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떠나는 여행
부산에서 이름난 관광지이자 내가 태어나고 자란 흰여울 문화마을과 갈매길을 둘러보기 위해 오전 일찍 태종대에 도착했다. 태종대는 새벽부터 운동을 하는 인근 주민들과 서울에서 무박으로 밤 열차를 타고 내려온 여행자들로 항상 북적인다.
바다 산책로를 따라 20분 정도 걷다 보면 신라 29대 임금이었던 김 춘추가 전국을 순회하던 중 울창한 소나무 숲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기암절벽의 절경에 반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는 신선대와 등대가 나타난다.
알록달록 새단장을 한 등대와는 대조적으로 까마득한 절벽 아래 보이는 신선대는 고색창연한 절경을 자아낸다.
등대에서 다시 올라와 10분 정도 걸으면 전망대가 나온다.
청명한 날에는 약 56㎞거리에 있는 일본의 쓰시마섬까지 보이는 전망대는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으로 여행자를 압도한다. 무한한 기운이 넘치는 이곳은 새해 일출 포인트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예전부터 자살자가 많아서 한 때 자살 바위라 불렀다. 지금은 이곳에 어머니의 사랑과 생명의 고귀함을 상징하는 모자상이 들어서 있다.
태종대의 입구로 돌아와 오른쪽으로 내려오면 유람선 선착장과 자갈마당이 나온다. 자갈마당을 가로지르면 그림자 섬인 영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감지해변이 나온다.
감지해변 근처에는 조선시대 제주에서 온 조랑말을 키우던 목장이 있었는데 조랑말이 하도 빨라 그림자가 끊어 보인다는 뜻의 절영도에서 영도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태종대와 절영해안 산책로를 이어주는 감지해변은 원래 군사 보호 지역으로 출입이 통제되었다가 최근에 개방되어 여행자들에게 산과 숲 그리고 바다가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경관을 선사한다.
감지해변길을 30분 정도 산책하고 나면 절영 해안로 입구에 해녀촌이 나온다.
제주에서 온 해녀들이 직접 잡은 싱싱한 소라와 멍게 그리고 문어 등을 펼쳐 놓고 손님들을 유혹하는 해녀촌은 언제나 싱그럽다.
한때 서울에서 손님이 찾아오면 이곳을 자주 찾았다. 바다를 바로 앞에 두고 신선한 해산물과 술을 즐기기에 최고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특히 노을이 질 때면 그 아름다움은 말할 수 없다. 대학시절 해녀들이 모두 철수한 이곳에서 달빛 아래 반짝이는 파도를 보며 소주잔을 기울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해녀촌에서 맛있는 휴식을 취하였다면 본격적으로 절영 해안로와 흰여울 문화마을을 산책할 차례이다.
바다를 바로 옆에 두고 시원한 파도소리를 들으며 언덕을 올랐다가 다시 내려가면 어느덧 자갈밭으로 이어지는 절영해안 산책로는 부산의 바다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시간이 많은 여행자라면 해변으로 내려가 조그만 바위돌을 들추어 보면 살아 움직이는 게와 고동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절영 해안산책로의 마지막에는 절영 해안 터널이 있다.
해안 터널을 지나 무지개 계단을 오르면 전망 좋은 카페가 줄지어 서 있다. 환상적인 전망을 옆에 두고 여행자들은 카페에 앉아 편안한 시간을 즐긴다.
여행이 주는 일상 밖의 여유로운 시간을 충분히 즐긴 후 카페를 나와 내가 태어나서 자란 흰여울 마을로 들어간다
변호인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 곳에서 어린 시절 나는 바위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았다. 놀다가 배고파서 집으로 오면 한 두 가지의 반찬으로 차려진 밥상이 마루에 늘 놓여 있었다. 물에 밥을 말아 깻잎조림으로 순식간에 식사를 해치운 나는 다시 나가 어두워질 때까지 놀았다.
어린 시절 집 근처의 골목에 이르자 기억 저편에서 엄마의 냄새가 떠오른다. 한 여름 낮, 골목에 있는 그늘의 평상에서 자장가를 들으며 깊은 잠에 빠진 7살 소년이 맡았던 젊은 엄마의 냄새가 떠오르자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진다.
옛날 집이 있던 골목길을 나와 절영로 산책길을 따라 끝까지 걸어가면 빨간 등대와 테트라포드가 나온다. 이전에 없었던 방파제 위의 새로 생긴 길이 쭉 뻗어 있어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테트라포드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마음은 어느덧 어린 시절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다. 추억을 담은 파도가 하얗게 밀려왔다가 산산이 부서지자 여행자의 마음은 어느덧 푸른 바다와 하나가 되어 창공을 향해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