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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Nov 28. 2020

이스탄불 여행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구사가와 신시가지로 갈라져 있다. 이스탄불 여행의 시작은 구시가지에 있는 블루 모스크부터이다.


아야 소피아와 마주 보고 보고 있으며 거울과 같이 꼭 닮은 블루모스크의 원래 이름은 술탄 아흐멧 자미이지만 푸른빛 타일로 은은하게 감싸인 외관 덕분에 블루모스크라 불린다. 이스탄불의 최고의 이슬람 사원인 이곳은 아야 소피아의 아름다움에 감복한 술탄이 오스만 제국의 건축 거장 인 미마르 시난에게 아야 소피아를 뛰어넘는 건물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에 지었다고 한다.



이슬람 사원은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첨탑인 미나렛의 개수에 따라 그 권위가 달라진다. 보통 개인이 지은 것은 미나렛이 하나이며 장군이 지은 것은 두 개 그리고 국가에서 지은 것은 세 개다. 하지만 술탄이 지은 것은 4개 이상으로 블루모스크는 높은 권위의 상징을 위해 당시 메카의 첨탑 개수와 같은 무려 6개의 미나렛을 올렸다. 이 일로 메카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메카의 첨탑을 1개 더 추가해 7개로 만들게 하는 해프닝도 일어났다고 한다.



2만 장의 푸른색 타일로 가득한 모스크로 들어가면 높이 43m 지름 27.5m의 중앙돔이 여행자를 압도하고 돔 주변의 창을 통해 비치는 빛으로 인해 숙연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겉에서 보기에는 아야 소피아보다 규모가 커 보이지만 실제 면적은 아야 소피아가 조금 더 넓다고 한다.


블루모스크를 나오면 맞은편에 보이는 아야 소피아까지 광장이 펼쳐지는데 광장 안에 히포드럼이 있다.



히포드롬은 비잔틴 제국 당시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로마 경기장을 말하는 곳으로 이곳에서 나카의 난을 일으킨 3만 명의 사람들이 학살당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십자군의 침입으로 파괴되어 현재는 그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지만 아직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히포드럼에 있는 3,500년 전 상형문자가 쓰여있는 오벨리스크 디킬리타스는 이집트의 투트모스 3세의 전쟁 승리를 기념하며 세워진 것으로 4세기경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터키로 가져왔다고 한다.


그 뒤로 보이는 오벨리스크는 오메르 스툰으로 불리는 오벨리스크가 보이는데 이는 콘스탄티누스 7세가 940년에 만든 곳으로 원래는 경기 관람을 위한 천막을 세우는 용도로 황동과 청동으로 덮여 있었지만 십자군이 동전을 만들기 위해 다 뜯어가 돌만 남았다. 기둥의 받침에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또한 큰 뱀이 서로 엉켜 있는 3m의 청동 기둥은 그리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신탁을 받아 그리스의 아폴론 신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뱀의 머리 부분은 파손되고 현재는 몸통만 보인다.



광장의 북쪽에 있는 둥근 지붕의 체슈메는 과거 경기장의 있을 때 마차들이 입장하던 곳으로 독일 황제인 빌헬름 2세가 오스만 제국의 술탄을 위해 선사한 것이다.


히포드럼에서 5분 정도 내려오면 예레바탄 지하궁전이

나온다.



동로마 제국 시대에 왕궁이 포위되었을 때 황실의 수도 공급을 위해 지은 이곳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에 공사를 시작하여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인 532년에 완공하였으며 7천 명의 노예가 투입되었다고 한다. 8만 톤의 물을 저장하는 지하궁전에 입장하여 52개의 계단을 내려가면 336개의 둥근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천장이 무시무시한 빛으로 여행자를 맞아한다.



유명한 것은 메두사의 머리를 받침으로 사용된 기둥으로 저수조에 독을 타려는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 부적으로 사용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또한 눈물을 흘리는 부조가 그려진 헨의 눈 기둥은 저수조를 만들 때 죽은 노예들을 기리기 위해 새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예레바탄에서 나와 구시가 중심길로 15분 정도 걸어가면 그랜드 바자르가 나온다.


550년의 역사를 가진 이스탄불의 가장 유명한 재래시장인 이곳은 비잔티움 시대 무역의 중심지로 중국 당나라 장안에서 시작되는 실크로드의 종착지였다. 시장 안에 있는 5천 개의 상점에는 가죽과 카펫 및 수공예품을 비롯해 의류와 보석 등이 가득하다. 특히 터키인들에게 부적의 의미가 있는 파란 악마의 눈이 눈에 띈다.


이제 지하철을 이용해 아시아 지구에 속해 있는 탁심광장으로 이동하자.



이스탄불에서 신시가자의 중심인 탁심 광장은 식당과 호텔 그리고 상점들이 몰려 있다. 광장의 한가운데에는 터키 독립전쟁의 승리와 공화국 탄생을 기념하는 1928년에 만들어진 12m의 공화국 기념비가 있다.



탁심광장에서 이스탄불의 명동이라 불리는 이스티크랄 거리로 들어서면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활기가 느껴진다. 이곳에서부터 갈라타 탑까지 운행하는 빈티지한 열차 트램 바이를 이용해 천천히 도시를 횡단한다.



갈라타 지역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갈라타 탑은 15세기에 비잔틴 제국으로부터의 방어를 위해 제노바 인들이 지은 것으로 전망 탑으로 십자군 전쟁 때 파괴되었으나 1348년 그리스도 탑이라는 이름으로 재건축되었다. 과거 포로수용소와 기상 관측소로 사용되었던 이곳 전망대에 오르면 이스탄불 시내와 보스포루스 해협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갈라타 탑을 내려와 수많은 낚시꾼이 늘어서 있는 갈라타 다리를 건너면 이스탄불의 별미인 고등어 케밥과 홍합 튀김을 파는 해산물 식당과 유람선 선착장이 나온다.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유람선에서 바라보는 이스탄불의 야경은 황홀하다. 어둠이 내린 바다 위로 찰랑대는 검푸른 파도와 바람이 제국의 심장인 이스탄불의 모스크들이 뿜어내는 불빛과 어우러져 신성로마 제국과 오스만 제국 그리고 터키 공화국으로 이어지는 터키의 역사를 떠 올리게 한다. 그리고 역사에는 절대적인 강자도 약자도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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