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여행

나는 존재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방황

by 손봉기

겨울로 들어가는 늦가을 아침.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침대에서 일어난다. 핸드폰을 통해 나오는 음악이 늦가을 아침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보다 여유 있게 한다. 아내가 해 놓은 시래깃국으로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서자 아침의 청명함이 맑은 하늘과 어우러져 몸과 마음이 오랜만에 상쾌하다.


코로나로 거의 2년 만에 정상 출근이라 어색하지만 지난 20년간 몸속에 남아 있는 출근 본능들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3개월 방역 알바로 일하는 장소는 집에서 멀지 않다. 다리를 건너 20분이면 도착한다. 바다를 건너자 아침 일찍부터 일하는 분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지하철 입구와 대기실에는 청소하는 분들이 대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으며 그 주위로 택시 기사분들과 콜을 기다리는 오토바이 라이더들은 코를 빠트릴 듯 전화기를 보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그분들의 모습에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깨닫는다. 또한 동시에 현실에서 자신이 하는 일이 어쩌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쓰쳐간다.


빠른 출근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어 최근에 보고 있는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펼친다.


일제 치하에서 독립군들이 누구를 위해 독립운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번민하던 장면이 나온다. 백성을 저버린 왕과 양반을 위해 독립운동을 할 것인지 백성을 위해 할 것인지 논쟁이 뜨겁다.


책을 덮으며 조금 전 출근하면서 보았던 분들이 백 년 전만 태어났어도 세상을 호령하는 왕이었거나 탐욕스러웠던 권문세가의 양반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하루하루 생존과 역사를 이어간 농민이나 상민 또는 천민이었을지도 모른다.


참혹한 일제강점기와 2차 세계 대전을 끝으로 우리나라도 왕이 사라지고 누구나 평등하고 국민이 주인 되는 공화국이 되었다.


이후 신분은 없어졌지만 소수의 부자를 제외한 모든 국민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스스로 자립하면서 자의식과 자존감을 가지고 사는 세상을 살아야했다.


그리고 자유와 평등의 세상을 사는 국민들은 이전에 몰랐던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세상의 주인이
이제 자신이기 때문이다.



주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과 정치적 소신 그리고 문화적 감성까지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세상의 주인으로 살기 위한 책임과 고통은 어쩌면 인간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고통과 아픔 없이 평탄한 삶은 우리에게 죽을 만큼 허무함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삶은 고통이다. 그래서 내가 존재한다.
삶은 허무이다. 그래서 내가 존재한다.



삶의 고통과 허무 그리고 그 너머로 한 번씩 반짝이는 기쁨과 행복. 그 힘으로 오늘도 호모 사피엔스는 방황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꾸역함으로 또 한 번의 역사적 단계를 넘어서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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