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영원한 순간
1309부터 68년 동안 7명의 교황이 거주했던 교황청이 있는 아비뇽 여행의 시작은 오를로즈 광장부터이다. 시청 앞에 자리 잡은 이 광장은 15세기 야채와 생선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던 시장이었으나 지금은 노천카페와 식당 그리고 다양한 상점들이 들어서 활기에 넘친다.
광장을 지나면 거대한 요새 위로 50m의 뾰족한 첨탑이 돋보이는 교황청이 보인다.
교황청은 아비뇽의 유수 기간 동안 교황 클레멘스 5세를 비롯하여 정식 교황 7명과 대립 교황 2명 등 총 9명의 교황이 거주한 곳으로 유럽의 고딕 양식의 궁전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정문에서 보았을 때 왼쪽 건물이 먼저 증축되어 구 교황청이라 부르고 정문과 첨탑이 있는 오른쪽 건물을 신교황청이라 부른다.
13세기 말에 권력이 강해진 프랑스 국왕인 필리프 4세가 성직자와 교회 재산에 세금을 부과하려 하자 당시 교황인 보니파키우스 8세는 이에 강력히 대항한다. 교황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힌 왕은 1303년 여름에 자신의 부하를 비밀리에 파견하여 로마 교황청에 머물고 있던 교황을 납치한다. 제후들의 반발로 3일 뒤에 석방되었지만 심리적 충격을 받은 교황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후임자로 프랑스의 주교였던 클레멘트 5세가 교황으로 추대되자 필리프 4세는 막강한 힘을 내세워 교황을 로마로 가지 못하게 하고 아비뇽에 머무르게 한다. 이후 아비뇽은 68년 동안 교황청의 역할을 담당하다가 1377년 그레고리 11세 교황이 로마로 귀환하면서 아비뇽 교황청의 시대가 마감한다. 주인을 잃은 아비뇽 교황청은 그 이후 버려져서 감옥과 군사 시설로 이용되다가 최근 복원되었다.
교황청으로 입장하면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연회실인 그랑 터넬이다.
둥그런 천창의 나무 장식이 아름다운 그랑 터넬은 아비뇽 유수 당시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열리는 장소로 모든 문을 벽으로 막아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하였다. 박물관에서 제공하는 히스토 패드를 비춰보면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천장은 별이 빛나는 파란색 태피스트리로 덮여 있으며 아래로는 벽과 테이블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연회실을 나와 좁은 복도를 지나면 교황실과 클레멘스 6세의 서재인 사슴 방으로 이어진다.
1338년에 제작된 무수한 덩굴과 꽃으로 장식된 벽화와 고딕 양식의 창문들이 보이는 교황의 방은 당시 프랑스 국왕의 힘에 눌렸던 교황의 입장을 보여주듯 을씨년스럽다. 교황실 한쪽 벽에는 교황의 의자만 빛바랜 채 덩그러니 남아 있다.
좁은 복도로 이어진 사슴 홀은 1343년 클레멘스 6세의 사냥 이야기를 담은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다. 강력한 왕의 권력을 보여주듯 프레스코화에는 나무와 꽃이 만발한 평화로운 숲을 배경으로 클레멘스 6세가 당시 귀족적인 취미였던 사슴 사냥을 하고 있다. 그 옆으로 귀족들이 낚시와 열매를 따고 있는데 화면 전체적으로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바티칸에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있는 시스틴 예배당이 있다면 아비뇽에는 생장 예배당이 있다.
생 마르시알 예배당 아래 위치한 생장 예배당은 클레멘스 6세의 명령에 의해 1364년 이탈리아 화가 마테오 조반 네티가 그린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다. 생 마르시알의 일생을 보여주는 13개의 장면의 프레스코화에는 그가 어렸을 때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고 베드로에게 그리스도의 출현을 알리기 위해 갈리아로 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또한 갈리아에서 사람들을 치유하며 13개의 교회를 설립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그 옆으로 예수의 부활과 베드로와 바울의 순교의 장면도 있다.
작품 전체적으로 고상하고 인간적이며 다양한 인물의 표정은 마테오 조반 네티가 초상화 화가로서의 예술의 정점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곧 닥칠 르네상스 양식의 원근감과 공간감 그리고 사실적인 기법도 보인다.
1300년경 비테 르보에서 태어난 마테오 조반 네티는 1343년에 아비뇽에 왔으며 1346년부터 교황청 화가로 교황청의 주요 장식 프로젝트를 감독했다. 프로젝트를 마친 그는 로마로 돌아가 바티칸 궁전 장식 작업을 하던 도중 1369년에 사망했다.
교황청 관람의 마지막으로 2층에 있는 생장 예배당으로 이동한다.
1347년부터 1348년까지 마테오 조반 네티가 장식된 생장 예배당은 세례 요한과 요한복음의 저자이자 제자였던 사도 요한의 이야기를 나란히 담고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은 두 성인을 길러주신 부모의 모습이다.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자베스와 아버지인 세인트 자카리에 그리고 그의 외할머니 세인트 이스 메리의 모습이 경건하면서 우아하게 그려져 있다.
교황청을 나와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이동한다.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옮겨오기 전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세워진 노트르담 성당은 프랑스혁명 때 심각하게 훼손되어 감옥으로 사용되었다가 19세기 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교황청이 있던 도시의 성당이지만 내부는 의외로 소박하다. 성당으로 입장하면 제단 오른쪽에 아비뇽 유수 시기의 교황 중 한 명인 요한 22세의 무덤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제단 뒤쪽에는 아비뇽에서 교황을 지낸 7명의 초상화가 있다.
성당을 나와 오른쪽 언덕길을 오르면 구시가와 론 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로세 데 돔이 나온다.
이 곳은 원래 천연 요새였으나 19세기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정상에 오르면 아비뇽의 랜드마크인 생 베네제 다리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론강 위로 단절되었지만 우아함이 넘치는 생 베네제 다리는 21개의 교각에 22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총길이 900 미터의 웅장한 다리였지만 1680년 대홍수로 현재 3개의 아치와 생 니콜라 예배당이 남은 상태로 보존하고 있다. 1185년에 다리가 완공되자 아비뇽은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 지나다니는 순례자들이 찾는 교통의 중심지로 부상하였다. 아비뇽 다리라고 불리는 생 배네제 다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온다.
1177년 베네제라고 불리는 젊은 목동이 산에서 내려와 아비뇽에 다리를 만들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미친 사람 취급을 하였지만 그가 큰 돌들을 들어 강에 던져 넣자 눈부신 빛에 둘러싸인 천사가 나타나 그의 일에 도움을 주었다. 이를 본 사람들이 합심하여 다리를 완성했다.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아비뇽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레보드 프로방스로 이동한다.
알필 산맥에 위치해 경관이 뛰어난 레보드 프로방스는 평원이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바위 언덕 위에 생긴 마을로 이전 프랑스의 귀족 가문인 보 가문의 고풍스러운 성에 둘러싸여 있다. 마을에 진입하여 중세풍의 집과 좁은 골목 그리고 언덕을 오르내리다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막 중세에 도착한 듯 신비롭다. 특히 마을 정상에서 바라보는 자연 풍광은 여행자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한다.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고풍스러운 마을의 아름다움만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바로 폐쇄된 채석장을 이용해 만든 특별한 미술관인 까리에르 드 루미에르를 방문하기 위해서이다. 1935년 문을 닫은 후 80년간 버려져 있던 채석장을 2012년 거대하면서 환상적인 멀티미디어 예술 전시장으로 탈바꿈한 까리에르 드 루미에는 그 규모와 창의성으로 방문하는 여행자를 놀라움으로 압도한다.
레보드 프로방스 마을 바로 아래로 10분 정도 내려가면 채석장의 입구가 나타난다.
표를 구입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웅장한 분위기의 내벽과 기둥 그리고 바닥에 빛으로 투사된 대가의 거대한 작품들이 음악에 맞춰 울렁인다.
시기별로 클림트와 피카소 그리소 반 고흐 등의 작품으로
특별전을 여는 채석장은 우리를 색감과 형태가 지배하는
상상 속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다른 곳에서 보았던 명화 속 인물들과 사물들이 이곳에서 음악과 빛이 더해져 감각적으로 반짝인다. 빛과 색의 마술에 이끌려 이리저리 채석장을 누비다 보면 여행자는 어느새 미술 애호가가 되어 평생잊지 못할 황홀함을 느낀다.
아름다움에 도취된 순간 모든 시간이 멈추어지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