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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상 프로방스

세잔의 도시

by 손봉기

푸른 하늘과 반짝이는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 아래 삶의 여유가 넘치는 엑상 프로방스에서의 여행은 도시의 중심에 있는 미라보 광장부터 시작한다.


미라보 광장의 중심에 있는 로통드 분수는 1860년에 완성한 것으로 정상에는 정의와 무역 그리고 예술을 상징하는 삼미의 조각상이 보인다. 현지인들은 엑상프로방스를 짧게 <엑스>라고 부르는데 엑스는 라틴어로 물이라는 뜻인 아쿠아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그래서 프로방스에서 물이 나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엑상 프로방스의 곳곳에는 분수가 있어 여행자를 시원하게 반긴다.



1650년 마차들을 세워두기 위해 만들어진 미라보 광장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 미라보 거리로 들어서면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 늘어서 있다. 부유한 귀족 가문들의 사치를 보여주는 바로크식 건축물 아래에는 각각의 개성을 자랑하는 식당과 카페들이 여유를 즐기려는 현지인과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여행자는 마음에 드는 한적한 카페에 앉아 반짝이는 오전 햇살을 받으며 느긋하면서 싱그러운 여유를 즐긴다. 어쩌면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은 바쁜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여유로운 시간일지도 모른다.


미라보 거리에서 충분한 휴식을 즐겼다면 엑상 프로방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세잔의 생가인 쟈 드 부팡을 방문하자.



18세기 만들어진 세잔의 생가의 1층에 있는 거실벽에는 그가 20대에 그린 작품이 가득하다. 은행가였던 세잔의 아버지는 화가가 되겠다는 아들의 꿈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는 세잔이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변호사가가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고집 불통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증명하고 미술가가 되겠다는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저택의 거실 벽에 12개의 작품을 그렸다.



이후 세잔은 파리에 있는 미술 대학에 입학하였으며 아버지는 마지못해 학비를 대주었으나 아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 이런 관계는 1866년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그는 유산으로 엑상프로방스의 집과 거액을 받았다. 이후 그는 아무런 방해없이 자신의 예술세계를 마음껏 펼쳤다.


세잔의 생가를 나와 도심 중앙에 있는 생 소뵈르 대성당을 방문하자.



5세기부터 18세기까지 계속해서 증축된 대성당은 증축의 역사만큼 다양한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성당 입구 문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외벽은 고대 그리스 로마 양식으로 장식되어 있다. 하지만 외벽 위의 조각상과 종탑은 모두 고딕 양식이다. 5세기 스타일로 꾸며져 있는 실내로 들어 서면 전형적인 고딕 양식의 천장과 스탠드 글라스가 여행자를 경건하며 편안하게 한다.


대성당을 나와 카페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아낌없이 보낸 후 세잔이 거주하며 작업을 했던 화가의 아틀리에로 가자.



화가의 아틀리에로 입장하면 햇살이 쏟아지는 대형 유리 창문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천천히 실내를 돌아보면 세잔이 사용했던 의자와 책상 그리고 가구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금방이라도 세잔이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은 생생함이 묻어난다. 이 곳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전시물은 정물화에 사용했던 미술 도구와 오브제이다. 특히 책상 위에 보이는 과일들은 세잔의 그 유명한 정물화인 <사과와 오렌지>를 생각나게 한다.



<사과와 오렌지>에서 물병을 보면 정면에서 보는 물병과 위에서 내려다보는 물병의 이미지를 하나로 합쳐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사과와 복숭아가 더 잘 보이게 하려고 탁자를 앞으로 기울여 표현하고 있다. 실제 탁자가 저 모습이라면 위의 사과들은 앞으로 굴러 떨어졌을 것이다. 또한 상단의 사과들은 위에서 바라보는 시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릇에 담긴 오렌지는 정면에서 바라보는 시점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과일들의 색감은 한 가지 색이 아니라 빨간색과 노란색 그리고 녹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세밀하면서 견고한 색감과 다시점을 사용한 세잔의 사과는 플라스틱 사과처럼 변하지 않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준다. 모리스 드니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세상에 유명한 사과가 셋 있는데 그것은 이브의 사과와 뉴턴의 사과 그리고 세잔의 사과이다. 평범한 사과는 먹고 싶은데 세잔의 사과는 마음에 말을 건넨다.


고흐와 고갱 그리고 세잔으로 이어지는 후기 인상파의 시대를 지나면서 근대 회화는 야수파와 입체파로 나아간다. 그런데 두 사조 모두 세잔의 영향을 받았다. 입체파의 대표적인 화가 피카소는 세잔의 다시점의 구도에서 영감을 받아 사물을 한 가지 시점이 아닌 여러 가지 시점으로 보는 입체적 기법을 만들었다. 그는 컵을 그리면서 위에서 본 장면과 앞에서 본 장면을 한 화면에 동시에 담았다.



피카소와는 달리 야수파의 거장 마티스는 세잔으로부터 색채의 해체를 배웠다. 과일에서 여러 가지 색을 사용한 세잔의 작품에 영감을 받은 마티스는 색을 대상과 분리하여 색 자체로 자신의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의 작품 <자화상>을 보면 얼굴색이 자연색이 아니고 청색이 주를 이루며 퍼져 있다. 이후 마티스는 고흐에게 영향을 받아 원색적인 색채를 거침없이 화폭에 담아내었다. 이를 본 사람들이 마치 포악한 짐승과 같다고 이야기하며 마티스를 야수파라 불렀다.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세잔의 아틀리에에서 나와 20분 정도 언덕을 오르면 그가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린 페인터스 파크가 나온다.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채 한결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생트 빅투아르 산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을 그리고 싶은 세잔에게 최고의 대상이었다. 이를 위해 세잔은 먼저 기분에 따라 산을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대작인 <생 빅투아르 산>을 완성하였다.



초록색과 노란색으로 이루어진 작품 속 들판은 파란색과 분홍색이 어우러진 산 쪽으로 펼쳐진다. 산기슭에서 세잔이 있는 곳까지 몇몇 들판이 있는 정도 거리밖에 안되어 보이지만 실제로 생트 빅 아투르 산은 13km 나 떨어진 곳에 있다. 세잔은 이처럼 정확한 원근법에 의거해 산을 그리지 않고 시야를 단축해 눈과 마음으로 느낀 당당한 산의 풍채를 표현하고 있다. 그는 산의 탄탄한 견고함을 표현하기 위해 택한 묽은 푸른색과 하얀색은 부드러우며 이는 따스한 들판의 색과 대비를 이룬다. 이 작품을 완성하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거에 누구도 보지 않았던 방식으로
자연을 보아야 한다.



세잔이 말한 누구도 보지 않았던 방식은 풍경에서 세세한 부분이 아닌 형태를 말한다. 세잔은 모든 대상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생략해 표현하기 시작했다. 작품에서 들판은 초록색 직사각형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가옥은 갈색 직육면체 그리고 거대한 암석은 구의 형태를 띠고 있다. 영원히 변하지 얺는 사물의 형태를 표현한 그의 작품은 후에 모든 사물을 단순한 형태로 표현한 미니멀리즘과 현대다자인에 까지 영향을 주었다.



세잔은 고정된 시각이나 기존 지식 등 어떤 것에도 기대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현대 회화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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