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성지
사람과 차가 다니는 길 위로 수많은 가로수들이 숲을 이루고 골목 곳곳에 광장과 카페가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도시 한가운데로 흐르는 가론 강이 쉴 새 없이 상쾌한 바람을 불어넣는 보르도는 도시 그 자체가 압권이다. 특히 시원하게 펼쳐진 강변로를 자전거를 타거나 음악을 들으며 산책을 한다면 누구나 보르도의 금방 매력에 빠져들어 보르도 관광청이 왜 최고의 여행코스로 도시 산책을 추천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보르도에 오면 누구나 찾는 캥콩스 광장은 유럽에서 가장 큰 광장으로 파리 콩코르드 광장의 1.5배의 크기이다.
광장 입구에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2명의 사상가 몽테뉴와 몽테스키외의 조각상이 서 있다. 몽테뉴는 1581년에 보드로의 시장을 역임했으며 몽테스키외는 미합중국과 프랑스 헌법 제정에 참여한 인물이다. 광장 중앙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1895년 프랑스혁명에 큰 역할을 한 지롱드 당의 당원들에게 바쳐진 것으로 꼭대기에 승리의 상징인 월계관을 들고 있는 날개 달린 여신이 서 있다.
캥콩스 광장에서 트램길을 따라 조금 내려오면 보르드 관광안내소가 나오고 그 옆으로 대극장이 나온다.
신전과 같이 원기둥이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극장의 정면에는 12개의 조각상이 배치되어 있는데 모두 그리스 신화에서 음악과 시를 담당하는 여신들이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로비에서 좌우로 올라가는 계단은 우아한 조화로움으로 지성의 극치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파리의 오페라 극장을 설계한 가르니에가 설계 당시 이 극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만큼 극장은 고전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1780년 클로드 로빈이 그린 공연장의 천장화는 아테나와 헤르메스가 보호하는 평화로운 보르도를 보여준다. 와인과 해상 무역 그리고 노예 등 도시의 부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두 명의 신을 경외심으로 쳐다보고 있다.
대극장을 나와 강가로 나서면 보르도에서 가장 세련된 분위기를 지닌 부르스 광장이 나온다.
광장에는 가론 강을 향해 좌우로 포물선을 그리는 부르스 궁전을 그대로 비추는 워터 미로가 있다. 워터 미로는 멀리서 보면 호수처럼 깊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신발이 젖지 않을 정도로 얕다. 중간중간 수증기를 뿜어내면서 르와르풍의 영화처럼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곳에는 여유를 즐기는 시민들과 여행자들로 언제나 활력이 넘친다.
특히 해가 진후 어둠이 내리면 분수와 주위의 건물에 조명이 들어오면서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흔한 광장에 연출된 연못 하나만으로도 보르도는 빛나기 시작한다.
보르도 하면 생각나는 와인을 이해하기 위해 빼놓지 않고 둘러봐야 할 곳은 바로 라 시테 뒤 뱅이다. 보르도 광장에서 강을 따라 차로 20분 정도 올라가면 한눈에 이목을 끄는 라 시테 뒤 뱅은 일종의 와인 현대 박물관이다.
2016년 6월 오픈한 이곳은 와인잔을 빙그르르 돌릴 때 소용돌이치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외관을 디자인했다. 외관 자체를 한번 둘러보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내부는 더 혁신적이다. 내부 전시실은 전 세계 유명 와이너리와 포도 그리고 와인 병의 디자인과 라벨과 같은 와인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서 실시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와인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투어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와인 역사와 특징을 상황극을 만들어 3D 홀로그램으로 보여주는 극장이다. 또한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8층은 보르도 시내를 바라볼 수 있는 파노라마 뷰를 자랑한다.
보르도 와인과 함께 와인괴 어울리는 프랑스의 음식을 체험하고 싶다면 라 시테 뒤 뱅 길 건너에 있는 마켓을 들러야 한다. 마켓에는 다양한 메뉴를 내세워 요리와 와인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맛집이 몰려 있다.
이제 보르도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와이너리 투어를 위해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생테밀리옹으로 이동한다.
1999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생테밀리옹은 8세기경 은둔자이자 성인인 에밀리옹이 정착했던 동굴 주변에 형성된 작은 마을로 중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와인 투어뿐만 아니라 관광지로도 인기가 높다. 마을 입구부터 와인 전문점이 즐비한 생테밀리옹을 가로질러 마을 중심에 있는 망루에 오르면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보르도가 와인의 성지가 된 이유는 온난한 기후와 배수가 잘되는 자갈 섞인 토양 그리고 강에서 흘러 들어오는 충분한 수분으로, 와인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최상급의 포도를 재배하기 때문이다. 보르도를 가로지르는 가론강을 중심으로 좌안에 있는 매독에는 신맛과 떫은맛 그리고 단맛이 탄탄하게 배어 있어 황제의 포도라고 불리는 카르베네 소비뇽을 생산하고 우안에 있는 생 떼밀리옹은 수분과 당분이 많아 부드럽고 우아한 맛을 내는 메를로 포도를 생산한다.
생테밀리앙 마을에서 1km 떨어진 샤토 프랑 메인으로 가면 푸른 포도밭 사이로 고성 같은 농가가 나온다.
샤토 프랑 메인은 생떼밀리옹의 와인 분류에서 최상급인 그랑 크루 클래세로 선정된 보르도 와인을 생산하는 곳으로 대부분의 생떼밀리옹 와인과 마찬가지로 메를로 포도를 빚은 후 오크통에서 오랜 숙성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와인에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곳에 와 탁 트인 포도밭을 직접 걸으며 탐스럽게 익어가는 포도를 둘러보고 지하동굴에서 숙성된 최고 품질의 와인을 맛본다면 와인의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좋은 와인은 비싼 와인이 아니라
지금 당신이 마시는 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