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파리 중세 산책

팡테옹에서 노트르담까지

by 손봉기

어린이가 시험 삼아 각기 다른 양식의 건축 소재를 하나하나 붙인 것같이 독특한 모양의 생테티엔 뒤몽 성당은 파리의 수호 성녀인 생트 주느비에브에게 바쳐진 성당으로 안으로 들어가면 1541년에 조각된 목재 설교단이 아름답다.



그러나 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성당의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보이는 측면 계단이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에서 길을 잃은 주인공은 이 계단에 앉아 있는다. 이때 밤 12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갑자기 자동차 한 대가 등장하고 주인공이 홀린 듯 차에 오르자 과거로 돌아가 시간여행을 한다. 우리도 주인공처럼 파리의 중세시대로 돌아가 찬란한 파리의 중세 문명을 감상하는 여행을 시작한다.


파리 중세 여행의 첫 시작은 바로 앞에 보이는 팡테옹부터이다.



팡테옹이 자리 잡고 있는 생트 주느비에브 언덕은 고대 로마시대부터 파리의 중심지였다. 팡테옹은 18세기 중반 천연두에 걸린 루이 15세가 병에서 완치되자 감사의 표시로 파리의 수호성인 생트 주느바에브에게 바쳐진 성당이다. 하지만 1789년 재건 후 수많은 영웅들의 마지막 안식처로 사용되고 있다. 팡테옹의 입구의 삼각형 부조 아래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조국이 위대한 사람들에게 사의를 표하다.




로마의 판테온에서 영감을 받아 지어진 팡테옹의 실내로 입장하면 거대한 중앙홀을 중심으로 소름 돋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들이 사방 벽들을 장식하고 있다. 입구 왼쪽에 잔다르크가 화형 당하는 모습이 보이는가 하면 반대편에 생드니가 창백한 모습으로 자신의 잘린 목을 집어 드는 장면도 보인다. 중앙홀 한가운데 있는 돔 지붕에 매달린 푸코의 진자는 1851년 물리학자 레옹 푸코가 지구의 자전을 증명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중앙홀에서 음침한 지하로 내려가면 방마다 무덤들이 있다. 그중에서 에밀 졸라와 장 자크 루소 그리고 빅토르 위고의 무덤이 많은 방문자의 발길로 분주하다. 팡테옹의 하이라이트는 돔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이다. 돔에서 바라보는 현기증 나는 실내와 숨막히게 아름다운 파리의 풍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황홀함을 느끼게 한다.


팡테옹을 나와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소르본 대학으로 이동한다.



1257년 루이 9세의 고해 신부였던 로베르 드 소르본 신부가 가난한 신학생을 위해 설립한 소르몬 대학은 현재 프랑스를 대표하는 국립대학이 되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이탈리아의 볼로냐와 영국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와 함깨 서구권 최초의 대학으로 출발한 소르본 대학의 안뜰에는 이곳 출신으로 17세기에 대법관이자 추기경을 지냈던 리슐리외가 잠들어 있다. 또한 대학에 붙어 있는 소르본 성당 앞 광장에는 왼손으로 얼굴을 괸 채 생각에 빠져 있는 빅토르 위고의 동상도 보인다.


소르본 대학에서 조금 내려오면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는 고대 로마 시대의 목욕장이 나온다.



13세기 초 이곳을 부르고뉴 지방의 클뤼니 수도원장이 신학교와 수도원을 세우기 위해 구입하였다. 이후 소유주가 계속 바뀌다가 1833년 알렉상드르 뒤 소메라 르가 구입하여 살았다. 그는 당시 막대한 중세 및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품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날 때 이 모두를 국가에 기증하여 오늘날 이곳에 박물관이 세워졌다.



로마시대의 목욕탕 유적의 한편에 있는 클뤼니 중세 박물관으로 입장하면 희귀한 성경의 필사본과 중세 무기와 갑옷 그리고 금과 상아로 제작된 중세시대의 보물들이 여행자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박물관에서 여행자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는 것은 15세기 말 제작된 태피스트리 연작인 <여인과 유니콘>이다.



원형으로 된 제13전시실에 전시된 <여인과 유니콘>은 네덜란드 남부에서 제작된 장식용 카펫으로 단것을 잡는 미각과 오르간을 연주하는 청각 그리고 거울을 든 시각과 꽃을 든 후각 마지막으로 유니콘이 깃발을 들고 있는 가운데 새를 잡고 있는 촉각 등 인간의 오감을 환상적이며 고풍스러운 장식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5개의 작품을 마주 보며 있는 마자막 6번째 작품에는 <나의 유일한 욕망>이라는 문구를 천막 위에 표시하며 일시적 쾌락이 아닌 순수한 사랑만이 가장 높은 수준의 감각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클뤼니 중세 박물관을 나와 두 블록 내려오면 생미셀 광장이 나온다.



1257년에 설립된 소르본 대학을 시작으로 15개 대학이 생미셀 광장 근처에 세워져 프랑스 대혁명 때까지 라틴어로 수업을 하였는데 이를 두고 라틴어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뜻의 카르티에 라탱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카르티에 라탱의 중심에 있는 생 미셀 광장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사자의 머리에 양의 몸통과 용의 꼬리를 가진 전설의 괴물을 물리치는 대 천사장 미카엘의 조각상이다.


생미셀 광장에서 센 강을 바라보면 센 강 위로 노트르담 성당이 우뚝 서 있다.



1163년에 시작하여 1330년에 완성된 노트르담 대성당은 고딕 건축양식의 결정판으로 빅토르 위고는 이 성당을 돌에 새긴 위대한 교황곡이라고 격찬하였다.


소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기독교가 로마에 의해 국교로 지정되면서 초기 성당은 로마 바실리카 건물로 대체되었다. 이후 성당은 순례자를 위해 웅장한 로마식 아치와 두터운 벽 그리고 작은 창문으로 이루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13세기에 접어들자 막강한 권력을 확득한 교황과 국왕은 그들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더욱 높고 화려한 고딕식 성당을 짓기 시작했다. 높고 화려한 고딕식 성당은 뾰족한 아치와 대형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하였으며 이를 위해 벽을 지지하는 부벽과 기둥을 설치하였다. 세느강변에서 노트르담 성당을 보면 넓은 창문과 성당 벽을 지지하는 부벽과 이를 연결하는 기둥을 볼 수 있다.



노트르담 성당안으로 입장하면 높고 깊은 실내공간이 마치 천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듯 사람의 발걸음을 성당 안으로 끌어당긴다. 향 냄새와 더불어 묵직한 돌기둥들이 중세의 경건함을 더하는가운데 중앙 제단으로 나아가면 깊은 울림을 주는 오르간 소리와 함께 성경 속 인물들로 가득 찬 스테인드글라스가 성당 안을 다양한 빛으로 채운다.


성당 안의 다채로운 빛은 깊고 높은 천장으로 뻗어 십자가 모양을 한 천장의 뼈대들을 반짝거리게 한다. 물질적이며 육체를 상징하는 뼈대들은 영적이며 신을 상징하는 빛과 어우러져 인간과 신의 조화를 보여준다. 지상에 재현한 천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인간의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르네상스 예술이 지상 최고의 세계를 보여준다면 보이지 않는 신의 세계를 추구한 중세 예술은 지상에 재현한 천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노트르담 성당을 나와서 광장을 가로질러 센 강으로 가면 중세시대 왕궁이 펼쳐진다. 파리 최초의 왕궁으로 사용된 궁전은 현재 콩시에르주리와 정의의 궁전 그리고 생트 샤펠 성당으로 알려져 있다.



관리자란 뜻의 콩시에르주리는 과거 왕궁을 관리하던 수천 명의 사람들이 생활하였던 곳으로 14세기 말 루브르로 궁전이 이전하면서 이후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중세부터 이곳은 악명 높은 장소로 프랑스혁명 당시 단두대의 대기실로 사용되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죄수번호 280의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콩시에르주리의 일부 공간은 현재 개방되었는데 그중 웅장한 무사 홀은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거대한 부엌의 아궁이는 황소 한 마리를 통째로 구울 수 있을 만큼 크며 고문실 역시 복원되어 방문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


콩시에주리와 연경된 정의의 궁전은 로마시대부터 세워졌던 본궁으로 14세기부터 프랑스혁명 때까지 프랑스 의회가 자리했으며 현재 프랑스 최고법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의의 궁전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생 루이 홀과 대연회장이다. 생 루이 홀은 처형장으로 이송되는 마차를 타기 위해 죄수들이 대기하던 곳으로 <운이 다한 자의 홀>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청색과 금색으로 치장한 연회장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롯한 수 천명이 사형선고를 받았던 재판장으로 사용되었다.


마지막으로 왕실예배당으로 사용했던 생트 샤펠 성당은 성스러운 성당이라는 뜻으로 프랑스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루이 9세가 콘스탄티노플 황제로부터 선물 받은 예수님의 가시 면류관을 보관하기 위해 건설한 곳이다.



1246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248년에 완공된 성당의 꼭대기에는 가시면류관을 상징하듯 뾰족한 가시로 장식한 첨탑이 위치하고 있다. 성당으로 입장하여 나선형 계단을 따라 2층 예배당에 오르면 전면이 모두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여행자의 넋을 잃게 한다.


성서에 나오는 1135개의 장면을 묘사한 스테인드글라스는 색채의 찬란함은 물론 성경속 이야기를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중 1485년 샤를르 8세 국왕이 기증한 장미 창에는 요한 묵시록의 내용을 파노라마처럼 묘사하여 많은 방문자로 하여금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파리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