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버그로 돌아온 우리는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 빅토리아 폭포로 향한다. 빠듯한 예산으로 에어컨도 없는 빨간 렌터카를 빌렸다. 차를 빌리자 말자 차선도 희미한 아프리카 길 위를 신나게 달렸다, 하지만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과속으로 경찰에 잡혔다. 법을 몰랐다. 남아공 돈이 없다는 등의 변명은 통하지 않아서 벌금을 냈다. 며칠 후 돌아오는 길에 똑같은 장소 똑같은 경찰에게 다시 과속으로 잡혔다. 하지만 우리의 얼굴을 알아본 경찰은 씩 웃으면서 그냥 가라고 했다.
남아공은 운전석과 처선이 우리와 반대라 로터리만 나오면 방향이 헷갈렸다. 우리와 반대방향으로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은 차선을 따라 하루 종일 운전과 사투를 벌인 끝에 중간 기착지인 블라와요에 도착했다. 블라와요에 동양인은 우리 말고 일본 사람뿐이다.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빅토리아 폭포로 향했다.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광활한 지평선을 바라보면서 지나서 오로지 북쪽 방향으로 올라간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20시간의 기나긴 운전에 녹초가 되어 아무 생각이 없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체력마저 다 소진될 무렵 저 멀리서 물보라가 일었다.
점차 가까이 다가가니 물보라는 엄청난 물기둥으로 변하여 어둑한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었다. 빅토리아 폭포다. 1.7킬로미터의 어마어마한 폭과 밑이 보이지 않는 높이 108미터인 거대한 빅토리아 폭포는 하늘로 치솟아 305미터의 물보라 기둥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폭포와 6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우리는 그 기둥을 보고 있다.
그로부터 1시간 이상을 달려 마침내 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로 들어서니 온 마을이 폭포 소리로 뒤덮여 있다. 여기 사람들은 빅토리아 폭포를 천둥 치는 연기라는 뜻으로 <모시아 튠야>라고 부른다. 1805년 영국인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이 폭포를 발견하고 당시 영국의 여왕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 폭포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짐바브웨이와 잠비아의 국경에 걸쳐 있는 빅토리아 폭포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짐바브웨이 쪽에서 하는 것이 좋다. 폭포 감상을 위한 국립공원이 짐바브웨이 쪽에만 있기 때문이다. 대신 물가가 저렴한 잠비아 쪽에는 악마의 수영장과 번지점프 등 다양한 액티비티가 몰려 있어 잠비아 쪽에 숙소를 잡고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기는 것이 좋다.
오후 늦게 도착한 우리는 호스텔과 펍이 몰려 있는 잠비아의 리빙스턴에서 숙소를 잡은 후 맥주와 음악으로 긴 여정의 피로를 풀었다.
다음날 오전 일찍 일어나 번지점프를 하러 갔다. 잠비아에서 짐바브웨이로 넘어가는 다리에 세계에서 몇 손가락에 드는 길이 110m의 번지점프대가 있다. 사고가 나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무시무시한 각서에 서명을 하면 체중계에 몸무게를 재어서 팔뚝에 적어준다. 안전을 위한 조처로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번지 대에 서면 밑으로 바닥이 아련하게 보인다. 우물쭈물하는 순간 뛰어내리는 순간을 놓쳐 버리기 때문에 번지대에 오르자마자 가이드의 사인에 맞게 과감하게 몸을 던져야 한다.
계곡으로 몸을 던지자 꿈속에서 사경을 헤매는 듯 계속해서 추락한다. 한참 동안 시간이 흘렀는데도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이렇게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위로 한껏 솟구친다. 차라리 내려가는 것이 낫다. 위로 솟구치는 공포감은 조금 전의 내려오는 두려움의 두 배이다. 무아지경에 빠져 어느 순간 다시 내려가고 다시 오르고 그렇게 오르내림을 반복하자 이제야 아름다운 빅토리아 폭포의 경치가 보인다. 그리고 물 밑으로 내려서자 살았다는 생각과 함께 해냈다는 자신감으로 마음이 충만해진다.
휴식을 취한 뒤 오후에 래프팅을 하기 위해 폭포 밑으로 내려갔다. 빅토리아 폭포의 대표적인 레저 중 하나인 래프팅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고 짜릿하다. 지옥 폭포에서 떨어지는 강렬한 물줄기를 타고 래프팅을 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미친 짓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쾌감 역시 어떤 것과도 바꿀 수가 없다.
래프팅을 하기 위해서는 역시 서약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 서명을 마치면 두꺼운 고무 옷과 장화로 갈아 신고 8명씩 조를 나눈다. 그리고 주의 사항을 듣고 설레면서도 긴장된 마음으로 보트를 들고 강으로 향한다. 시커먼 폭포수 물에 보트가 놓이자 차례대로 보트에 오른다. 심한 요동과 함께 보트는 출발한다. 보트의 흔들림과 급한 물결은 상상 이상이다.
거칠게 요동치는 보트 안에서 보이는 것은 하늘과 물거품뿐이다. 자신도 모르게 보트 안에 고정시킨 발에 힘이 들어가고 눈을 부릅뜨게 된다. 교관의 말에 따라 정신없이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면 조금씩 물길이 익숙해지고 앞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 큰 바위 아래 2~3m의 낙하지점이 나타난다. 낙하지점이 가까워지자 조교는 <전진>과 <후진>을 연발하다가 낙하지점에서 모두 노를 안으로 놓고 숙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모두들 두려움으로 몸을 숙임과 동시에 동시에 몸이 허공에 붕 뜨는 것을 느낀다. 보트가 뒤틀리면서 물길을 따라 하강한 후 아래쪽 지점으로 급하게 내려앉는다. 순간 모두가 고함을 지르면서 짜릿한 쾌감과 동시에 안착했을 때의 안도감을 느낀다.
이후 연이은 낙하 상황에 흥분과 쾌감을 몇 차례 즐긴 여행자들은 잔잔한 물결 지점이 되자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그리고 가이드의 허락을 받고 폭포수에 몸을 담근다. 래프팅이 끝나고 돌아오면 신나는 음악과 함께 시원한 맥주와 빵이 무료로 제공된다. 모두들 타는 목마름을 맥주로 적시며 신나는 체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악마의 수영장으로 간다. 악마의 수영장은 수량이 없는 건기에만 생기는 것으로 폭포 끝자락 바위 사이에 생기는 웅덩이를 말한다.
천 길 낭떠러지가 바로 눈 앞에 있는 악마의 수영장은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하지만 가이드의 말에 따라 한 사람씩 웅덩이로 내려가 수영장 끝에서 사진을 찍고 즐긴다. 내 차례가 되어 자연스럽게 웅덩이로 뛰어들었다. 물살이 거세지만 생각보다 안전했다. 점차 폭포 끝으로 가자 폭포의 물보라와 햇빛으로 항상 피어나는 무지개가 여행자를 반긴다. 폭포의 끝에서 보는 세상은 달랐다. 백척간두에 서서 바라보는 세상은 설레면서도 지친 일상을 새롭게 한다. 악마의 수영장은 가장 아찔한 스릴을 맛보며 인생 사진을 찍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싸서 짐바브웨이로 넘어간다. 빅토리아 폭포 국립공원으로 입장하기 위해서이다. 국립공원 입구에는 원주민들이 전통 악기와 의상을 입고 여행자들에게 빅토리아 폭포가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추억이 되기를 축복해준다.
입구를 지나 산책로를 따라 숲을 지나자 보이지 않는 폭포의 거대한 울음이 이미 여행자의 마음을 압도한다. 숲을 헤치고 나오자 바로 앞에 폭포가 펼쳐진다. 그 크기와 높이가 끝을 알 수 없어 사람들이 악마의 폭포라고 부르는 박토리아 폭포가 여행자를 사로잡는다.
사진을 찍으며 한 발 한 발 폭포로 다가가자 온 몸이 젖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선명해진다.
신은 살아 있다.
폭포 가까이 다가가니 꿈틀대는 물줄기가 집어삼킬 듯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으로 뛰어내리는 거대한 장관을 연출한다. 그 뒤로 다른 폭포가 시차 없이 계속 뛰어내린다. 그리고 장엄한 폭포의 행렬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운무가 구름처럼 몰려나와 세상을 흐린다. 우리는 이미 온몸과 마음이 다 젖은 채 상기된 얼굴로 운무 사이를 뛰어다니며 미친놈처럼 웃는다.
마침내 폭포 앞에 섰다. 세상을 집어삼킬 듯 격렬히 몸부림치는 폭포는 숭고 그 자체이다. 폭포 앞에서 내 심장과 가슴은 이미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세상에 없고 오직 폭포와 운무 그리고 굉음과 하늘만이 존재한다. 그렇게 아프리카 여행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