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세스 2세의 영광
카이로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아스완은 이집트 남동부에서 가장 큰 도시로 수단과 에티오피아의 국경지역에 있다. 여기서 버스로 4시간을 가면 람세스 2세가 자신과 아내 네페르타리를 위해 지은 아부심벨 신전이 나온다. 이집트의 남쪽 끝에 위치한 아부심벨은 고대 이집트의 신왕국을 대표하는 신전으로 람세스 2세가 국토를 수호하기 위해 지은 신전이기도 하다.
람세스 2세의 치하 당시 그는 엄청난 영토를 확장했지만 그중에서 가장 신경이 쓰였던 곳이 바로 이웃나라인 누비아(지금의 수단)였다. 그는 누비아를 장악하기 위해 몇 번이나 원정을 떠났으며 결국 누비아 정벌에 성공했지만 그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대책을 세워야 했다. 그 중 하나가 아부심벨 신전이다.
람세스 2세는 누비아와의 국경지대에 장엄하고 당당한 아부심벨 신전을 지어 누비아에게 우리의 적수가 못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또한 누비아 인들과 대척점에 있었던 국경지역의 이집트 인들에게도 자부심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부심벨 신전 앞에 있는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좌상 4개가 근엄한 모습으로 누비아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람세스 2세의 의도와는 반대로 그가 죽은 후 300년 뒤 누비아가 이집트를 침략해 100년 동안이나 이집트를 지배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부심벨 신전은 고대 이집트가 몰락하기 이전의 마지막 영광을 보여주는 신전이라 할 수 있다.
나일강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아부심벨 신전의 주차장에 내려서 매표소로 가면 매표소 옆에 작은 전시실이 나타난다. 이 곳에는 수몰될 뻔한 아부심벨을 어떻게 지켰는지 스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을 보여준다.
1959년 이집트는 나일강의 범람을 막고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스완 댐을 건설한다. 하지만 댐이 완성되면 인근의 아부심벨 신전이 수몰될 위기에 처했다. 이 소식을 접한 유네스코는 세계 50여 개국으로부터 3,600억 달러라는 거금을 모은 후 기술자들을 동원하여 4년에 걸쳐 아부심벨 신전을 바로 위의 언덕으로 옮겼다.
하지만 거대한 아부심벨 신전을 옮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부심벨이 있는 암벽에 1만 7천 개의 구멍을 뚫은 후 아부심벨 신전을 무게 30톤의 1천여 개의 조각으로 잘라서 옮겨야 했다. 그리고 재조립이라는 긴 과정을 거쳐 원래 위치보다 65미터 높은 곳으로 아부심벨을 옮기는데 성공하였다.
공사가 끝난 후 이집트 정부는 가장 큰 후원을 주었던 미국에 작은 신전 하나를 통째로 선물했다. 그 신전이 바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있는 덴두르 신전이다.
전시실을 나와서 10분 정도 나일강을 따라 걸으면 거대한 아부심벨 신전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아부심벨에는 소신전과 대신전으로 나누어지는데 입구 쪽에 가까우며 사람들이 많이 없는 소신전부터 관람한다.
아부심벨 소신전은 람세스 2세의 첫 번째 왕비인 네페르타리를 위해 지은 것으로 이집트 최초로 왕이 왕비를 위해 지은 신전이다. 12m 높이의 소신전의 입구에는 람세스 2세 입상 4개와 네페르타리 왕비의 입상 2개가 조각되어 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입상들을 잘 살펴보면 람세스 2세는 정교한 깃털과 뿔의 왕관을 쓰고 있으며 네페르타리의 머리에는 깃털과 태양 원반이 있다. 또한 그들 발아래에는 공주와 왕자를 상징하는 동상이 보이는데 왕자의 조각상을 공주의 조각상보다 크게 조각했다.
람세스 2세의 부인인 네페르타리는 그녀의 이름처럼 완벽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13살 때에 15살의 람세스 2세와 결혼을 하였으며 람세스가 파라오에 오르자 왕비가 되어 람세스 2세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가 38살의 나이에 사망하자 람세스 2세는 매우 슬퍼하며 왕비의 계곡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이후 죽은 네페르타리를 잊지 못한 람세스 2세는 그녀와 닮은 사람을 찾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는데 찾을 수 없게되자 그녀와 가장 닮은 자신의 친 딸인 메리타멘을 왕비로 삼았다.
소신전으로 입장하면 열주실이 나타난다.
열주실로 입장하면 암소귀를 가진 하토르 여신의 조각기둥 6개가 천장을 바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미와 사랑의 신인 하토르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죽은 자들을 저승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기둥들 뒤로는 여러 신들과 함께하는 네파르타리의 모습을 새긴 벽화가 있다. 이중 소뿔 안에 태양을 담은 하토르 여신이 네파르타리에게 축복을 내리는 벽화가 눈에 띈다.
열주실을 지나 성소 앞으로 이동하면 성소 입구의 양쪽으로 가장 중요한 벽화가 있다.
바로 하토르 여신과 지상의 신 호루스에게 왕과 여왕이 각각 제물을 바치는 모습의 벽화이다. 그들은 향과 술을 비롯한 여러 가지 제물을 신에게 정성스럽게 바치고 있다.
지성소 안에는 소의 형태를 된 하토르 동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람세스 2세는 자신의 부인인 네파르타리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녀를 위한 신전을 지어 미와 사랑의 여신인 하토르 여신에게 헌정하였다.
이제 소신전을 나와 대신전으로 이동하자.
모래 속에 묻혀 있다가 19세기 초반 발견된 대신전 앞에는 높이 33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람세스 2세 좌상 네 개가 있다.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상징하는 이중관을 쓰고 왕의 상징인 수염관을 하고 있는 람세스 석상 중 하나는 상체가 훼손되어 있다. 오래전에 지진이 일어나 파괴된 석상을 신전을 옮길 때 이를 복원할지 고민하다가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인위적인 무언가를 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신전의 가치를 더욱 높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람세스 좌상의 무릎 밑에 왕비와 왕자들의 작은 입상들이 늘어서 있다. 발 사이에 있는 작은 석상은 공주이며 그 옆에 보다 큰 조각상은 람세스의 어머니와 부인의 석상이다.
이제 신전 입구로 입장하자.
신전 안으로 들어가면 열주실을 만난다. 열주실을 떠 바치고 있는 여덟 개의 기둥은 사후 세계를 관장하는 오시리스 신으로 죽은 자의 심판을 통해 저승세계의 입성을 결정하는 신이다. 천장에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독수리가 보인다. 열주실 전체는 파라오의 권능이 신의 권능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열주실의 벽에는 이집트와 히타이트의 카데시 전투 장면을 그린 부조가 새겨져 있다. 카데시 전투는 가원전 13세기 람세스 2세때 팔레스타인을 사이에 두고 히타이트와 세력을 다툰 전투로 람세스 2세가 직접 출정하였다. 시간이 지나도 우열을 가리지 못한 양 세력은 결국 평화조약을 체결하였는데 이것은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이 되었다. 대신전의 벽화는 당시 치열한 전투 상항을 차례대로 보여주는데 람세스 2세가 용맹히 싸우는 모습이나 죄수를 끌고 가는 모습 등 조각 전체에 생동감이 넘친다.
열주실을 지나면 지성소가 나온다.
신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지성소에는 4개의 석상이 있다. 가장 왼쪽은 저승의 신 프타이며 그 다음은 태양의 신 아문 라이다. 그리고 그 옆으로 신전의 주인인 람세르 2세가 보이고 마지막 오른쪽은 태양 운행을 관장하는 하라크테이다. 입구부터 55m의 깊이에 있는 이 곳에 1년에 2번 (춘분과 추분) 햇빛이 들어와 람세스와 태양신을 비추지만 저승의 신 프타만은 비추지 않는다고 한다. 치밀하게 설계하여 연출한 이 장면을 신전을 옮기면서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