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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Nov 29. 2020

톱카피 궁전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한 오스만 제국의 심장으로 영광과 환희 , 애환과 음모로 얼룩진 톱카피 궁전은 오스만 제국의 최고 실력자 술탄이 거주하던 궁전이다.


1453년 꿈에도 그리던 이스탄불을 장악한 술탄 마호메트 2세는 현재의 위치에 궁전을 건립했고 이후 여러 술탄들이 증축을 거듭했다.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약 500년간 36명의 술탄 중 18명이 살았던 톱카피 궁전은 정문 앞에 거대한 대표가 있어서 톱카프로 불리게 되었다. 톱은 대포, 카프는 문이라는 뜻이다.


4개의 중정이 있는 톱카피 궁전은  정원 주변으로 하렘과 보물관 그리고 정자 등 부속건물이 있다. 궁전의 입구인 황제의 문을 지나면 1 중정이 나온다.


1 중정에는 오스만 군주와 궁전을 수비하는 예니체리라고 불리는 근위대가 있어 예니체리 마당이라 불리는 이곳까지 일반 백성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조정의 관리나 조정에서 일하는 시종들은 일반 백성들이 드나드는 제1중정을 궁전 마당으로 여기지 않았다. 제1중정에는 진료원과 장작 저장소 그리고 제빵소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동로마 제국 때 지은 하기아 이레네 성당과 화폐 제작소 말고는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1 중정 끝에 보이는 경의의 문을 지나면 왕의 즉위식을 비롯해 정복 전쟁의 출정식이 열렸던 2 중정이 나온다. 일반 백성의 출입이 금지된 경의의 문 양쪽에는 방추형의 석탑이 세워져 있으며 이 문의 오른쪽 벽에는 사형 집행자가 손과 칼을 씻었다는 우물이 있었다. 그리고 문 옆에는 참수된 사람의 머리를 놓아둔 두 개의 대리석이 있었다고 한다.


2 중정에서 행해진 가장 인상적인 행사는 3개월마다 있었던 군인들의 급료식이다. 이 정원에서 오스만 군대는 성대한 의례와 함께 술탄이 직접 군인들에게 급료를 주었고 이 행사에는 외국 대사들이 참석시켰다고 한다. 수많은 군인들에게 천문학적인 규모의 급료를 나누어주는 장면만으로 제국의 위용을 뽐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의 승리나 국가적인 경사가 있을 때에는 술탄이 이 곳에서  직접 뿌린 금화를 뿌렸으며 그것을 주우려고 군인 관료들이 앞 다투어 몰려드는 진풍경을 연출했다고 한다.



2 중정에는 대신들이 국사를 논의하던 디완 건물과 거대한 황실 주방이 자리하고 있다. 디완은 오늘날의 내각을 말하는 것으로 조정의 주요 업무가 이곳에서 논의되고 결정되었다. 내각회의는 톱카프 궁전 초기에는 매일 열렸으나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줄어들다가 18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일주일에 하루만 열리게 되었다. 또한 디완 회의 초기에는 군주가 직접 회의에 참여하였으나 얼마 안 있어부터 총리대신이 주재하였다.



2 중정에 있는 황실 주방에는 왕궁 거주자 5,000명의 음식을 준비했으며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만 300명이었고 하니 주방의 크기와 여유를 짐작할 수 있다. 주방에서 만들어진 음식은 200여 명의 사람이 줄을 서서 접시를 손에서 손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식탁에 올려졌다. 궁전의 주방에서는 주로 양고기를 포함한 육류가 준비되었는데, 하루에 양 200마리가 소비되었다고 한다. 생선은 원하면 요리할 수도 있었으나, 거의 먹지 않았다. 현재 이곳에는 당시 사용하던 큰 솥과 주전자, 그릇과 청동 물병, 다양한 수저와 주방 기구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세 번째 중정으로 가는 지복의 문은 군주와 군주의 측근만이 통과할 수 있었으며 이 문을 통과하면 외국 사절을 접견하는 알현실이 나온다. 제3 중정에서 성대한 군주의 즉위식이 열렸다



이집트를 정복한 술탄 셀림 1세는 1516년 8월 칼리파 직을 이양 받음으로써 이스탄불이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가 되었다. 칼리파란 이슬람 세계의 최고 통치자의 칭호로 이전에는 바그다드와 카이로가 이슬람 세계를 통치하는 주요 도시였다.



3 중정에서 가장 압권은 톱카피 궁전의 보물 실과 성물실이다. 보물실에는 수없이 많은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가 박힌 선물들이 즐비하다. 그중 중 가장 뛰어난 것은 세 개의 큰 에메랄드가 박힌 단검과 황금으로 만든 칼집으로 무수한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다. 정교한 세공과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단검은 오스만 제국의 술탄 마호메트 1세가 이란의 나디르샤가 선물한 황금 옥좌에 대한 답례로 보냈다가 이란의 복잡한 정치 사정으로 되돌아와 지금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보석 관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또 다른 유물은 86캐럿짜리 다이아몬드이다. 49개의 작은 다이아몬드가 한 개의 큰 다이아몬드를 감싸며 반짝이는 86개럿 다이아몬드는 세계에서 5번째로 크다.


이슬람의 마지막 선지자 무함마드의 유품이 전시된 성물실에는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수염과 치아, 족적 그리고 칼을 비롯해 생전에 입었던 외투와 이슬람 개종을 권유하는 친필 서명의 서신까지 전시되어 있어 종교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가지는 곳이다.



성물실을 나오면 맞은편에 남성 출입금지 구역으로 알려진 하렘이 있다. 오스만 제국 전성기인 쉴레이만 1세 시대에는 이곳에 250개의 방이 있었으며 거주자만 1,0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렘의 입구로 들어가면 미로 같은 은밀한 내궁이 있으며 그다음으로 하렘의 살림을 맡았던 재무기관과 중국식 타일로 화려하게 꾸민 궁녀들의 처소가 있다. 하렘의 여인들은 어쩌다 주어지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온갖 지혜로 술탄의 사랑을 받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였으며 간택되지 못한 여인은 하렘의 부속물이 되어 평생 한 많은 세월을 보내야 했다.



하렘은 흑인 내시들과 하녀들이 머물던 작은 방부터 술탄의 아내이자 왕자의 어머니로 막강한 지위에 있었던 왕비의 침실, 도서관과 예배실, 응접실과 식당, 목욕탕과 휴게실에 이르기까지 또 하나의 작은 왕궁을 이루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벨리댄스는 하렘의 무희들이 추는 춤으로 온갖 테크닉과 기교를 총동원해 유혹의 몸놀림을 보여주며 술탄의 선택을 받기 위한 춤이었다.


하렘을 빠져나오면 4 중정이 나온다.



제4중정에는 오스만 조정 근위대의 지휘관과 관리를 양성하기 위한 궁전 학교가 있었다. 궁전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주로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한 그리스도인  출신의 젊은이들이었으나 오스만 고위 관리의 자제들도 입학하였다. 그들은 터키어와 아랍어 그리고 페르시아어는 물론 역사와 수학 그리고 음악 등을 배웠다. 또한 엄격한 체력 단련을 통해 기마술과 무기 다루기에 능했으며 궁중 내 예의범절도 익혔다.


궁정 학교를 졸업하면 무사이면서 학자와 신사의 면모를 겸비하게 되었고, 건전한 무슬림인 동시에 나라에 충성하는 헌신적인 신하가 되었다. 궁정 학교 출신들은 주로 오스만 조정의 행정관리로 배치되었으며 그들은 능력과 공적에 따라 고위직으로 승진하였다.



궁정 학교 옆에는 바그다드 쾨쉬쉬라고 부르는 정자가 있다. 이 정자는 1638년 무라트 4세가 사파비 제국으로부터 바그다드를 되찾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이 정자 옆에 보이는 전망대에 서면 보스포루스 해협과 이스탄불의 신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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