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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Aug 07. 2020

파르테논 신전

신과 인간의 행렬

기원전 492년부터 세 차례에 걸친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은 세계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만약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하지 못하였다면 오늘날 민주주의가 왕 중심의 문화에 의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 1호인 파르테논 신전은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축한 것으로 고대 그리스 시민들의 민주주의 대한 자부심을 보여주는 최고의 건축물이다. 당시 파르테논 신전 건축을 주도한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우리는 남을 모방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왔다. 우리의 정체가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것은 소수자가 아닌 다수자의 이익을 위해 나라가 통치되기 때문이다. 시민들 사이의 사적인 분쟁을 해결할 때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 그러나 주요 공직 취임에는 개인의 탁월성이 우선시되며 추첨보다 개인의 능력이 중요하다. 가난 때문에 능력자가 공직에서 배제되는 일은 없다. 우리 시민 개개인은 인생의 다양한 분야에서 유희하듯 우아하게 자신만의 특질을 개발하고 있다. 이것이 아테네 이 도시의 힘이다.  


파르테논 신전 중앙에는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이 상아와 황금으로 만든 12미터의 거대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매일 새벽 동쪽 입구에서부터 해가 비치기 시작하면 아테네 여신의 황금빛 모습은 찬란하게 빛나며 경이롭고 성스러운 모습을 연출한다. 거대한 아테나 여신을 모시는 파르테논 신전은 그 규모와는 달리 마치 하늘을 날 듯 우아하고 아름답다. 이는 인간의 시각에서 아름다움을 실현하는 설계와 건축 때문이다.   


파르테논 신전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절대적인 균형미와 비례미를 느끼게 한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인간의 눈에 비치는 절대적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절대적 아름다움은 사물의 조화에서 나오며 조화는 질서에서 다시 질서는 비율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파르테논 신전에 적용되는 비율은 우리가 아는 황금비율이 아니라 9:4 비율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보기에 가장 아름다운 비율로 이 비율을 적용해 파르테논 신전을 완성하였다.



또한 기둥과 기둥 사이의 거리와 각 기둥의 두께 역시 정확하게 9:4의 비율을 하고 있다. 9와 4라는 숫자의 관계는 2n+1이라는 공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즉 9=2*4+1이라는 뜻으로 앞 뒤 면에 8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고 옆면에는 17개의 기둥이 서 있다. 다시 말해 17=2*8+1이다.


고대 그리스 건축가들은 건물의 기본인 기둥과 천정 그리고 바닥을 설계하고 건축할 때 엄격한 비율로 설계하고 건축하여 인간의 눈에 가장 아름다움 구조를 만들었다. 엄격한 비율과 질서 외에 인간이 눈에 아름다운 건축을 위해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인간의 착시현상을 감안해 신전을 지었다. 예를 들어 파르테논 신전의 모든 기둥은 우리나라 무량수전처럼 배 흘림 양식을 하고 있다.


신전 기둥들이 수직으로 서 있으면 중앙 부분이 가늘어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기둥 중간 부분을 두껍게 만드는 엔타시스 기법을 사용해 균형감을 돋보이게 하였다. 또한 신전 정면에서 볼 때 기둥 간격이 양측 모서리로 갈수록 넓어 보이는 착시현상을 교정하기 위해 모서리 부분의 기둥간격을 좁게 만들었다. 실로 파르테논 신전은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인간의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엘긴 마블


18 전시실로 앞에 있는 시청각 실에 들르면 왜 파르테논 조각들이 대영박물관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전시된 사진과 영상을 통해서 16세기 터키 군대가 그리스를 침공하였고 당시 파르테논을 화약창고로 쓰는 과정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때 파르테논 주변 땅바닥에 방치돼 있던 조각품들을 당시 영국대사 엘긴이 거금을 들여 그리스 정부로부터 구매하여 지금의 대영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파르테논 신전의 백미는 신전 곳곳에 새겨진 조각품들로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신전의 입구의 위에 있는 삼각 부분인 페디먼트와 그 아래 사각 부분인 메토프 그리고 메토프 안쪽으로 신전을 둘러싼 사각의 프리즈에 조각들이 위치하고 있다.


먼저 감상할 정면 위 삼각 부분인 페디먼트는 해당 건물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장소로 그곳에 새겨진 조각들을 살펴보면 해당 건물의 역사와 용도를 알 수 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동쪽과 서쪽에 각각 페디먼트가 있으며 해가 뜨는 동쪽 페디먼트부터 살펴보자.


18 전시실로 들어서서 오른쪽 끝으로 가서 아테나 여신의 탄생을 묘사한 동쪽 페디먼트 조각상부터 감상하자.


중앙에 물속에서 무장한 채 서서히 부상하는 아테나의 모습이 파괴되어 보이지 않지만 탄생 장면을 목격하는 몇몇 신들의 조각이 생동감 있게 보인다.



서양 미술의 최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이 조각상 중 왼쪽 끝에 표범 가죽 위에 한가하게 기대어 한 손에 술잔을 들고 떠오르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마차를 바라보고 있는 디오니소스가 보인다. 디오니소스는 아직 아테나의 탄생 소식을 듣지 못한 채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그래서 중앙에 있는 메신저의 여신 아이리스가 망토를 펄럭이며 황급히 그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디오니소스 옆으로 옷자락까지 섬세한 두 명의 여신은 오른쪽부터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와 그녀의 딸 페르세포네이다.



반대편에 오른쪽으로 아름다운 세 명의 여신이 보인다. 제일 오른쪽에 가장 호화롭게 앉아 있는 아프로디테가 보인다. 그녀가 입은 옷자락들이 제멋대로 몸을 감싸며 살아 숨 쉬는 듯하다. 그리고 그 옆에 무릎을 내어 사랑스럽게 아프로디테를 받쳐주고 있는 여신이 아프로디테의 어머니 디오네이다. 이들 역시 아테나의 탄생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 옆에 있는 불과 화로의 여신 헤스티아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하는 눈초리이다. 세 명의 여신은 그 자태가 너무 아름다워 <삼미의 여신>이라 부른다.


마지막으로 오른쪽 끝에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는 달의 여신 셀레네의 전차를 끄는 말이 보인다. 벌린 입, 커진 코, 뒤로 젖힌 귀가 밤새 달을 싣고 달린 피로감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헬리오스가 동쪽에서 뜨면 셀레네는 서쪽에서 진다. 즉 동이 트는 새벽에 아테네가 탄생하고 있다는 그 시각을 보여준다. 그녀의 탄생과 함께 아테네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게 된다. 그 순간을 포착하여 보여줌으로써 신성한 영원성을 상징한다.


파르테논 메토프


메토프는 동서남북으로 나뉘어 신화에 등장하는 네 개의 전쟁 장면을 보여준다. 모두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한 것을 상징한다. 이중 켄타우로스들과 라피트들과의 싸움을 보여주는 부조를 감상하자.



신화에서 인간 라피타이 족은 왕의 생일에 연회를 베풀어 이웃에 사는 켄타우로스 족을 초청하는데, 술을 먹은 켄타우로스가 여인 라피테스를 덮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이를 저지하려는 라피타이족과 켄타우로스족이 전쟁을 벌였고 결국 라피타이족이 승리했는데, 동쪽 메토프는 이 장면들을 묘사하고 있다.


위에 보이는 부조를 보면 한쪽에서는 켄타우로스족 중 한 명이 라피테스의 여인을 납치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또 한쪽에서는 필사적으로 도망치려는 켄타우로스를 라피테스가 한 팔로 강하게 붙잡고 다른 팔로 일격을 가하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여기서 라피타이족은 법과 질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그리스의 수호자를 뜻하며, 켄타우로스 족은 파멸의 길에 들어서는 야만적인 페르시아 군대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켄타우로스의 본성을 생각하면 좀 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켄타우로스는 반은 인간이기에 잔인하고 야만적인 충동을 자제할 수 없는 격렬한 감정에 쉽게 사로잡히는 반면, 라피타이족은 완전한 인간으로서 이성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그들이 벌이는 전쟁은 인간 본성의 내면에 자리한 근본적인 갈등을 상징한다. 즉 선과 악이나 감성과 이성 그리고 질서와 혼돈을 보여준다.


이제 18 전시실 중앙으로 이동하여 중앙 벽에 있는 조각 상들을 감상할 차례이다.


파르테논 서쪽 남단에서부터 시작하여 동쪽 입구까지 이어지는 프리즈에는 아테나 여신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인간의 행렬이 조각되어 있다.


우아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부조를 살펴보면 먼저  말들을 준비하는 청년들과 말을 멋지게 타고 가는 병정들이 보인다. 체계적인 진용을 갖추고 무리를 지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기마행렬은 병정들의 머리와 발끝 그리고 말의 머리 등이 파도가 치듯 살아 움직이며 앞으로 향하고 있다.   



기마행렬 맞은편에는 희생시킬 소를 끌고 가는 도살꾼부터 시작하여 머리에 항아리를 이고 가는 이방인과 바구니를 들고 가는 아가씨들 그리고 대머리에 수염이 긴 노인 등 인간의 행렬이 보인다. 인간들 행렬 끝부분에 제사장인 할아버지와 소년이 아테나 여신에게 바칠 신성한 겉옷을 들고 걸어가고 있다. 다채로운 공동체 정신과 인간에 대한 자부심으로 생동감이 넘치는 조각들은  물질적 풍요로움과 화려함이 넘친다.



그다음으로 신들의 행렬이 보인다. 제사장 오른쪽으로 날개 달린 장화를 신고 날개 달린 모자를 무릎에 올려놓은 전령의 신 헤르메스가 보이며, 그 옆으로 다정하게 어깨에 손을 대고, 술잔을 들고 있는 신이 디오니소스이다. 디오니소스 옆으로 지하의 신 하데스에게 딸을 빼앗겨 슬픔에 잠긴 채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대지의 신 데메테르가 보이는데, 그녀의 손에는 딸을 찾아 지하를 헤맬 때 사용했던 횃불이 들려 있다.


데메테르의 오른쪽으로 발꿈치에 창 조각이 보이는 전쟁의 신 마르스가 보이며, 그 옆으로 헤라와 제우스가 있다. 프리즈의 끝에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토스와 함께 앉아 있는 아테나의 모습이 보인다.



파르테논 서쪽 페디먼트


마지막으로 입구에서 왼쪽으로 끝까지 가면 아테나와 포세이돈이의 경합 장면이 조각되어 있는 서쪽 삼각 부분의 조각들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아테네의 수호신 경합에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참가한다. 경합에 참가한 포세이돈은 아크로폴리스 정상에서 샘물이 솟게 하여 그들이 바다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반면 아테나는 아크로폴리스의 큰 신전에 올리브 싹을 틔우는 기적을 일으키며 자신을 아테네의 주신으로 뽑아 주기를 요구한다. 결국 아테네 시민은 올리브를 선택해 아테나를 아테네 수호신으로 결정했다.


18 전시실 왼쪽 끝의 조각들은 이 경합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둔 채 포세이돈과 아테나 신이 입장하고, 두 신들 사이로 올리브 나무가 서 있는 장면을 연출하였지만 너무 심하게 훼손되어 지금은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17세기 베네치아의 실력자 로모시니가 용맹을 상징하는 아테나 여신의 전차를 떼어 내려다 실패해 조각이 크게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해상 무역 국가였던 아테네 시민들은 왜 막강한 부를 가져다주는 바다를 지배할 힘을 거부하고 작은 올리브 나무를 선택했을까?


올리브는 아테네 여신의 상징물인 만큼 고대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은 그 기름을 바름으로서 특별한 힘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레슬링 선수들은 올리브기름을 몸에 발라 상대방의 손아귀에 잡힐 확률을 낮추었다. 또한 올리브기름은 마사지 재료로 피부와 근육을 관리하는 데 사용하여 물로 된 금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지중해 사람들에게 올리브는 중요한 영양원으로, 그것을 통째로 갈거나 오일로 만들어 먹었다.


하지만 아테네 시민이 올리브나무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연료의 원천으로 올리브 열매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 옛날 그리스에서 등잔불을 밝힌 것이 올리브 열매였다. 이는 지적 능력이 무지의 암흑을 물리치듯이 올리브 열매를 태워 어둠을 물리칠 빛을 만드는 것을 의미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 인은 자기네 도시를 물질적 부가 아니라 지적 에너지로 채워 황금시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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