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프 디엠
친구의 죽음은 그에게 충격이었다. 사람이 태어나서 늙고 병들며 죽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에게는 언제나 먼 이야기처럼 들렸다. 젊은 시절에는 언제든지 명예롭게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친구의 죽음을 직접 본 그는 두려웠다. 아무리 명예가 높고 재산이 많다고 한들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허무했다. 그는 죽으면 끝인데 악착같이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연일 파티를 열어 폭음과 과식을 즐겼다.
하지만 죽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죽음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어디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그 방법을 찾겠다고 다짐하였다.
다음 날 그는 길을 나섰다. 가능한 한 그는 세상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녔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그리고 몇 년을 돌아다녀도 죽음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오히려 세상천지에 그런 것이 어디 있냐며 사람들에게 비웃음만 샀다. 하지만 그는 그들이 이상했다. 그들도 역시 죽을 것인데 왜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코 죽지 않을 사람처럼 하루하루 먹고 자고 즐겁게 지내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는 화가 났다.
저들이 바보인가 아니면 내가 바보인가?
매일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과 미친놈처럼 죽음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매는 나를 비교해보자 갑자기 그는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그래도 한 때는 그는 모든 것을 가진 왕이었다.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왕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어쩌면 인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평생 안고 사는 것이 숙명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발걸음은 천천히 왕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모든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대 홍수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에게 가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마침내 지구 끝에 다다른 그는 죽음의 바다를 건너 그가 찾던 사람을 만났다. 바로 우트나 피시팀이다. 그는 처음에는 그런 것이 없다고 부인하다가 그가 끈질기게 달라붙자 깊은 바닷속에 불로초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길가메시는 발에 돌을 묶은 후 바닷속으로 뛰어들어가 불로초를 구했다.
불로초를 가지고 돌아가는 길은 너무나 행복했다. 가족과 친구들 함께 먹고 영원히 살 생각에 신이 났다. 그런데 돌아가는 중 맑은 샘물을 샘물을 보자 그동안의 피로가 쏟아졌다. 그래서 목욕을 하면서 잠시 쉬기로 했다.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몸을 씻었다. 그때 샘물 아래에 숨어 있던 뱀이 나타나 불로초를 먹어 버렸다. 뱀은 불로초를 먹자마자 허물을 벗고 사라졌다.
목욕을 마친 길가메시는 불로초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눈앞이 캄캄했다. 그는 몇 날 며칠을 절망감에 빠져 있다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여인이 다가와 그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길가메시야 매일 잔치를 열어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어라. 그리고 춤추며 기뻐하라.
또한 항상 깨끗한 옷을 입고 몸을 정결히 씻으며 너의 손을 잡고 있는 자식을 귀히 여기고
아내를 따스하게 안아주어라. 이것 만으로도 인간은 충분히 행복하느니라.
잠이 깬 그는 여행 중에 만났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범하지만 매일매일 하루를 집중하며 보내고 있었다. 꿈속에 나타난 여인의 말처럼 죽음은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었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하루하루의 일상에 집중하며 사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행복임을 깨달았다.
영국 박물관 메소포타미아 관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불규칙한 강의 범람으로 항상 불안한 삶을 살았다. 또한 지리적으로 산이나 바다가 없고 사방이 트여 있어 주변 도시국가들과 전쟁이 잦았다. 이러한 환경에서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는 정기적으로 강이 범람하고 주변이 사막과 바다로 가로막혀 있어 이웃 나라의 침입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활과는 근본부터 달랐다. 안정과 풍요 속의 이집트인들이 죽은 뒤에 자신들의 풍요가 계속되기를 염원하며 내세에 관심이 많았다면, 불규칙한 강의 범람과 개방적인 자연환경으로 전쟁이 잦았던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실에 관심이 많았다.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길가메시 서사시>이다. 현재에 집중해서 살았던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유물을 보기 위해서는 영국박물관 2층 56번 방으로 가야 한다. 이 곳에 지금으로부터 45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인류 문명의 최초의 도시 국가를 열었던 우르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먼저 <푸아비 왕비의 하프와 장신구>를 감상하자.
하얀 뿔에 황금으로 된 얼굴을 하고 있는 황소가 놀란 듯 앞을 바라보고 있다. 아홉 갈래로 내려진 황소의 수염은 눈과 마찬가지로 청색으로 장식되어 있다. 갖가지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된 목 뒤로 열한 줄의 현이 보인다. 기원전 2500년 전에 사용했던 하프이다.
인류 최초의 도시국가 우르의 왕비인 푸아비의 무덤에서 발굴된 이 악기는 값비싼 보석으로 치장된 것으로 여성의 시신 10구와 함께 놓여 있었다. 악기와 10구의 시신은 죽은 여왕이 내세를 건너는 동안 위로가 되기 위해 희생제물로 바쳐진 것으로 보인다. 풍요를 상징하는 황금 황소의 머리로 장식된 악기는 당시 제사를 지내거나 연회를 할 때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 악기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황소의 머리와 눈 그리고 수염에 사용된 파란색 돌이다.
당시 황금보다 비싼 청금석은 우르에서 2,000km나 떨어진 아프가니스탄에서만 생산되었다. 그 먼 지역에서 돌을 가져와 하프를 장식하였다면 우르의 왕권이 얼마나 대단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다음은 <우르의 스탠더드>를 감상하자.
푸아비 왕비의 무덤에서 발굴된 가장 흥미로운 유물은 우르의 스탠더드이다. 악기의 보관함으로 사용된 이 유물의 앞면은 평화 장면, 뒷면은 전쟁 장면을 새겨 놓았다.
먼저 평화 장면은 당시의 연회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맨 아래 칸에는 전리품인 곡식과 짐승을 나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 위 칸에는 사람들이 연회에 쓸 황소와 염소들을 끌고 가고 있으며, 제일 위 칸에는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의식용 의복인 모직 치마를 입고 연회를 즐기고 있다. 그들은 오른손으로 술잔을 들어 신에게 감사하고 있으며 그들 주위로 시종들이 보인다. 또한 음악가는 조금 전 우리가 본 악기로 세레나데를 연주하고 있다.
반대편인 전쟁 장면은 평화 장면보다 더 극적이다. 가장 오래된 수메르 군대의 전쟁 장면을 보여주는 면의 가장 아래단에는 네 마리의 조랑말이 전차를 이끌며 적을 무찌르고 있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갈수록 말의 움직임이 커지면 속도감을 보여준다. 말들은 처음에는 걷다가 점차 뛰기 시작하며 마지막에는 하늘로 날아갈 듯이 앞발을 높이 들고 있다. 말 아래 몸통이 잘린 채로 죽어가는 처참한 군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둘째 단에는 허리 장식과 투구를 목에 묶은 보병대가 행진하고 있다. 수평을 향한 군인들의 창은 죄수들을 몰고 있으며 제일 선두에서 선 보병은 죄수의 옷을 벗기고 도끼로 포로들을 처형하고 있다.
제일 위단에는 하얀 예복을 입고 가장 크게 그려진 왕이 상대편 포로들을 심판하고 있다. 상대편 왕 역시 하얀 예복을 입고 있는데 예복은 왕권을 상징한다. 승리한 왕은 윤곽선을 뚫을 정도로 크게 그린 반면 패배한 왕은 일반 병사들과 같이 작게 그리며 전쟁의 승패에 따라 나누어진 왕들의 힘과 권력을 보여주고 있다.
우르의 스탠더드는 조개의 껍데기와 붉은 석회암 그리고 청금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조개의 껍데기는 인물들을 조각하는 사용 하였으며 청금석은 조각의 배경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석회암은 장식적인 효과를 위해 첨가되었다.
이제 바로 옆의 전시실인 55번 방으로 이동하여 고대 아시리아의 도서관을 감상하자.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기원전 3500년 전 남쪽의 수메르 인들이 세운 우르크와 우르 등 도시국가로 시작하였지만 기원전 2300년이 되어서는 북쪽의 아카드인들이 남쪽의 도시국가를 제압하고 메소포타미아를 장악하였다. 이후 다시 남쪽의 바빌로니아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통일했으며 당시 왕이 우리가 잘 아는 함무라비 법전을 만든 함무라비이다.
안정과 풍요 속에 번영을 구가했던 바빌로니아는 북쪽의 히타이트의 침입으로 무너지고 기원전 800년경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아시리아 제국이 히타이트를 물리치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통일한다.
이후 페르시아로 이어지고 이는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멸망한다.
이 전시실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통일한 아시리아 제국의 마지막 왕인 아슈르바니팔 왕이 만든 도서관이다.
아슈르바니팔 왕은 강인한 군주였을 뿐만 아니라 문화군주로의 면모도 뛰어났다. 특히 그는 재임기간 중 점토 도서관을 만들어 아시리아 제국의 문화적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아슈르바니팔 왕의 점토 도서관에 새겨진 글들을 보면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삶의 기쁨 그 이름은 맥주, 삶의 슬픔 그 이름은 원정
결혼은 기쁜 것, 그러나 이혼은 더 기쁜 것
칠칠치 못한 마누라는 악마는 악마보다 두렵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그러니 쓰자.
하지만 금방 죽지도 않는다. 저축도 해야 한다.
아슈르바니팔 왕의 도서관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전시실 중앙에 위치한 <길가메시 서사시>이다.
길가메시의 모험을 기록한 12개의 점토 판 중 가장 길고 가장 보존이 잘 된 11번째 점토판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11번째 점토판에는 신들은 자신들을 경배하지 않는 사람들을 멸망시키려 대홍수를 일으키지만 이를 반대하는 지혜의 여신의 도움으로 우트나피시팀만이 방주를 만들어 살아남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원전 1300년에 신레케운니니라는 시인이 그때까지 전해지던 전설을 하나의 서사시로 편집해 만든 <길가메시 서사시>의 내용은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르의 5대 왕이었던 길가메시는 세상에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백성들을 무시하며 괴롭혔다. 하늘에서 이를 지켜본 신들은 길가메시를 제압하기 위해 엔키두라는 힘센 야만인을 보내어 싸우게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둘은 친구가 된다. 이를 본 신들은 이번에는 하늘의 황소를 보내어 길가메시를 죽이려 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 엔키두의 도움을 받아 길가메시는 황소를 죽이고 살아남자 화가 난 신들은 엔키두를 병에 들어 죽게 한다.
기고만장했던 길가메시는 친구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불로초를 구하러 여행을 떠나서 불로초를 구하지만 뱀에게 빼앗기고 깊은 절망에 빠진다. 하지만 현실의 여신의 도움으로 현재를 소중이 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제 1층 6 전시실로 이동하여 치열하게 현재를 살아간 아시리아 제국의 유물을 감상하자. 제일 먼저 6 전시실로 입장하면 가장 눈에 띄는 커다란 성문과 라마수를 만나보자.
인간의 머리를 한 거대한 동상은 니네베 궁전을 지키던 라마수이다. 무게 10톤 이상의 거대한 돌을 통째로 깎아 만든 라마수는 지혜의 상징인 인간의 머리와 용맹의 상징인 독수리의 날개 그리고 성실함의 상징인 소의 몸을 지닌 상상 속의 동물이다.
라마수 뒤에 보이는 문은 당시 니네베 궁전의 성문으로 실제 크기의 모조품이다. 그 문 옆으로 유리관 안에 당시 성문의 진품이 있는데 문 위로 둘러진 화려한 청동 띠에는 당시 아시리아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다음은 7 전시실로 이동하여 님루드 궁전을 장식한 벽화를 감상하자.
7 전시실 입구에는 신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왕의 모습이 보인다. 중앙 나무 주위에 있는 아슈르나르시팔 2세는 양쪽으로 두 번을 반복하며 새겨져 있어 강력한 왕의 권위를 보여준다. 왕의 왼손에는 지휘봉을 오른손에는 반지를 쥐고 있어 그가 통수권자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 뒤로 왕을 지키는 수호신이 영생의 나무에서 열매를 주며 왕을 축복하고 있다. 가운데에 있는 나무는 영생의 나무로 번영을 상징하며 나무 위에 보이는 문양은 아시리아의 최고의 신인 아슈르 신의 모습이다. 이는 왕의 권위가 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왕과 신의 손에 시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 태음력을 사용할 정도로 과학이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왕과 신의 무릎과 발 사이의 세밀하면서 과학적인 신체표현도 당시 발전된 문명을 누렸음을 알 수 있다.
7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면 전시실 전체가 모두 전투 장면으로 장식되어 있다. 늘 적과 대치해야 했던 아시리아에서 전쟁의 승리와 왕의 용맹스러움은 가장 큰 미덕이자 사전에 적들을 제압하기 위한 과시였다.
전투 벽화를 자세히 보면 하늘 곳곳에서 독수리 날개를 한 아슈르 신은 적의 어떤 공격에도 왕을 보호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아슈르 신은 군대와 왕국을 보호하는 최고의 신이다. 또한 전투 장면 중 성벽을 부수는 전차가 보이는데 전차를 움직이는 동력은 지금의 배터리 원리를 사용했다고 한다.
벽화를 따라 계속 가면 오른쪽은 적에게 화살을 쏘는 용맹한 아시리아 궁수들이 보이고 반대편에는 도망가는 상대편 군사들이 보인다. 그중 수영을 하며 도망가는 모습에 서 산소통의 용도인 튜브가 보이는데 이는 짐승의 내장을 이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이제 10 전시실로 이동하면 <사자 사냥>을 감상하자.
니네베 궁전에서 출토된 것으로 기원전 645년 아시리아의 아슈르나르시팔 왕이 자신의 용맹성을 만백성에게 보여주려고 제작한 궁전 벽화이다.
아시리아 사람들은 새로운 땅을 정복하면 그 땅에서 가장 강한 동물을 죽이는 의식을 치르며 그들의 용맹성을 알렸다. 조각에 새겨진 장면들은 그런 의식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벽화에서 왕은 전차를 향해 달려오는 수사자에게 용감하게 맞서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벽화 속 사자들과 왕의 모습은 평면에서 살아 튀어나오는 것 같은 사실감을 보여주고 있다. 왕의 칼을 맞은 사자는 피가 솟구치고 얼굴에 핏줄도 선명하다. 동물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사실적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존과 즐거움을 위해 많은 것들을 발명했다. 국가의 질서를 위해 법전을 만들었으며 생활에 필요한 달력과 바퀴를 만들었다. 또한 즐거운 생활을 위해 맥주와 악기도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발명한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도시이다.
그들이 비옥한 영토에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농사에 필요한 대형 수로를 만들며 곡식과 토양을 보호할 지배층과 군인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잉여 농산물을 거래할 수 있는 상인들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장들이 생기면서 도시가 탄생하고 문명이 시작되었다. 이후 메소포타미아 인들은 전쟁 등 치열한 현실을 살면서 그 속에서 피어난 지혜와 정신을 가지고 화려한 문명을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