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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 여행

욕망해도 괜찮아

by 손봉기

파리 생 라자르 역에서 기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루앙은 노르망디 공국의 수도로 모네의 연작시리즈 <루앙 성당>으로 유명하다. 모네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빛에 의해 달라지는 성당의 모습을 그리며 인상파의 시작을 알렸다. 루앙 역에서 내려 잔다르크 거리를 따라 내려가면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루앙 대성당이 나온다.



1145년에 건설된 루앙 성당은 1200년에 큰 화재를 당해 많은 부분 소실되었으나 당시 영국의 왕이었던 기부로 재건되었다. 시간이 흘러 2차 세계대전 때 또다시 파괴되었으나 전후에 복구하여 지금에 이른다.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대주교가 머무르고 있는 루앙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합창대 쪽에는 911년에 사망한 노르망디 첫 공작인 롤롱 공작의 묘비와 잉글랜드의 왕이자 노르망디 공작이기도 한 사자왕 리처드 1세의 심장이 보존되어 있다.



플로베르의 소설 < 마담 보바리 >를 읽은 독자라면 소설 속 루앙 성당에 대한 묘사를 잊지 못한다. 소설에서 레옹은 난생처음 엠마를 위하여 제비꽃 한 다발을 사들고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엠마를 기다리면서 성스러운 대성당 내부를 거대한 규방으로 탈바꿈시켜 놓는다.


바깥의 밝은 햇빛이 열어놓은 세 개의 대문을 통하여 세 줄기의 거대한 광선으로 빛나고 있는 성당은 거대한 규방 같은 분위기로 그녀를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다. 천장의 궁륭들은 어둠 속에서 그녀의 사랑의 고백을 받아들이기 위해 몸을 굽히고 그림 색유리는 그녀의 얼굴을 물들이기 위해 빛을 더하고 향로는 그녀가 향의 내음 속에서 천사처럼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 타오른다. 이제 잠시 후면 그녀가 온다.


엠마가 도착하고 성당지기가 두 사람을 지겹게 쫓아다니며 성당의 유물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자 사랑의 열병에 들뜬 레옹은 엠마와 함께 성당에서 도망쳐 나오며 급히 마차를 부른다. 그리고 마부에게 마차를 멈추지 말고 달리라고 말한다. 평범하면서 평화로운 일상을 내팽개치고 애달프지만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커플은 마차 안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달리는 마차와 닫힌 문 그리고 욕망에 타오르는 두 남녀의 모습은 당시 파리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파리에서 보바리 마차란 것이 대유행했다고 한다.


루앙 성당을 나오면 맞은편에 루앙 관광안내소가 나온다.



16세기 초에 지어진 이 건물의 2층에 클로드 모네가 하숙을 하며 머무른 곳으로 현재 <루앙 대성당> 연작의 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성당을 뒤로하고 큰 시계의 거리를 지나면 시계탑 주변으로 대들보와 기둥을 밖으로 드러내고 그 틈을 흙벽과 벽돌로 메워 지어진 꼴롱바쥬 양식의 전통가옥이 늘어서 있다.



전통가옥이 즐비한 곳에 서 있는 루앙 시계탑은 화려한 고딕 양식의 종루와 이상적인 르네상스 양식의 금빛 시계판이 합쳐져 독특한 전경을 선사한다. 1389년에 만들어진 시계를 자세히 보면 별이 빛나는 파란색 배경에 시간을 나타내는 24개의 광선을 가진 황금빛 태양이 중앙에 있으며 시계 상단에 보이는 은색의 달은 초생달에서 보름달로 29일만에 한 바퀴 회전한다. 또한 시계 하단부 개구부에는 요일마다 각 요일에 대한 우화 주제를 보여준다.


화려한 시계탑과 고색창연한 목조 가옥을 지나 계속 전진하면 잔다르크가 화형 당한 옛 시장터에 현대식의 잔다르크 성당과 십자가가 보인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을 상징하는 지붕을 가지고 있는 성당으로 입장하면 중앙제단의 벽면을 가득 채운 화려하면서 모던한 스탠드 글라스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프랑스 북동부 지방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난 잔다르크는 프랑스를 구하라는 천사의 계시를 받은 후 백년전쟁에 참가하여 눈부신 활약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프랑스군을 승리로 이끌었다. 당시 그녀가 가져다준 승리에 힘을 얻은 샤를 7세는 무사히 대관식을 치를 수 있었다.


1430년 5월경 부르고뉴 군대에 사로잡힌 잔다르크는 영국에 넘겨졌으며 영국의 종교 재판에 의해 반역과 이단 혐의로 19세의 나이에 화형에 처해진다. 그로부터 25년 후에 교황 갈리스토 3세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종교재판소가 잔 다르크에 대한 심사를 재개하여 그녀에게 씌워졌던 모든 혐의에 대해서 무죄판결과 함께 그녀를 성인으로 추대하였으며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이곳에 커다란 십자가와 성당을 세웠다.


루앙에서 동쪽으로 차로 30분 정도 이동하면 마담 보바리의 무대가 되었던 용필 라베이 마을이 나온다.



마을 입구에 있는 보바리 박물관에 입장하면 마담 보바리의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묘사한 자동인형들을 감상할 수 있다. 사실적이며 생생한 묘사와 여성의 욕망이라는 주제로 당시 엄청난 파문을 주었던 마담 보바의 줄거리는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샤를르 보바리는 당시 정규 의사 면허증 없이 의업에 종사하는 보건관으로 돈 많은 첫 아내와 사별하고 엠마를 새 아내로 맞이한다. 미모의 소유자이자 상류 부르주아의 교육을 받은 엠마는 늘 낭만과 사랑을 꿈꾸는 여인이었다. 결혼 후 샤를르의 평범함에 실망한 엠마는 법학도 레옹을 알게 되어 서로 관계를 가지지만 레옹이 법률을 공부하러 파리로 떠나 버리자 엠마는 외로움에 빠진다.

고독과 슬픔에 빠진 부인 앞에 레옹 대신 호색가인 시골 신사 로돌프가 나타나자 순진한 엠마는 로돌프와 곧 사랑에 빠지며 점점 타락한다. 하지만 로돌프에게 버림받은 엠마는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삶의 의욕을 잃었는데
그때 루앙 극장에서 첫사랑이었던 레옹을 만난다. 사랑에 눈이 먼 보바리 부인은 레옹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온갖 사치를 부리다가 큰 빚을 지게 되고 그로 인해 결국 음독자살한다.


박물관을 나와 마을로 들어서면 엠마가 독약을 먹은 오메 약국과 엠마를 죽음으로 몰고 간 공증인 기용맹의 사무실 그리고 보바리의 집 등 실제 무대가 되었던 곳을 방문한다.



환상과 욕망을 쫓았던 보바리 부인의 체취가 남아 있는 마을을 산책하다 보면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때로는 생기와 활력을 주는 욕망을 무조건 억압하기보다는 인정하고 다독이며 살아야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플로베르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들려온다.



때로는 욕망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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