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고귀함
늪이라는 의미를 지닌 마레지구는 센 강 변의 늪지대에 형성된 곳으로 17세기에 왕족과 귀족의 대저택들이 모여 있었다. 프랑스혁명으로 대부분의 저택들이 파괴되었으나 1960년대에 일부를 복원하여 프랑스의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현재 사용하고 있다.
복원된 대저택에 박물관이 들어서고 세련된 카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트렌드 한 패션 가게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마레지구는 오늘날 파리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다.
마레지구 여행의 시작은 퐁피두 센터부터이다.
1977년에 개관한 퐁피두 센터는 건물의 뼈대 역할을 하는 내부의 철근 구조물을 외부에 보이게 하는 혁신적인 방법으로 완공되었다.
건물 외부의 붉은색 구조물은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이며 녹색 파이프는 수도관, 노란색 파이프는 전기배선관이다. 또한 흰색 파이프는 환기관으로 내부의 철근 구조물을 다양한 색깔로 외부에 노출하면서 내부 전시공간은 단순하고 넓어졌으며 언제든 용도에 맞게 바꿀 수 있게 되었다. 혁명적인 퐁피두센터는 해마다 4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 파리의 명소가 되었다.
퐁피두 센터 5층에 위치한 현대 미술관으로 입장하면 프랑스혁명으로 왕이나 귀족을 위해 사용하였던 화려한 장식과 입체적인 원근법은 사라지고 새로운 주인인 시민의 자유와 평등에 맞는 단순하면서 평면적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단순하면서 평면적인 미니멀리즘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용품에 녹아들어 질리지 않으면서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되었다.
퐁피두 센터에서 나와 10분 거리에 있는 수비즈 저택으로 이동한다.
마레지구에서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수비즈 저택은 17세기 마레가 얼마나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주택들이 많았는지를 짐작하게 곳으로 현재 프랑스 역사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 들러 수비즈 가문의 왕자와 공주들이 머물던 로코코 양식의 우아한 방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자에게 만족감을 가져다준다.
콘서트장으로 사용되는 수비즈 저택의 응접실로 들어가면 시와 음악 그리고 정의, 역사 등을 상징하는 8개의 조각상이 기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2층으로 올라가면 옛 문서를 보관하는 상자들이 연도별로 정리되어 있다. 그중 앙리 4세가 가톨릭 외에 개신교의 종교적 자유를 인정한 낭트 칙령과 루이 14세와 16세를 비롯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지막 편지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수비즈 저택을 나오면서 뒤 마당에 숨겨진 정원으로 가면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도시 한 복판에서 잠시 고요하고 평화로운 왕가의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다음으로 피카소 미술관으로 이동하자.
1985년 마레 지구 중심의 살레 저택에 자리 잡은 피카소 미술관은 피카소가 사망한 후 막대한 상속세 대신 유족에게 기증받은 작품들을 전시한 곳이다. 세계에서 피카소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은 0층부터 3층까지 연대순으로 작품을 전시하여 관람자의 체계적이며 편리한 감상을 돕는다.
피카소의 우울한 청년시절을 보여주는 청색시대 작품인 <자화상>과 <셀레스탱> 놓치지 말고 감상하자.
청색시대의 자화상을 보면 블루톤을 배경으로 아무것도 담지 않은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나고 있다.
며칠 동안 못 먹은 듯 두 볼은 움푹 들어가 있으며 초라한 수염들은 얼굴의 윤곽을 뾰족하게 한다. 그리고 그의 입술은 굳게 닫혀있다.
원대한 꿈을 안고 파리에 온 젊은 피카소를 기다리는 것은 가난과 질병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의 자살이었다. 이러한 고통은 피카소에게 우울한 블루톤의 작품을 계속 그리게 하였으며 슬픔을 승화시킨 그의 청색시대 작품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고 있다.
피카소 박물관을 나오면 점심시간이다. 파리에 오면 누구나 맛보아야 할 크레페가 먹고 싶다면 피카소 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브레즈 카페를 추천한다.
프랑스 북서부에 있는 브르타뉴 출신의 셰프 베르트랑 라르셰는 1995년 일본 도쿄에 첫 크레페 집을 열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여세로 2003년에는 고향에, 2005년에는 이곳에 크레페 집을 오픈한다. 현재 일본에만 9개 지점을 두고 있는 베르트랑의 명성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식당에 들러 버섯과 치즈 그리고 달걀과 햄이 들어간 원조 브르타뉴 크레페를 입에 넣으면 고소하면서 달콤한 크레페의 맛에 여행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혼자가 아니라면 캐비어 향에 청어알이 톡톡 터지는 스페셜 크레페 범선이나 버터와 설탕으로 만든 캐러멜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조화로운 반테즈도 주문해서 맛보기를 추천한다.
달콤한 여유와 휴식을 취하였다면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코냑 박물관으로 이동한다.
도농 저택에 위치한 코냑 박물관은 라 사마리텐 백화점의 창립자인 에르네스트 코냑과 그의 아내 루이즈 제가 수집한 유화와 조각품을 비롯하여 보석류와 가구 등을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서 앙리 본이 그린 <미스터 호프>와 프랑수아 위베르의 <퐁파르드 부인의 초상화> 그리고 루이 레오폴드의 <달콤한 깨어남>을 감상하다 보면 18세기 우아한 로코코 양식의 파리 상류사회를 엿볼 수 있다.
바로 옆 건물인 카르나발레 박물관으로 이동한다.
1866년 파리 시의회에서 사들인 카르나발레 박물관으로 입장하면 안뜰 중앙에 태양왕 루이 14세의 대형 조각상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박물관으로 입장하면 루이 14세 시대를 풍미했던 사교계 여왕이었던 세비녜 후작부인이 꾸몄던 화려한 장식과 가구들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그녀가 딸에게 보낸 뛰어난 문체의 편지를 통해 17세기 절대왕정 시대의 마레 지구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제 마네지구의 중심인 보주 광장으로 이동한다.
보주 광장은 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으로 건물 등의 완벽한 대칭구조와 벽돌과 석판의 파스텔톤 색채로 많은 여행자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1612년 프랑스 왕 앙리 4세에 의해 완성된 보주 광장은 왕가의 광장이라 불렸으나 1799년 이곳을 양도받은 보주의 이름을 따서 이후 보주 광장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루이 13세의 기마상이 있는 보주 광장의 남쪽 건물 중앙에 왕의 저택이 있었으며 맞은편 북쪽 건물에 왕비의 저택이 있다. 이후 광장과 저택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리슐리외 추기경을 비롯하여 몰리에르와 빅토르 위고 등 많은 귀족과 문호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보주 광장 한편에 있는 빅토르 위고의 집으로 입장하자.
<레미제라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빅토르 위고는 1833년부터 16년간 이곳에서 살았다. 7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빅토르 위고의 집으로 들어가면 그가 쓰던 가구들과 중국 자기 그리고 그가 그린 데생 작품들을 통해 빅토르 위고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조명이 어둡게 내려앉은 침대 방에서 빅토르 위고가 사망할 당시 그가 누워 있었던 침대를 마주하다 보면 위대한 문호의 삶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여행자는 그의 소설속 문구를 그에게 바친다.
당신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신을 만나게 된다.
빅토르 위고의 집에서 내려다 보이는 보주 광장의 전망은 매우 아름답다. 천천히 감상한 후 집을 나서서 오늘의 마지막 여행지이자 마레 지구의 끝에 있는 바스티유 광장으로 향한다.
마레지구가 대저택과 북적거리는 번화가의 상류층 세계였다면 바스티유 지구는 전통적으로 노동자 계층의 안식처였다. 최근 바스티유 오페라를 필두로 현대적인 갤러리와 최신 트렌드의 상점들 그리고 세련된 레스토랑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바스티유 지역이 고급화되었지만 아직도 바스티유 거리 곳곳에는 서민적인 요소가 눈에 띈다. 그중 하나가 포보르 생 탕 투안 거리이다.
루이 14세가 면세 특권을 주어서 육성한 가구와 카펫 숙련공들의 작업실이 늘어서 있었던 포보르 생 탕 투안 골목은 현재 오래된 집들과 술집 그리고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이 골목에 살았던 사람들의 상당수는 프랑스혁명 때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던 혁명군이 되어 시민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 골목을 지나 광장으로 나오면 52m 높이의 높은 탑이 보인다. 1830년 7월 혁명의 희생자들이 묻혀있는 탑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잊을 수 없는 1830년 7월 27일, 28일, 29일에 공공의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를 무장하고 싸운 프랑스 시민들의 영광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