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여행

운명을 사랑한 사람들

부산 박물관 2

by 손봉기

들을 수도 말할 수도 볼 수도 없는 장애를 극복하고 인류애의 상징이 된 핼렌 켈러는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동이 트자마자 일어나 잠든 대지를 깨우는 햇빛의
장엄한 광경을 경건한 눈으로 바라보고 싶습니다.
아침에는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
오후에는 미술관,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 같은 밤하늘 별들을 보면서
하루를 보내고 싶습니다.


부산박물관의 두 번째 전시관인 부산관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남북 분단과 군사 독재속에서의 민주화와 근대화의 과정을 숨 가쁘게 보여준다.


부산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조선말 개항 때 부산 왜관에서 관리로 일하던 해은 민건호가 적은 해은 일기이다.



오늘날 세관과 치안업무를 담당한 부산 왜관에 부임한 그는 매일 새롭게 들어오는 서양 근대 문명에 대한 놀라움을 일기장에 생생하게 담았다.


그는 부산에서 동경까지 순식간에 소식을 전하는 전화를 접하고 눈이 휘등그레졌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병원인 재생병원에서 외과 수술을 하는 장면에서 경이로움을 느꼈다. 또한 접대차 들른 일본식 고급 요정에서 갖가지 화려한 음식에 할 말을 잊었다.


시간이 흘러 을사조약으로 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에 넘어가자 일제는 경부선 기차와 부산 전차를 설치하고 식민지 수탈을 본격화하였으며 부산은 자연스럽게 근대화의 물결을 타기 시작되었다.


근대화로 혜택을 본 것은 일제와 일제에 부역한 세력뿐이었다. 조선의 농민과 노동자는 더욱 더 큰 수탈을 당하였으며 미래 없는 현실의 고통 속에서 사탕과 우동 그리고 값싼 일본 화장품으로 하루하루의 허무를 달래야만했다.


청일전쟁에 이어 러일전쟁의 승리로 동양에서 더 이상 상대가 없을 정도로 막강한 일본 제국주의 치하였지만 실오라기 같은 희망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던진 독립투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애국가를 작곡하고 상점을 열어 군수품과 군사기밀문서를 독립군들에게 넘겨주었으며 의열단에 가입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활동을 전개했다. 당시 부산에서는 일제 경찰서로 들어가 서장에게 폭탄을 투척한 죄로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한 분도 있었다.


독립투사 한 분 한 분이 존경할 수밖에 없는 영웅들이지만 일제 치하에서 살았던 조선 민중들 모두의 가슴에 독립의 칼을 갈고 있었다. 이는 3.1 만세 운동으로 이어졌다.


일제가 물러나고 해방을 맞이한 한반도는 좌우대립으로 나누어져 6.25 전쟁을 겪는다. 당시 피난민들은 영도다리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며 남으로 남으로 내려와야 했다.



부산으로 피난 온 사람들은 중앙동의 40계단을 오르내리며 판자촌에서 생활을 이어갔지만 학교에서 교육은 지속되었으며 국제시장의 생계는 이어졌다. 그로 인해 전쟁이 끝나자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지만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다시 군사독재의 폭력에 신음해야 했다.



4.19와 부마항쟁 그리고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국민들의 끊임없는 민주화 투쟁으로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오늘날에 이르렀다.


고난의 역사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지만 단 한 번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결과 아픔 속에서만 피어나는 인간에 대한 진실된 사랑과 자긍심이 몸에 배게 되었다.


런던의 영국박물관 2층 70번 방에 <오디세우스의 귀환>이라는 전시관이 있다.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 오디세우스는 목마를 이용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 명장으로 10년간을 전쟁터에서 보내야 했으며 트로이 쪽을 응원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저주로 전고 향으로 돌아오는데 다시 10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포세이돈의 아들이자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동굴에 갇혔다가 탈출해야 했으며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을 유인하여 물에 빠져 죽게 하는 사이렌의 저주도 이겨내야 했다.


또한 혼돈의 바다 카립디스에서 한 몸에 여섯 마리의 뱀의 모습을 한 스퀼라에게 6명의 동료를 바쳐야 했으며 종국에는 헬리오스 신의 가축들에 손을 대어 자신만이 살아남아 칼립소 섬에 도착하였다. 이후 그는 불사의 여신인 칼립소와 사랑에 빠지며 다시 7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전쟁과 신들의 저주로 인한 고통은 7년의 달콤한 세월을 보내면서 잊혀졌다. 하지만 고향 이타카에 두고 온 자신의 아내와 아들 생각은 그의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칼립소는 오디세우스가 언제 떠날지 몰라 불안했다. 그녀에게 유일한 사랑과 행복을 주었던 그가 떠나면 그녀 역시 불행하게 살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녀는 오디세우스에게 신들이 먹는 음식인 암브로시아와 신들이 마시는 음료인 넥타를 건네며 신들처럼 영원한 젊음과 삶을 청했다.


오디세우스는 몇 주 동안 바다를 보며 고민한다. 바다 건너에는 무려 이 십 년간 떠나와 있던 그의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이 있지만 그곳으로 돌아가면 자신의 왕국을 노리는 무리가 있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싸움을 해야 했다.


오랜 고민 끝에 오디세우스는 영원불멸의 존재가 되라는 제안을 거절한다. 칼립소의 섬에는 예측할 수 없거나 불안하거나 구할 수 없거나 자유롭지 못한 것은 없지만 오디세우스가 전부를 던질 만한 미래가 없었다.


죽을 수밖에 없지만 그 한계로 살아 있을 때의 열렬한 사랑의 감정을 알고 있는 오디세우스는 영원이 산다는 것은 오히려 지옥처럼 느껴졌다. 고향으로 돌아간 오디세우스는 인간으로서 고통과 행복을 만끽하다가 죽었다.


그의 정신은 인간 중심 그리스 문명의 진수가 되었다.


카르프 디엠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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