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박물관 1
박물관에 입장하면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평화롭다. 인류의 기나긴 삶에서 내가 살고 있는 삶이 찰나적이라는 사실에 일상의 고민을 놓아버리기 때문이다.
런던의 영국박물관이나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그리고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을 1년에 수차례 방문하는 가이드로서 고향인 부산 박물관이 궁금해져 부산박물관을 찾았다.
생각보다는 규모가 큰 부산 박물관은 구석기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유물을 전시한 동래관과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적 유물을 전시한 부산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동래관으로 입장하자 압도적인 규모의 패총과 패총에서 쏟아졌던 선사시대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빗살무늬 토기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유물은 패총에 있던 당시의 생활용품과 무덤에 묻혀 있던 유물들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최소 1만 년 전부터고려시대까지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이다. 무덤에서 발굴한 유물들에서 무덤 주인들의 신분적 지위와 권력 그리고 내세관을 읽을 수 있다.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와 철기 시대까지 이어지는 무덤에서 발견된 토기와 무기 그리고 장신구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정교해지고 완성도가 뛰어나다.
그 오랜 시간 무덤에 이러한 유물들을 넣은 이유는 무덤의 주인들이 내세에서도 행복한 생활을 누리며 그로 인해 현세의 공동체가 번영하기를 위한 염원에서이다.
세계 4대 박물관인 영국박물관을 방문하면 지금으로부터 4,500년 전 지구 상의 최초 도시 국가인 우르에서 발견된 푸아비 왕비의 장신구를 바로 눈앞에서 즐길 수 있다.
52구의 여자 유골과 함께 푸아비 왕비의 무덤에서 발견된
왕비의 장신구는 금과 청색 돌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이 중 청색 돌인 라피스 아줄리는 우르에서 2천 킬로미터 떨어진 아프가니스탄에서만 생산되는 것으로 이 돌을 장신구에 사용했다는 것은 당시 우르가 먼 아프가니스탄과 교역을 할 정도로 강력한 왕권 국가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푸이비 왕비의 장신구를 감상하고 다음 전시실로 이동하면 아슈르바니팔 왕의 도서관이 나온다.
이곳 전시실엔 우리로 치면 고조선 시대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통일한 아시리아 제국의 마지막 왕인 아슈르바니팔 왕이 만든 도서관이 전시되어 있다.
아슈르바니팔 왕은 강인한 군주였을 뿐만 아니라 문화군주로의 면모도 뛰어났다. 특히 그는 재임기간 중 점토 도서관을 만들어 아시리아 제국의 문화적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아슈르바니팔 왕의 점토 도서관에 새겨진 글들을 보면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생의 기쁨 그 이름은 맥주,
인생의 슬픔 그 이름은 원정
결혼은 기쁜 것, 그러나 이혼은 더 기쁜 것
칠칠치 못한 마누라는 악마는 악마보다 두렵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그러니 쓰자.
하지만 금방 죽지도 않는다. 저축도 해야 한다.
아슈르바니팔 왕의 도서관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전시실 중앙에 위치한 <길가메시 서사시>이다.
길가메시의 모험을 기록한 12개의 점토판 중 가장 길고 가장 보존이 잘 된 11번째 점토판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기원전 1300년에 신레케운니니라는 시인이 그때까지 전해지던 길가메시의 전설을 하나의 서사시로 편집해 만든 <길가메시 서사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르의 5대 왕이었던 길가메시는 세상에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백성들을 무시하며 괴롭혔다. 이를 지켜본 신들은 길가메시를 제압하기 위해 엔키두라는 힘센 야만인을 보내어 싸우게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둘은 친구가 된다. 이를 본 신들은 이번에는 하늘의 황소를 보내어 길가메시를 죽이려 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 엔키두의 도움을 받아 길가메시는 황소를 죽인다. 이에 화가 난 신들은 엔키두를 병들어 죽게 한다.
기고만장했던 길가메시는 친구의 죽음에 충격을 받는다. 이후 영원히 살 수 있는 불로초를 구하러 여행을 떠나 천신만고 끝에 불로초를 구하지만 뱀에게 빼앗기고 깊은 절망에 빠진다. 하지만 현실의 여신의 도움으로 인간의 행복은 현재를 소중히 하며 충실히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며칠 전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모시고 할아버지 제사를 다녀왔다. 돌아가신 큰 아버지 대신에 제사를 주관하는 큰 형님은 올해로 50년이 되는 할아버지 제사를 이제 그만하겠다며 절을 하면서 많이 우셨다.
아버지는 당신 아버지의 마지막 제사를 마치고 집으로 오시면서 마음이 한결 가볍다고 말씀하신다. 당신이 죽음 뒤에도 누군가가 오래동안 당신을 기억해주리라는 믿음때문이다.
박물관은 과거를 통해 오늘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