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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Jun 05. 2021

마이엔펠트 산책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찾아서

어릴 적 보았던 만화 영화 <플란다스의 개>는 나이가 들어도 잊혀지지 않고 더 선명하고 절실하게 기억된다.


만화속 주인공인 네로는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 지망생으로 가난하지만 할아버지와 플란다스의 개인 파트라슈와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죽고 파트라슈와 둘만 남은 네로는 집에서 쫓겨나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그리고 네로는 마지막 소원이었던 안트페르펜의 성당 안에서 루벤스의 작품을 보다가 파트라슈와 끌어안고 얼어 죽는다.


역경과 가난 속에서 꿈을 이루지 못하고 불쌍하게 죽어가는 네로의 모습은 무엇이든 꿈꾸면 이루어진다는 교육을 받았던 어린 시절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삶이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득한 중년의 나이가 되자 네로의 모습 속에 자신을 투영하며 삶의 위로를 받는다.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영화 중 <플란다스의 개>와 더불어 잊히지 않는 것이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이다.  극 중 주인공인 하이디는 네로와 달리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할아버지와 더불어 대자연의 도움으로 자신의 삶을 찾는다.


함든 일상에 자신의 걸어가야 할 길이 어딘지 모른 체 헤매고 있을 무렵 여행자는 하이디가 치유받았다는 알프스에 가고 싶어 졌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거짓말처럼 스위스의 하이디 마을을 찾았다.  


하이디 마을 <마이언펠트>는 취리히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에 있다. 취리히에서 하루 여행 코스로 충분한 이곳에 도착하면 만화 속 나무 지붕과 하얀 벽을 가진 하이디의 집이 드넓은 포도밭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하이디의 집 마당에 들어서면 하이디와 피터의 애완동물이었던 염소와 닭 등 귀여운 동물들이 여행자를 반겨준다. 마당을 지나 집안으로 들어가면 만화 속에서 보았던  부엌과 식당이 나오고 2층으로 올라가면 하이디의 포근한 건초 침대가 있는 침실이 동화처럼 꾸며져 있다.



하이디가 추위를 피해 겨울에 내려와 살았던 하이디의 집에서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1층에 전시된 각 나라에서 발행된 하이디의 동화책이다. 각 나라별 동화책에 쓰여진 언어가 다른 것은 쉽게 이해하였지만 나라별 동화책에 그려진 하이디의 모습이 달라 충격이었다. 같은 소설에서 만들어진 동화책이 각 나라로 전파되면서 자기 나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하이디가 다양하게 그려진 것이 당연하지만 다른 동화책 속의 하이디는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불편했다.  


하이디의 작가 슈피리는 변호사인 남편과 함께 취리히에서 유복한 생활을 했지만 늘 복잡하고 바쁜 도시 생활에 마음이 쇠약했으며 그로 인해 우울증을 앓았다. 그래서 그녀가 힘든 도시생활을 피해 찾은 곳이 이곳 마이엔펠트이다. 슈피리는 이곳에서 휴양을 하면서 하이디를 만들어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을 모두 잃은 하이디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데 병약한 소녀 클라라의 말동무를 하기 위해 알프스에서 프랑크푸르트로 보내진다.


클라라와 하이디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좋아하게 되었지만 도시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하이디가 알프스를 그리워하면서 몽유병에 걸리자 알프스로 돌아온다. 할아버지와 알프스 생활을 하면서 몸이 건강해진 하이디는 클라라를 알프스로 초대하여 함께 놀다가 휠체어를 잃어버린 사건이 발생한가. 하지만 하이디의 도움으로 클라라가 혼자 걸을 수 있게 되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소설 속 주무대가 되었던 알름 할아버지 집은 마을에서 최소한 1시간 이상 올라가야 한다. 숲으로 우거진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소설에서 피터가 염소에게 물을 먹였던 장소와 나무를 하였던 장소가 나온다. 또한 독수리가 피터의 염소를 잡아먹으려 했던 장소도 나오는데 이곳에 나무로 만든 독수리 조각상도 눈에 띈다.


간간히 내려오는 여행자들과 눈웃음을 나누며 피터가 실수로 클라라의 휠체어를 절벽으로 떨어뜨린 곳을 지나자 삼각모양의 지붕을 한 하이디의 여름집이 나온다.



빨간색 스위스 국기가 휘날리는 하이디의 여름 집은 만화 속 전경처럼 눈 덮인 알프스와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다.


마침 연기가 피어오르는 나무집에서
당장이라도 하이디가 달려 나올 것 같다.


현재 카페로 사용되고 있는 집안을 둘러보고 푸른 풀밭 끝에 있는 전망대에 서자 햇볕을 받아 윤기 있게 빛나는 포도밭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그리고 마주 선 알프스의 산맥들이 도시 생활에 찌든 여행자의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그리고 불현듯 <플란다스의 개>에서 네로가 했던 마지막말이  떠 오른다.



이젠 지쳤어, 파트라슈



도시가 아무리 편리해도  자연처럼 인간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없다는 하이디의 작가 슈피리의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자 여행자의 마음은  쌓인 알프스 산으로 멀리  뻗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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