 찾아가 노래 레슨을 해준다. 이후 크리스틴은 노래 스승이 실재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그가 머물고 있는 지하 미로를 찾아간다.


다음 날, 크리스틴이 사라진 사실에 모두들 걱정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크리스틴의 친구이자 그녀를 사랑한 라울도 있었다. 얼마 뒤 크리스틴이 지하 미로에서 돌아왔지만 그녀는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한다. 오페라의 유령은 크리스틴에게 헌신적으로 사랑을 베풀며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오페라에서 불러줄 것을 간청한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괴신사의 얼굴을 본 크리스틴은 경악하고, 오페라 극장에서는 예기치 못한 사고가 연이어 발생한다. 두려움에 떠는 그녀에게 라울은 자신을 믿으라며 사랑을 고백한다. 6개월 후 공연 날 오페라의 유령을 등장인물로 변신해 크리스틴을 납치한다. 지하미로에 뒤따라온 라울이 함정에 빠져 위험에 처하자 그녀는 그를 구하려고 오페라의 유령에게 키스를 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유령은 그들을 풀어준다. 경찰이 유령의 지하미로를 덮쳤을 때 오페라의 유령이 쓰던 흰 가면만이 그들을 맞이했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백미는 크리스틴을 납치한 뒤 지하 호수에서 배를 타고 노를 저어 가는 신비스러운 장면이다. 무대 깊숙한 곳에서 크리스틴과 유령을 태운 배가 등장하면 순식간에 무대 전체가 안개 자욱한 호수로 변한다. 푸른 물안개 속에 마법처럼 솟아난 수백 개의 촛불 사이로 배가 꿈결처럼 나아간다. 분명 마루판이었던 무대가 완벽하게 호수로 바뀌고 배가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우아하게 지나가자 관객들은 황홀함에 넋을 잃는다.


이 호수를 연출하려고 드라이아이스 250킬로그램과 연기 머신 10대를 동원한다고 한다. 관객을 사로잡는 <오페라 유령>의 또 다른 장면은 1막 끝부분에서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장면이다. 수많은 유리구슬로 장식된 1톤 무게의 초대형 샹들리에가 객석 위로 순식간에 떨어지면 관람객들은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 놀라움을 경험한다.


이 밖에 거울 속에서 오페라 유령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장면이나 순식간에 이쪽 끝으로 사라졌다가 저쪽 끝에서 나오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흰 가면만 남기고 사라지는 장면 등 공연 내내 볼거리가 넘친다. <오페라 유령>이 전 세계 사람들을 사로잡는 또 다른 이유로 무대 아래에서 관현악단이 직접 연주하는 아름다운 선율과 세계적인 가수들의 매혹적인 노래를 꼽을 수 있다.


오페라 유령의 도입부에서 오르간의 힘찬 연주와 함께 타이틀 곡인 <오페라의 유령>이 극장 안에 퍼지면 관람자의 온몸에 전율이 감돈다. 또한 수십 개의 촛불 속에서 오페라의 유령이 부르는 <밤의 노래>와 크리스틴과 라울의 러브송 <그대에게서 바라는 것은 오직 사랑뿐> 등 감미로운 멜로디가 극장 안에 흐르면 모두 숨을 죽인 채 아름다움에 빠져들고 만다.


오페라 유령은 1986년 런던 올리버상 3개 부문에서 수상한 이후, 1988년에 뉴욕 토니상에서 7개 부문을 수상하는 등 뮤지컬 메이저 상만 50개 이상을 휩쓸었다.



오페라의 유령이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대서정시라면 레미제라블은 남성적이고 웅장한 사랑을 전하는 대서사시이다. 이 뮤지컬은 혁명 당시의 장엄한 음악과 무대를 배경으로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근원적인 인간의 구원을 약속하는 숭고한 사랑을 보여준다.


레미제라블은 1800년 초반, 혼란기 프랑스에서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극심한 강제 노역에 시달린 뒤 풀려난 장발장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장발장은 풀려나자마자 다시 도둑질을 하지만, 가톨릭 신부의 배려로 감옥에 가지 않을 수 있었고 그런 신부의 사랑에 감동하여 평생 남을 위해 살아가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법만 신봉하는 가베르 경감은 장발장을 뒤쫓고, 쫓기는 몸이 된 장발장은 수양딸 코제트와 함께 은둔생활을 한다.



세월이 흘러 숙녀가 된 코제트는 혁명에 동조하는 마리우스와 사랑에 빠지고 마리우스를 동경하는 거지 소녀 에포닌은 애타는 눈으로 그 둘을 바라본다. 그 후 공화주의자들의 혁명이 일어나는데 마리우스는 정부군과 싸우다가 부상을 입는다. 마리우스에 대한 질투를 모두 버린 장발장은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등에 업고 하수도 구멍을 통해 구사일생으로 탈출한다. 그 후 장발장은 코제트와 마리우스를 결혼시키고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들에게 남긴 뒤 기구한 운명을 마감한다.



<레미제라블>에서 돋보이는 것은 파리 뒷골목 빈민가의 무대가 순식간에 성벽 높이의 바리케이드로 변하는 장면이다. 5톤 무게의 거대한 무대 위에서 정부군과 혁명군이 치열한 총격전을 벌이고, 곧이어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혁명군이 한 명씩 죽어가는 모습이 비장함을 느끼게 한다. 에포닌이 마리우스의 품 안에서 죽은 곳도, 장발장이 잡혀 온 가베르 경감을 풀어주는 곳도 바로 이 무대이다. 화약연기와 붉은 조명이 진동하는 무대를 천천히 회전시키는 이 원형 회전무대 기법은 이 작품에서 최초로 사용되었으며 오늘날 많은 뮤지컬에서 차용되고 있다.    



레미제라블이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화려한 무대 외에도 주옥같은 음악과 노래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코제트와 사랑에 빠진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는 거지 소녀 에포닌이 부르는 <내 힘으로>이다. 고요한 무대 위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애절한 에포닌의 노래가 끝나면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한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 무심한 마리우스의 연애편지를 코제트에게 전해주고 돌아오다 정부군의 총에 맞는다. 그리고 그녀가 마리우스의 품에 안겨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며 죽는다.



내 걱정은 하지 마
이렇게라도 너의 품에 안기니까 행복해



가슴 시리면서도 아름다운 남녀 간의 사랑 외에도 숭고한 사랑의 감동을 전하는 노래와 장면은 뮤지컬 마지막 부분에 있다. 수양딸 코제트에 대한 사랑을 통해 일생 동안 선행을 실천하고 헌신한 장발장이 죽어가자 그 죽음 위로 합창이 나온다.  


나의 손을 잡고 구원으로 이끈다.
헌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영원할 것이다.
전해 내려오는 진실을 기억하라.


당신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신을 만난다.



극이 끝난 후 모든 관객들은 기립박수와 환호성을 보내며 공연장을 떠나지 못한다. 레미제라블은 전 세계 38개국 223개의 도시에서 22개의 언어로 무려 4만 회의 공연이 이루어졌고 그동안 관람객 수가 6,000만 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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