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색감의 도시
니스 기차역을 나와서 트렘 길을 따라 내려오면 메드셍 거리의 끝에 마세나 광장이 나온다. 1830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마세나 광장의 중앙으로 니스 해변을 배경으로 한 아폴론 분수가 보인다. 시민의 시원한 휴식처를 제공하는 아폴론 분수의 주인공 아폴론은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과 시 그리고 그리고 및 음악을 주관하는 신이다.
마세나 광장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구 시가지는 다양한 볼거리를 지닌 좁은 거리와 형형 색색의 건물들 그리고 바로크 양식의 성당 등으로 인기 여행지이다.
현지인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곳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골목이나 카페에 나오면 시원한 맥주나 따뜻한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여행이 주는 싱그러운 여유를 만끽하자.
충분한 휴식을 취하였다면 해변으로 나가 니스가 자랑하는 프롬나드 데 장글레 해안 산책로를 걷는다.
7km의 산책로는 시원하고 아름다운 바다와 함께 수영과 선텐을 즐기는 여행자들로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여유로운 산책 중 니스와 사랑에 빠진 예술가가 만든 커다란 푸른색 의자 조각상을 만난다면 추억의 사진을 남기자.
산책로 끝에 도착하면 성과 전망대가 있는 샤토 언덕이 나온다.
무료로 제공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 전망대에 도착하면 사진 속에서 보았던 환상적인 니스의 전경이 바로 내 눈앞에서 펼쳐진다.
전망대를 나와 버스를 이용해 10분 거리에 있는 샤갈 미술관으로 향한다.
러시아 작은 농촌마을 비테프스크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난 샤갈은 어릴 때부터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아 미술학교를 다녔으며 성인이 되자 화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왔다. 샤갈이 파리에 왔을 때는 야수파와 입체파가 파리를 장악하고 있어 그 영향을 받으며 자신이 세계를 하나씩 창조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자신의 연인이었던 벨라와 결혼하였다. 당시 벨라는 러시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부자인 부모를 두었다. 그녀의 부모는 생계가 막막한 샤갈과의 결혼을 반대했다. 하지만 18세의 나이에 모스크바대학에 들어갔을 만큼 지성과 매력을 갖춘 그녀는 샤갈이 파리로 유학을 떠난 뒤에도 6년을 기다렸으며 샤갈이 고국에 돌아온 직후 결혼하였다.
샤갈에게 벨라와의 사랑은 그의 초기 작품들을 빛내는 훌륭한 소재이자 예술적 모티브였다. 샤갈의 작품 중 그녀와 함께 고향 하늘을 날아다니는 작품들이 유독 많은데 이는 벨라와 함께 자유로운 사랑을 꿈꾸는 샤갈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오래가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나치의 탄압을 피해 샤갈이 미국으로 피신해 있는 동안 벨라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사망하였다. 아내를 잃은 샤갈은 깊은 슬픔과 외로움으로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1947년 샤갈은 삭막한 미국을 떠나 베니스를 거쳐 따뜻하면서 빛이 넘치는 생폴 드 방스에 자리 잡았으며 그로부터 5년 후 60세의 샤갈은 유대인 여성 발렌티나 바바 브로드스키와 결혼을 하였다.
벨라가 죽은 지 8년 만에 결혼한 그는 17점의 연작 <성경의 메시지>를 완성하여 프랑스 정부에 기증하였다. 프랑스 정부는 기증받은 샤갈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1973년 샤갈 미술관을 개관하였다. 현재 미술관에 전시된 <성경의 메시지>는 성경 속 내용을 중심으로 샤갈 자신의 내면세계를 보여준다. 샤갈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내면을 반영하지 않은 그림은 죽은 그림이다.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천국을 상징하는 파랑과 초록 바탕에 노란색의 아담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자신의 옆구리에 갈비뼈 하나가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그 위의 흰색 구름에서 이브가 창조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흰색은 창조주 하나님을 상징하는 색으로 모든 색의 바탕이다.
작품 위로 여러 동물이 섞여 있는 신화 속의 키메라가 보인다. 그리고 아래로 뱀에 꼬여 사과를 먹고 있는 아담과 이브가 있다. 아담과 이브는 두 인물이 아닌 하나의 몸인 것처럼 세 개의 다리와 두 개의 팔을 가지고 있다. 바닥에는 샤갈의 고향을 상징하는 염소가 보인다.
다음 작품은 샤갈 자신의 인생을 보여준다.
작품 중앙에 예루 살렘을 대신해서 두 개의 도시를 있다. 위쪽은 마지막 20년을 살았던 생폴 드 방스이고 바로 아래 뒤집어진 도시는 샤갈이 태어난 러시아의 비테프스크이다. 두개의 도시 위와 아래로 보이는 둥근 곡선은 여자의 가슴과 배를 상징한다. 작품 오른쪽에 누워 있는 남녀 한쌍은 첫 번째 아내 벨라와 결혼한 모습이다. 그는 벨라를 사랑했으며 그녀가 죽자 한동안 붓을 들지 못했다. 이후 그는 생폴 드 방스에서 두 번째 아내 바바와 살았는데 작품 속 왼쪽의 신랑 신부가 그 모습을 보여준다. 작품 아래쪽 뒤집어진 사람과 왼쪽 구석위에 붓을 들고 있는 사람은 화가 자신이다.
화가는 이 작품에서 자신이 살았던 두 번의 삶을 두 개의 도시와 두 번의 결혼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붉은색을 사용하여 사랑과 기쁨을 표현하고 있으며 청색의 나무와 말 그리고 천사들을 통해 동화 속 그의 내면을 보여주고 있다.
샤갈 미술관을 나와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샤갈이 마지막 삶을 보냈던 생폴 드 방스로 간다.
지중해가 바라다보이는 언덕 위의 마을인 생폴 드 방스는 중세의 작은 마을로 세계대전 이후 샤갈과 피카소가 찾아오면서 주목받았다. 그리고 이브 몽땅 과 로저 무어 같은 연예인들이 합류하면서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했다. 이후 골목마다 아기자기한 갤러리들과 아틀리에가 가득 차 있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되었다.
문패 하나라도 예술적 감수성이 차 있는 중세 마을의 집들과 돌로 만들어진 골목들을 지나 마을 입구 반대편으로 가면 샤갈의 무덤이 있는 공동묘지가 나온다. 입구를 지나자 이곳에 마르크 샤갈이 누워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1985년 9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샤갈은 그의 뜻대로 공동묘지에 묻혔다. 환상적인 주제와 화려한 색 그리고 특유의 능란한 붓질로 세상의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작품을 남긴 샤갈은 모든 방랑과 역경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예술과 삶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색은 오직 하나이다.
그것은 사랑의 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