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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Feb 06. 2021

로마 야경산책

로마의 휴일


한 여름의 로마를 여행한다면 한낮에는 숙소나 시원한 곳에서 더위를 피하여 마음껏 쉬었다가 해가 질 무렵부터 시작하여 자정까지 저녁 도보여행을 하면 로마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더위가 한 풀 꺾이는 5시쯤 로마의 나보나 광장으로 가자. 광장은 더위를 피한 여행자들이 몰려나와 한층 활기를 띠고 있다.



서기 68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세운 원형 경기장이었던 나보나 광장은 서기 80년 경기장의 관중석으로 집들 빼곡히 들어서며 광장이 되었다. 17세기 중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는 광장 한편에 궁전을 세우고 광장을 아름답게 장식할 것을 바로크의 거장 보로미니에게 맡겼다. 그래서 지금도 교황의 궁전과 그에 딸린 아그네스 성당이 광장의 한 면을 채우고 있다. 신앙을 지키려다 이곳에서 화형 당한 아그네스 성인을 모시는 아그네스 성당은 화염에 휩싸인 성인의 동상과 성인의 유해를 안장한 소예배당을 가지고 있다.  



아그네스 성당 바로 앞에는 바로크의 또 다른 거장 베르니니가 설계한 4대 강의 분수가 있다. 분수대 위로 솟은 오벨리스크는 로마 가톨릭이 이교도를 물리 치려는 열망을 보여주는 것으로 꼭대기에 승리의 상징인 올리브 가지를 물고 있는 비둘기 조각상이 있다.



오벨리스크 아래 두 개의 거대한 교황의 문장이 장식되어 있으며 분수대에는 각 대륙의 강을 상징하는 4개의 조각상이 보인다. 신의 황무지를 상징하는 아메리카 대륙의 라플라타 강은 한쪽 손을 들고 반쯤 드러누운 조각상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 정체불명의 괴물과 선인장이 보인다. 그 옆으로 아시아의 갠지스강을 의인화한 조각상은 손에 커다란 노를 들고 있으며 그 아래 쇠약한 뱀이 보이며 유럽의 다뉴브 강을 의인화한 조각상은 두 손을 올려 오밸리스크를 경배하고 있으며 그 아래 말 조각상이 보인다. 너무나 길어 그 기원을 모르는 아프리카의 나일강은 베일에 덮여 있는 조각상으로 표현하였는데 그 아래 사자와 야자수가 보인다.


나보나 광장을 돌다 보면 저녁시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피자집 < 바베토 >에 들러 피자를 맛보자.



피자의 원조가 이탈리아이며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피자집이 바베토여서 로마 사람들은 이곳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집이라고 소개한다. 바베토에서 피자를 주문하면 주문과 동시에 토핑한 밀가루 반죽을 화덕에 넣어 만든 피자를 만들어 준다. 팬이 얇고 토핑이 많아 피자를 싫어하는 사람도 이 집에서는 대부분 1인분을 다 먹는다. 바베토의 추천 메뉴는 바베토 스페셜이다.



바베토 스페셜은 바싹 씹히는 빵 위로 계란 프라이와 소고기 그리고 버섯 등 다양한 재료가 토핑 된 것으로 다양한 맛으로 입안을 즐겁게 한다. 깔끔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피자의 기본재료인 치즈와 햄이 든 마르게리타를 추천한다. 피자를 먹다가 느끼하면 고춧가루를 달라고 해서 뿌려 먹으면 좋다. 고춧가루가 매우니 조금씩 뿌려야 한다.


식사를 마친 후 기분 좋게 선선한 바람을 음미하며 다시 나보나 광장으로 가서 맞은편 골목길로 걸어가면 판테온 신전이 나타난다.



기원전 27년 옥타비아누스 황제의 사위 마르쿠스 아그리파가 건축한 판테온은 로마의 모든 신에게 바치는 만신전으로 그 장대함과 경이로움에 보는 사람마다 감탄을 자아낸다. 609년에 일찌감치 성당으로 변경된 판테온은 다른 고대 로마 건축물처럼 완전히 파괴되는 사태를 피할 수 있었지만 돔에 금박을 입혔던 청동 타일은 콘스탄티노플로 보내졌으며 현관을 장식하던 청동 장식물도 성 베드로 성당의 주 제단을 만들기 위해 뜯겨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테온은 고대 로마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유일한 건축물이다.



판테온의 현관 기둥들과 청동문을 지나 판테온으로 입장하면 고대시대에 기둥 하나 없이 세운 거대한 천장 돔에 여행자는 입을 못 다물지 못한다. 미켈란젤로가 천사의 설계라고 극찬한 이곳에 라파엘로의 무덤도 있다.


이제 로마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맛보기 위해 지올리티로 이동한다. 젤라토의 기원이 이탈리아이고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 지올리티니 지올리티 아이스크림 역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 이 된다.



1900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지올리티는 매일 아침마다 햇과일을 갈아 만든 셔벗을 비롯하여 레몬커피와 피스타치오, 바닐라, 멜론, 워터멜론 등 50가지가 넘는 다양한 아이스크림을 판매한다. 특히 쌀로 만든 리쪼 아이스크림이 인기를 끌고 있어 한번 맛보기를 추천한다.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으로 달달한 휴식을 취하였다면 지올리티를 나와 로마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 코르소 거리로 이동하자.  



최고급 디자이너의 명품점부터 중저가의 상점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코르소 거리 18번지에 괴테가 이탈리아 기행 당시 머물렀던 집이 있다.


1786년 9월 3일 괴테는 자신의 37번째 생일파티가 있던 날 밤, 새벽 3시에 칼스바트 집을 몰래 빠져나와 여행가방과 가죽 배낭만을 마차에 싣고 이탈리아로 여행을 시작한다. 이탈리아 기행의 첫 줄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이 나를 떠나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유명 작가이자 바이마르 공국의 초빙 재상으로 생애의 절정의 순간이었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숨 막히는 일상으로부터 탈출하여 1786년 10월 29일, 로마에 도착한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된 날이다.



괴테는 로마에서 유명한 유적지를 빠짐없이 찾아다니며  고대의 건축물과 조각 그리고 회화작품을 감상하였다. 특히 시스틴 성당의 천지창조와 벨베데레 궁전의 아폴로 조각상에서 예술이 자연처럼 영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자신 속에 새로운 영감의 용광로가 다시 이글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로마의 마지막 밤에 그가 느낀 점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로마에서 보내는 이 마지막 밤. 슬픈 그 모습이 내 마음속에 어른거린다. 소중한 것을 그토록 많이 남겨준 로마를 생각하니 지금 나의 두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린다.


코르소 거리를 건너 반대편 골목으로 직진하면 오늘 야경의 하이라이트인 트레비 분수가 나온다.



좁은 골목에서 탁 트인 광장으로 나서면 쏟아지는 빛과 함께 화려하게 등장하는 트레비 분수는 로마를 찾는 여행자들에게 이래도 로마가 싫냐고 따지는 것처럼 눈부신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1762년 교황 클레멘스 13세의 지시로 지은 바로크 양식의 트레비 분수는 폴리 궁전을 배경으로 중앙에 바다의 신 넵튠 조각상이 위치하고 있다. 넵튠은 그의 두 아들 트리톤이 이끄는 두 마리의 말을 타고 가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조각 곳곳에 섬세함과 생동감이 넘친다.



트레비 분수에는 예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여행자가 분수에 동전을 한번 던지면 로마로 다시 돌아올 수 있으며 두 번 던지면 사랑하는 연인과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분수에 준비해온 동전을 던진다. 트레비 분수는 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동전이 쌓여있는데 이 동전들은 모아서 유니세프에 기부한다.


트레비 분수를 끝으로 로마의 아름다운 밤도 끝이 보인다. 이제 야경 여행의 종착지인 스페인 계단으로 가자.



137계단으로 만들어진 스페인 계단은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주인공인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계단을 내려오는 것으로 유명해졌다. 계단 아래에는 바르카시아 분수가 있는데 이에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한때 로마에 심한 홍수가 나서 스페인 광장이 물에 잠겼는데 어디선가 배 한 척이 광장으로 떠내려와 물이 빠진 뒤에도 광장 한복판에 덩그러니 남았다.


과장이 심한 이 이야기 때문인지 바르카시아 분수는 배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분수 앞으로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명품거리인 콘도티 거리와 많은 유명인사들이 다녀간 카페 <크레코>가 있다.


스페인 계단 위에는 1502년 프랑스의 루이 7세가 건설한

쌍둥이 탑의 삼위일체 성당과 오벨리스크가 있다. 성당 앞의 오벨리스크는 로마에 있는 19개의 오벨리스크 중의 하나로 이집트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지만 실제로는 2세기에 로마 사람들이 이집트 오벨리스크를 모방해 제작하였다고 한다. 영국인들이 좋아했으나 프랑스인들이 자본을 대고 이탈리아인들이 만들었으나 미국인으로 한 때 붐볐던 이곳을 스페인 계단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1647년부터 지금까지 계단 맞은편에 스페인 대사관이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계단을 내려가면 왼쪽 분홍색 건물이 바이런과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낭만파 시인인 존 키츠가 눈을 감은 곳으로 현재 키츠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키가 작았던 키츠가 여덟 살이 되자 마차 대여업을 하던 아버지가 말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었으며 열네 살 때는 어머니가 결핵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또한 유일한 혈육으로 그를 보살펴 주던 할머니마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자 키츠는 외톨이가 되었다. 불행한 어린 시절의 경험은 그가 의사시험에 합격했지만 의사의 길을 가지 않고 시인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22세에 첫 시집을 낸 키츠는 아름다움으로 인간의 고통과 고민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며 힘든 시기에도 쉬임 없이 시를 세상에 선보였다.


1818년 18세의 패니 브론이라는 이웃집 처녀를 만나 사랑에 빠진 23세의 키츠는 사귄 지 1년 만에 약혼을 하지만 얼마 후 갑자기 피를 토하며 당시에 불치병인 결핵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약혼자 없이 기후가 온화한 로마로 와서 혼신을 다하여 병마와 싸웠지만 1821년 2월 26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키츠가 로마에서 숨을 거두자 그를 사랑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스페인 계단으로 몰려와 이곳은 한 때 문학 순례지가 되었다. 키츠는 병상에서도 바르카시아 분수의 물줄기 소리를 계속 들을 수 있어 자신의 묘비에 다음과 같은 묘비명을 남겼다.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다.
여기 물 위에 이름을 쓴 자가 누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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