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향락의 거리
풍차가 많아 파리 전역에 밀가루를 공급했던 몽마르트에 19세기 말이 되자 저렴한 임대료에 그림 같은 풍경으로 수많은 예술가들이 몰려들었다. 그로 인해 이곳은 활기찬 술집과 소란스러운 카바레 그리고 사창가로 번성했다. 몽마르트의 예술적 전성기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로 당시 피카소를 비롯한 예술가들이 이곳에 살며 많은 명작을 남겼다.
몽마르트에 있는 아베스 지하철역을 나와 역 입구를 돌아보면 매혹적인 곡선에 초록색 철제 구조물이 보인다. 19세기 말 식민지에서 쏟아져 들어오던 많은 물자로 풍요로운 시대에 만들어진 지하철역사는 아르누보 양식으로 우아하게 장식되어 있다.
역 앞에 있는 아베스 광장은 수녀들의 광장이라는 뜻으로 루이 16세가 몽마르트 정상에 수녀원을 건설하였으나 언덕을 오르내리는데 지친 수녀들은 이 광장으로 수녀원을 옮겨와 그때부터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 세계 각국의 말로 당신을 사랑한다는 단어를 적은 사랑의 벽화가 있어 많은 여행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아베스 광장에서 몽마르트 사원 쪽으로 걸어가면 이븐 르 탁 거리가 나온다.
이곳은 프랑스의 초대 주교였던 생드니가 순교당한 곳으로 원래 그는 몽마르트 꼭대기에 있는 마르스 신전에서 처형될 예정이었지만 언덕을 오르다 지친 로마 병사들이 이곳에서 그의 목을 베었다. 목이 잘린 생드니는 그의 머리를 들고 6km 더 걸어가 멈추었으며 그가 멈춘 곳에 현재 생드니 예배당이 있다.
이븐 르 탁 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두 블록 내려가면 차가 다니는 로쉬 슈아르 거리가 나온다.
로쉬 슈아르 거리 84번지에는 검은 고양이라는 뜻을 가진 카바레 르 샤 우아르가 있다. 1881년에 문을 연 카바레는 피카소를 비롯하여 당시 부르주아들에게 짜릿한 일탈을 제공했으며 1897년 이곳이 문을 닫자 같은 이름의 아류 카바레가 파리 전역에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다고 한다.
로쉬 슈아르 거리 72번지에 있는 엘리제 몽나르트 극장 역시 화려한 아르누보 양식과 획기적인 쇼로 당시 경쟁상대가 없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물랭루주의 전설의 스타댄스였던 루이스 웨버가 라 글뤼라는 이름으로 이곳에서 데뷔하였다.
극장 옆으로 보이는 거리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파란 하늘 아래 하얀 사원이 서 있는 몽마르트 언덕이 보인다.
성당으로 오르는 계단이 부담된다면 계단 오른쪽에 있는 케이블 열차 쿠니풀라를 이용하자.
푸니쿨라를 타고 언덕을 오르면 초록이 무성한 파리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여유를 가지고 계단에 앉아 눈 앞에 펼쳐진 파리의 모습을 즐기자. 충분한 휴식을 즐겼다면 바로 뒤에 보이는 성당으로 이동하자.
1919년에 완성한 사크레쾨르 성당은 아름답기보다는 장엄하고 강렬하다. 1870년에 프로이센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프랑스는 회계하는 심정으로 이 성당을 건설하였다.
성당의 정문 위에는 두 개의 동상이 서 있는데 왼쪽은 중세 프랑스의 전성기를 이끌며 금욕과 청빈 그리고 자선이라는 기독교적 이상을 직접 실행했던 루이 9세이며 오른쪽은 프랑스의 영웅 잔다르크이다. 성당 내부에 들어가면 돔 아래에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자이크가 보이는데 그 크기가 세계 최고라고 한다.
성당을 나와 오른쪽으로 10분을 걸으면 몽마르트 언덕에서 가장 유명한 테르트르 광장이 나타난다.
14세기에 만들어진 몽마르트의 심장인 테르트르 광장은 19세기 말에 가장 큰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거장들이 떠난 후 명성이 많이 시들해졌으며 오늘날 많은 무명 화가들이 광장 구석에서 비슷한 풍경화나 초상화로 영업을 하고 있다. 또한 광장을 둘러싼 수많은 카페와 레스토랑은 맛보다는 분위기를 팔고 있는데 그중 가장 오래된 곳은 1793년 여주인의 이름을 따서 문을 연 라 메르 카트린 레스토랑이다.
화가의 광장을 벗어나 가파른 층계를 올라가서 우회전하면 11번지에 살바도르 달리의 미술관이 나온다.
초현실주의 화가인 달리 미술관을 입장하면 녹아내리고 있는 청동 시계가 나뭇가지에 걸린 작품과 심장 모양의 구멍에서 유니콘 한 마리가 피를 뽑아내고 있는 모습을 담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달리 미술관을 나와 다시 테르트르 광장으로 가서 맞은편으로 내려가면 코르트 거리 12번지에 몽마르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몽마르트 박물관이 나온다.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건물은 원래 17세기 배우 클로드 로즈의 소유였다. 그는 <상상병 환자>를 연기하던 중 무대에서 숨진 극작가이자 배우인 물리에르의 후임으로 그 역시 몰리에르와 같은 역할을 하다가 같은 무대에서 숨졌다.
19세기 말에 르느아르를 비롯하여 수많은 화가들이 이 건물을 임대해 아틀리에로 사용하였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화가가 모델에서 인상파 화가로 변신하여 수많은 화가들과 깊은 교류를 한 수잔 발라동과 그녀의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이다. 현재 위틀리로가 그린 작품에 나오는 작은 분홍색 레스토랑 <라 메종 로즈>는 몽마르트의 최고 인기 명소가 되었다. 박물관을 나와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건너편에 라 메종 로즈 레스토랑이 보인다.
분홍색 레스토랑 위로 몽마르트 포도밭이 있다.
현재 파리에 남아있는 포도밭 두 곳 중에서 하나인 이곳은 1930년대 예술가 프란시스코 폴보의 주장으로 만들어졌으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와인 <클로 몽마르트>는 매년 700병정도로 한정되어 있을 만큼 귀하지만 와인 애호가들은 신맛이 강한 이 거친 와인에 시큰둥한 반응이다. 매년 10월에 포도 경작을 축하하는 축제가 열리면 이 일대는 발 디딜 틈 없이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포도밭에서 두 블록 내려오면 19세기 말에 문을 연 보헤미안 카페 <라팽 아질>이 나온다
피카소를 비롯하여 모딜리아니, 위트릴로, 아폴리네르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즐겨 찾았던 이 카페의 분홍색 벽에는 캐리커처 화가인 앙드레 질이 그린 <소스 냄비를 뛰어오르는 토끼>가 그려져 있다. <질의 토끼>라는 뜻의 라팽 아질에는 지금도 저녁이면 샹송을 불러주는 공연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찬다.
라팽 아질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풍차가 보이는 물랭 드 라 갈레트가 나온다.
19세기 몽마르트에는 수많은 풍차가 있었는데 현재는 두 개만 남아 있다. 79번지에 있는 풍차 <물랭 드 라 갈레트>는 고흐와 피카소 등 수많은 거장들이 그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특히 풍차 일대를 연회장으로 탈바꿈시킨 르누아르의 작품 < 물 랭 드 라 칼레트의 무도회>에서 르느와르는 움직이는 사람들 위에 떨어지는 햇살과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 드는 빛의 순간적인 변화와 움직임을 통해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풍차가 있는 곳에서 한 블록 올라가면 빨래선으로 유명한 바토 라무 아르가 나온다.
원래 피아노 공장이었던 이곳은 19세기 말부터 예술가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이곳에 살았던 시인이자 화가인 막스 자코브가 집 모양이 당시 센강에 있던 빨래 보트와 닮아서 빨래선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었다. 이 곳에 작업실을 차렸던 예술가 중에 대표적인 화가가 피카소로 그는 당시 한 여인을 두고 자살한 친구의 소식을 듣고 우울한 마음으로 청색 작품을 많이 그렸는데 이 시기를 청색시대라고 부른다. 1970년 이 건물은 완전히 전소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복구되었으며 현재 전도유망한 화가들의 작업실로 사용된다.
빨래선에서 10분 정도 걸어 내려오면 반 고흐가 동생인 테오와 함께 지냈던 집이 나온다.
1886년 벨기에 앤트워프로 공부를 하러 갔던 고흐가 파리로 생각보다 일찍 돌아오자 테오 혼자 살던 집이 너무 좁아 결국 좀 더 넓은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몽마르트의 르삑가 54번지에 있는 이 집을 순례하기 위해 오늘도 고흐를 사랑하는 수많은 여행자들의 발길이 멈추지 않는다.
이제 차가 다니는 큰길로 내려가 10분 정도 걸어가면 오늘의 마지막 방문지인 물랭루즈가 나온다.
빨간 풍차라는 뜻의 물랭루즈는 에펠탑이 세워지던 해에 개장한 카바레로 당시 파리 사교계의 중심으로 돈과 권력이 모여들던 곳이었다. 이 곳을 찾는 여자들은 기품 있는 모자와 화려한 옷으로 한껏 멋을 부려 치장하였고 남자들은 멋진 중절모에 단정한 옷차림으로 사치를 보여주었다. 물랭루즈가 오픈한 지 2년 후인 1891년 흥행사 지드렐은 새로운 공연을 위해 로트렉에게 포스트를 부탁하였는데 그때 완성한 작품이 <물랭루즈의 춤>이다.
맨 위에 물랭루즈라는 글씨가 세 번 적혀 있는 작품에서 빨간 스타킹을 신고 춤을 추는 여인이 물행루즈의 최고 스타 라 굴뤼이다. 라 굴뤼는 먹보라는 뜻으로 손님이 주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생긴 별명이다. 댄스로 전성기를 보낸 그녀는 말년에 사창가의 청소부로 외롭게 죽었다. 작품 맨 앞에 보이는 실루엣의 남자는 물랭루즈의 댄스 스타 발라탱으로 그가 얼마나 유연하게 춤을 추었든지 <뼈 없는 발라탱>이라고 사람들은 불렀다. 화면 곳곳에 보이는 노란 덩어리는 가스등으로 이곳에 오면 밤새 놀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어려서 유전병으로 불구가 되어 불운하고 짧은 삶을 살았던 로트렉은 물랭루즈에서 일하는 여인들의 힘든 삶을 진심으로 이해했다. 그녀들의 삶이 자신의 삶과 닮아 있으며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소외와 아픔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삶은 충분히 슬프다.
그래서 사랑스럽고 화려하게 그려야 한다.
이것이 빨간색과 파란색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