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시립미술관
좋은 삶을 살기 위한 세 가지 비단 주머니를 만나기 위해 부산시립 미술관을 찾았다. 미술관은 겨울로 가는 입구에서 싱싱하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공장처럼 서 있다.
코로나로 인하여 한가한 미술관은 마치 개인 미술관에 온 듯 쾌적하고 평화로워 작품 감상 전부터 위로를 준다.
미술관으로 입장하여 3층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은 유대인 출신의 작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4.4> 작품이다. 비단 주머니의 첫 번째 주제인 죽음을 다룬 전시실 입구에 그가 이야기가 눈에 띈다.
나는 어디에서 죽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딘가에서 전시를 준비하다 죽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주 먼 나라에 있을 것 같습니다.
울란바토르에서 회고전을 진행한다거나요.
늙은 광대처럼, 언제나 여행하다 길 위에서 죽겠지요.
1944년에 파리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난 볼탕스키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따돌림을 당하면서 유대인에게 가해지는 냉혹한 현실을 경험하였으며 이는 이후 그의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히틀러의 집단학살과 형의 죽음 그리고 수많은 기억과 소품으로 죽음의 문제를 환기시키는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에서 연출한 <아미니타스>이다.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인 아타카마의 노을 속에 수많은 방울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소리를 내고 있다. 작은 영혼을 뜻하는 제목처럼 이 작품은 칠레의 피노체트 독재 하에 살해된 수천 명에 이른 정치범들의 죽음을 상징한다.
상여를 매고 종을 치며 북망산청가를 부르는 우리 장례식의 모습을 떠 올리게 하는 작품에서 말할 수 없는 쓸쓸함 과 아픔 그리고 외로움이 느껴졌다.
2층으로 내려오자 부산시립 미술관이 자랑하는 소장품들이 차례로 다가왔다.
두 번째 비단 주머니의 주제인 시민의 불안과 소외 그리고 절망을 담은 작품들 중 첫 번째 다가온 작품은 김태훈의 <새들은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다>이다.
빨간색으로 도배된 방안의 바닥에 배부른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있고 그위로 수많은 새장들이 샹들리에 빛을 받아 반짝거리지만 새장 안에 새는 한 마리도 없다.
다음으로 만나는 작품은 부산의 유명한 관광지인 40계단을 그린 박병제의 <40계단>이다.
작품에서 40계단 주위의 낡고 오래된 집들과 경사진 골목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에서 가난과 우울 그리고 소외감이 진하게 배여 있다.
신 중심의 중세시대와 왕 중심의 절대왕정시대를 지나 프랑스혁명 등 근대 시민혁명을 통해 시민이 주인이 되는 근대 세상이 되었다. 자연히 근대 회화는 이전의 신과 왕을 위한 화려하고 입체적인 화화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주인이 되는 평등하면서 단순함이 담긴 평면 회화로 발전했다.
또한 신이나 왕 중심의 절대적이며 영원불변한 세상의 모습보다는 시민들의 다양하면서 세속적인 삶의 모습을 담았다. 근대 이후 세상에서 영원한 것 보다는 변화와 다양한 찰나가 진실이 되었다.
하지만 시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은 시민들에게 자존감과 물질적 부 그리고 문화적 소양을 스스로 만들어야하는 책임을 부여했다. 이후 시민들은 자신이 주인이라는 자각과 책임에서 오는 불안과 소외된 삶을 감당하며 살아야했다.
안찬홍의 <봄날은 간다>에서 빛바랜 사진 속의 인물들은 6.25와 독재 시절을 거친 상처 입은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어두운 회색조와 노란색은 그 상처를 더욱 깊게 한다. 그리고 사진이 접히고 꺾인 흉터를 그대로 남겨 우리들이 받은 총상과 애환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세 번째 비단 주머니를 열기 위해서는 부산미술관의 별관으로 이동해야 한다.
푸른 잔디를 지나 별관으로 입장하면 가장 처음 만나는 작품이 깨진 유리 위에 있는 바위를 보여주는 이우환의 작품이다. 관계의 단절과 자아의 침묵을 보여주는 작품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대화>라는 작품이 나온다.
작품에서 서로 마주하는 바위들이 보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 개성이 보이는 색감을 가진 그림들이 마주 보고 있다. 색감 있는 개체는 옅은 색부터 짙은색으로 점차 진하게 칠해져 있어 하나의 개체 조차도 심리적으로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대화> 전시실을 지나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면 한국화에서만 볼 수 있는 품격 있는 여백 위에 색상을 가진 긴 터치의 형태가 거침없이 상승하며 싱그러운 생명력을 보여준다. 그로 인해 오히려 여백의 풍부함을 선사한다.
마지막 전시실로 다가가 전시실 입구의 커튼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서면 하얀 벽면 앞에 바위가 놓여있다.
순백의 세상에서도 변하지 않는 자아를 보여주는 작품에서 인간의 고집과 아집을 넘어 숭고함과 초월적인 영원성이 느껴진다.
죽음과 자아 그리고 관계라는 세 가지 울타리에 지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부산시립 미술관은 위로와 희망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