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에서 개선문까지
루브르 궁전은 12세기경 프랑스의 왕 필립 오귀스트에 의해 처음 요새로 축조되었다가 16세기 루브르 왕궁이 되었으며 1793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자 박물관으로 새롭게 탄생하여 시민의 품 안에 안겼다. 박물관 입구에 보이는 유리 피라미드는 1989년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하여 완성된 것으로 박물관이 더 이상 유물의 무덤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창이라는 의미로 세워졌다.
유리 피라미드 앞에 보이는 카루젤 개선문은 튈르리 정원으로 가는 입구처럼 서 있다.
1806년 나폴레옹의 승리를 기념하여 건설된 카루젤 개선문은 한때 베니스의 산 마르코 대성당에서 가져온 사두마차 청동상이 개선문의 정상을 장식하기도 하였으나 전쟁이 끝난 후 반환되어 모조품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카루젤 개선문에서 샹젤리제 거리의 개선문 그리고 신도시 라데팡스의 개선문까지 이어진 거대한 직선 축은 파리가 얼마나 이성에 기초한 계획도시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카루젤 개선문 뒤로 이어진 튈르리 정원으로 입장하자.
튈르리 정원은 루브르 박물관과 콩코드 광장 사이에 있는 정원으로 가장 프랑스적인 정원으로 손꼽힌다. 1564년 앙리 2세의 부인이었던 카트린 드 메디치에 의해 정원은 궁전과 함께 만들어졌으나 정작 그녀는 점성가의 반대로 이곳에서 하루도 살지 못했다. 정원이 완성되자 정원은 귀족들의 사교장이 되었다. 귀족들은 화려한 옷과 새 마차를 자랑하기 위해 정원을 어슬렁거렸으며 1662년 튈르리 궁전에 머물렀던 태양왕 루이 14세는 이곳에서 첫 왕자의 탄생을 축하하며 로마 황제처럼 차려입고 화려한 마차를 타고 2만 명의 관중 앞을 지나갔다. 궁전은 1871년 파리 코뮌 기간 중 불태워져 사라졌지만 정원은 시민 공원으로 살아남아 과거의 영광을 보여준다.
튈르리 공원 끝에 오랑쥬리 미술관이 있다. 오랑쥬리 미술관에는 세잔과 마티스 그리고 르느와르 등 인상주의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단연 여행자의 눈길을 끄는 작품은 모네의 <수련>이다.
두 개의 큰 타원형으로 이루어진 1층 전시실로 입장하면 모든 전시실 벽이 수련으로 꽉 차 있다. 하지만 수련의 형체는 보이지 않고 해와 물이 만나 펼치는 빛의 형연만이 넘친다. 모네는 수련을 통해 주제와 형식에서 벗어나는 추상화의 선구자가 됐다.
쌀 한알도 탄생하려면 햇빛과 바람 그리고 비가 필요하듯이 한 송이 수련이 탄생하려면 햇살이 물을 만나야하고 물이 바람을 만나야 그 생명이 탄생한다. 한 송이 수련 속에 우주가 있으며 우주는 한 송이 수련이 되었다.
튈르리 정원을 나서면 콩코드 광장이 나온다.
파리에서 가장 크고 역사적인 콩코드 광장은 루이 15세의 명령으로 건축되어 루이 15세 광장이라 불렸지만 프랑스혁명 당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롯한 1,000여 명이 사람들이 이곳의 단두대에서 처형당하면서 혁명광장이라고 불렸다. 프랑스혁명이 끝나고 화합이라는 의미의 콩코드 광장이라고 불려지는 이곳에 이집트에서 기증받은 오벨리스크가 서 있어 파란만장한 프랑스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콩코드 광장에서 오른쪽으로 보면 마들렌 사원이 보인다.
프랑스어로 막달라 마리아를 뜻하는 마들렌 사원은 현재 파리 사람들의 결혼식 또는 장례식장으로 많이 사용된다. 나폴레옹이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 영감을 받아 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이 곳은 52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나폴레옹이 물러난 후 루이 18세는 이 곳을 막달라 마리아에게 바치는 곳으로 바꾸면서 성당이 되었다. 성당임에도 십자가가 없는 사원 입구 삼각 지붕에는 최후의 심판 때의 성녀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성당 안으로 입장하면 중앙에 성녀 막달라 마리아가 승천하는 조각상이 있으며 그 뒤로 천장에 나폴레옹을 중심으로 잔 다르크와 미켈란젤로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황제 등의 위인들이 둘러싸고 있는 그림이 보인다.
마들렌 사원을 나와 젊은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여주인공 질베르트의 모델이 되었던 마리 드 베르나 다카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샹젤리제 정원을 지나면 엘리제 궁전이 나온다.
파리에서 가장 격식이 높은 엘리제 궁전은 루이 15세가 애첩이었던 퐁파두르 부인에게 선물한 궁전으로 궁전이 완성되자 그녀를 혐오하던 자들은 왕의 매춘부가 사는 곳이라고 비난하였다. 이후 나폴레옹은 엘리제 궁전을 정부 공식 관저로서 지정하였으며 현재 프랑스 대통령의 공식 관저가 되었다. 왕실의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한 궁정과 정원은 첫 번째 일요일에만 개방된다.
궁전을 나와 대로로 나오면 샹젤리제 거리가 펼쳐진다.
콩코르드 광장에서 개선문까지 2km 길이의 샹젤리제 거리는 파리의 모든 행렬과 축제의 장소이다. 나폴레옹의 유해 반환을 기념하는 행진도 이곳에서 열렸으며 1,2차 세계대전의 승전 퍼레이드도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현재 7월 14일 프랑스혁명 기념일을 비롯하여 큰 행사 역시 이곳에서 성대하게 치뤄진다.
샹젤리제 거리를 걷다 보면 루이뷔통 본사는 물론 유일하게 살아남은 파이바 대 저택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풍요로운 앨 포크 시대에 세워진 카페 라뒤레에서 마카롱을 맛볼 수 있으며 파란색 천막의 식당 레옹에서 화이트 와인으로 맛을 낸 홍합요리를 바케트와 곁들여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샹젤리제 거리에서 최고의 여행지는 단연 개선문이다. 샹젤리제 거리 끝으로 가면 개선문으로 갈 수 있는 전용 지하도가 나오는데 이곳을 건너면 개선문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나폴레옹이 1805년 오스테를리츠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개선문 건설을 명령했지만 나폴레옹이 사망한 지 15년이 지나서야 개선문이 완성되었다. 1836년에 완성된 개선문 아래에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죽은 이들을 기리는 무명용사들의 무덤과 프랑스가 거둔 승전보 그리고 당시 전쟁에 참가하여 사망한 지휘관들의 이름이 양각되어있다. 또한 개선문의 네 기둥에는 수많은 조각상들이 조각되어 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792 프랑스 혁명군의 출발>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 애국가를 뜻하는 말과
동일한 <라 마르세예즈>라고 불리기도 한다.
개선문 위로 올라가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한눈에 펼쳐지며 승리의 쾌감을 맛볼 수 있다. 별 모양으로 펼쳐진 장엄하고 아름다운 파리 시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운 프랑스 사람들의 애국가 <라 마르세예즈>가 들려온다.
조국을 향한 성스러운 사랑이여
복수를 향한 우리의 팔을 들고 전진하게 하라.
자유여 고귀한 자유여
우리는 승리의 깃발 아래서
그 힘찬 함성을 앞세워 끝까지 싸우리라.
죽어가는 적들이
우리의 승리와 우리의 영광을 지켜볼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