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국립 미술관
미술사를 따라 작품을 가장 잘 전시한 미술관이 런던 내셔널 갤러리이다.
내셔널 갤러리를 방문하면 본격적인 회화의 시작을 알리는 르네상스 시대 초기부터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를 지나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실주의 그리고 근대 마지막 미술사조인 인상파 시대까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후 현대 시대 작품을 런던에서 보고 싶다면 데이트 모던으로 가면 된다.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유럽은 천년 동안 기독교 중심의 중세시대가 펼쳐지고 그 시기 회화는 보이지 않는 신을 표현하는 수단에 머물렀다.
15세 르네상스의 시대에 이르자 회화는 인간의 눈으로 보는 아름다운 세상을 재현하기 시작하였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신의 상징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원근법과 명암법을 이용해 인간의 눈으로 보는 사실적인 세상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화화는 거룩한 성자의 모습이 아니라 기쁨과 아픔을 가진 인간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인간의 감정과 모습을 표현한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마르스>와 브론치노의 <사랑과 시간의 알레고리>이다.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와 마르스>는 전쟁의 신 마르스와 바람을 피우고 불안해하는 비너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투구와 창을 통해 잠이 든 남자가 전쟁의 신 마르스임을 나타내고 있으며 옆에서 큰 소라를 불어대고 창과 투구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는 인물들은 사티로스로 주색을 상징한다. 비너스의 남편은 대장장이의 신 불카누스로서 매우 추남이었다. 신 중에서 가장 잘 생긴 마르스와 바람을 피운 비너스는 후에 그 사실이 밝혀져 수모를 당하고 에로스를 낳는다.
이 작품은 당시 혼례용 물품을 보내는 함을 장식한 것으로 바람피우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는 작품 치고는 전체적으로 흐르는 시적인 정서와 장식적인 곡선이 너무 매혹적이다.특히 비너스의 윤기 있는 머리카락과 비너스가 입고 있는 하얀 드레스의 무수한 주름이 너무나 아름답다.
이제 화가는 신의 상징인 십자가와 부활은 사라지고 인간이 느끼는 아름다움과 감정을 담기 시작했다. 다음 작품도 이를 보여준다.
작품 이름이 <사랑과 시간의 알레고리>인 이 작품에서 누드화임에도 오른쪽 위에 있는 노인의 팔과 아래의 소년 그리고 중간에 있는 비너스 몸으로 이어지는 딱딱한 네모 형식의 구도를 가진 그림은 전혀 섹시하지 않다. 오히려 눈이 시릴 만큼 밝게 표현한 비너스의 살결이 배경인 푸른색과 대비를 이뤄 차갑고 이성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제일 오른쪽 위에 있는 노인은 시간을 의미하는데 그 상징으로 어깨 위에 모래시계가 있다. 맞은편에 보자기를 뺏기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꽉 잡고 있는 여인은 진실을 상징한다. 그녀는 장막을 벗겨 진실을 보여주고자 하는데 이를 저지하는 시간의 신과 늘 다툰다.
한 손에 황금 사과를 들고 있는 중앙의 여인은 비너스로 육체적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비너스 옆에서 가슴을 만지는 소년은 사랑의 신 큐피드다. 큐피드의 반대편에서 장미꽃을 들고 있는 소년은 세속적인 쾌락을 의인화한 것이다. 세속적 즐거움을 나타내는 소년 뒤에서 순진한 얼굴을 한 소녀가 보이는데 그녀의 오른손에는 벌집을, 왼손에는 독이 든 전갈을 들고 있어 기만을 상징한다. 그녀의 예쁜 옷 아래에 구렁이 몸통과 사자 다리를 넣어 그 의미를 더욱 분명히 했다.
비너스 발아래에 놓인 두 개의 남녀 가면은 색욕을 상징한다. 그리고 큐피드 왼쪽에서 머리카락을 뒤집으며 괴로워하는 노파는 질투를 상징한다.
이 작품은 사랑은 육체적 아름다움에 이끌려 쾌락과 색욕을 제공하지만 그 이면에 기만과 질투가 숨어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그 진실이 밝혀진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랑의 진실을 알려주는 작품 치고는 작품 전체가 너무 아름다워 그 주제를 잊게 만든다.
신의 경건함 대신 인간의 감정을 노래한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이후 독일과 네덜란드 그리고 벨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특히 북쪽의 르네상스는 유화의 발견으로 더욱 섬세하게 사물과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내셔널 갤러리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이다.
이 작품은 직물업으로 성공한 이탈리아의 상인 아르놀피니와 그의 부인이 된 조반니 체나미의 결혼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최초의 시민 초상화로 분류되는 이 작품은 최초의 유화작품이기도 하다. 기존의 계란 노른자에 색채가 있는 안료를 녹여 그리던 템페라화는 굳어지면 수정이 불가능하지만 안료를 기름에 개어 만든 유화는 자유자재로 수정할 수 있어 세밀한 묘사가 가능해졌다. 화가는 작품에서 이러한 유화의 특성을 마음껏 이용하고 있다.
신부의 옷을 보면 잔털까지 보여주고 있으며 신부의 얼굴에서 고집이 세고 잘 토라질 것 같은 그녀의 성격을 잘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림 곳곳에 숨은 상징들이 결혼식의 의미를 되새겨 준다. 바닥의 강아지는 충실함을 보여주고 신랑 신부의 맨발은 신성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샹들리에 위의 촛불 하나는 경건함을 표현하고 창가의 과일은 원죄를 상징한다.
신랑과 신부 뒤로 보이는 볼록 거울에는 예수의 10개 고난상이 그려져 있고 옆에 묵주도 보이는데 이는 고난과 순결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를 통해 신성한 결혼식을 한 신랑 신부는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서로 충실히 살 것을 약속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구도적인 면에서도 뛰어나다.
세부 묘사로 산만해지기 쉬운 이 작품에서 신랑 신부를 화면 앞으로 바짝 클로즈업시켜 깊숙한 공간을 만들어 내고 창에서 들어오는 빛을 통해 모든 사물을 연결시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륙의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는 바다 건너 영국까지 이어졌다. 영국의 르네상스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대사들>이다. 특히 이 작품은 파란만장한 영국의 역사와 어우러지면서 작품 곳곳에 상징적인 장치로 작품 감상의 재미를 더한다.
영국은 프랑스와 백년전쟁을 치르고 나서 극심한 혼란기로 접어드는데 이때 왕권을 놓고 귀족들끼리 전쟁이 벌어진다. 당시 대 귀족 가문인 랭커스터 가문이 붉은 장미, 요크 가문이 흰 장미를 문장으로 삼았기 때문에 이를 장미전쟁이라 불린다.
이 전쟁에서 랭커스터 가문의 헨리 튜더가 최종 승리하며 헨리 7세라는 이름으로 튜더 왕조를 열었다. 두 차례에 걸친 전쟁으로 인해 백성들은 안정된 사회를 원했기에 튜더 왕조는 절대 왕권을 확립할 수 있었다. 이후 절대 왕정에서 귀족은 소멸했고 젠트리와 요먼 등 상인들이 새로운 관료가 되어 왕을 보좌했다.
부왕의 강력한 절대 왕권을 물려받은 헨리 8세는 병으로 단명한 형의 아내인 에스파니아의 공주 캐서린까지 물려받았다. 당시 영국과 에스파니아 왕실은 자식들의 결혼으로 상호 군사 동맹을 맺고 있어서 동맹을 지속하기 헨리 8세는 형의 아내인 케서린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당시 사람들은 아직 어렸던 헨리 8세의 형과 캐서린 사이에 성관계가 없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국왕이 된 헨리 8세는 후계자 문제에 신경을 쓰게 되지만 첫 번째 딸과 아들을 사산한 후 1516년 메리를 낳았다. 이 딸은 후에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되어 개신교들을 많이 죽여 <피의 메리>라고 불리는 여왕이 된다.
아들을 얻지 못한 왕은 결혼한 지 20년 만에 캐서린과 별거하고 왕비의 궁녀 출신이자 자신의 정부였던 앤 불린과 결혼한다. 하지만 당시의 교황이었던 클레멘스 7세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캐서린은 당시 에스파니아를 포함한 유럽의 가장 넓은 영토를 다스리며 가톨릭을 신봉하였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카를 5세의 숙모였기 때문이다.
이 싸움으로 헨리 8세가 종교개혁을 단행한다. 그리고 6세기 이래 로마 가톨릭 교회 소속이었던 영국 교회를 독립시키고 자신을 수장으로 하는 성공회를 출발시키게 된다.
<대사들> 작품에서 왼쪽 남자는 1533년 당시 영국에 파견된 프랑스 대사 장 드 댕트빌이다. 그리고 오른쪽 남자는 헨리 8세와 가톨릭의 화해를 위해 프랑스에서 밀서를 가지고 건너온 조르주 드 셀 브로이다. 그는 주교 신분으로 후일 프랑스 대사가 되어 스페인이 지배하던 베네치아로 파견됐다.
당시 독일 출신의 영국 궁중화가였던 한스 홀바인에게 부탁해서 그려진 이 작품에서 당시의 복잡한 상황이 그대로 보인다. 정치권력과 교회권력을 상징하는 부유하고 교양 넘치는 두 젊은이 사이의 탁자에는 여러 가지 기구가 보인다. 위층에는 천채를 연구하는 천구의와 해시계가 보이고 아래층에는 지식을 상징하는 지구의와 수학책 그리고 오늘날 기타와 비슷한 악기 류트와 피리가 보인다. 그러나 헨리 8세와 가톨릭의 단절을 상징하듯이 류트의 줄은 끊어져 있고 수학책은 나눗셈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화면 하단에 보이는 해골의 모습이다. 원근법의 극단적인 기법인 왜상 기법으로 만들어진 해골은 작품 바로 옆에서 보아야만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이는 그림의 왼쪽 상단 구석에 보일 듯 말 듯 그려놓은 십자가와 더불어 찬란한 과학과 지식으로 이루어진 문명 속에서도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며 삶은 화려하지만 결국 공허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즉 구원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가톨릭의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가 길어짐에 따라 균형 있고 이상적인 르네상스 작품에 질린 사람들은 보다 강한 자극을 요구하였다. 또한 로마에서 성 베드로 성당을 대규모로 신축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팔기 시작한 면죄부는 북유럽의 많은 성직자와 신도들의 커다란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종교개혁으로 이어졌다.
이에 교황청을 비롯한 가톨릭 세력은 이들에게 엄중하게 경고하는 의미의 강렬한 인상을 주는 종교 작품들이 필요했다. 이때부터 나온 것이 바로크 작품이다. 바로크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루벤스의 <삼손과 델릴라>이다.
이 작품은 구약 성서의 사사기에 등장하는 삼손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바로크 특유의 빛을 이용하여 인물을 강하게 대비시키며 극적인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삼손은 술에 취해 데릴라의 품 안에 쓰러져 잠을 자고 있다. 데릴라의 가슴은 노출되어 있으며 붉은 치마가 침대에 흐드러지게 펼쳐져 그림 전반에 강렬한 관능미가 흘러넘친다.
머리카락이 잘리면 삼손이 힘을 잃는다는 것을 안 남자가 데릴라 옆에서 머리카락을 잡고 가위로 자르고 있으며 데릴라의 뒤쪽에는 이를 지켜보는 노파가 있다. 루벤스는 데릴라의 방을 고급 사창가로 묘사하고 노파를 사창가의 포주로 묘사해 현실감을 더해 주고 있다.
문 밖에는 병사들이 삼손의 눈을 뽑으려고 칼들 들고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혹시 중간에 삼손이 깰까 봐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고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루벤스는 이 작품을 통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던 르네상스 작품에서 벗어나 명암을 통해 드라마틱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바로크 시대의 작품을 완성했다.
북유럽의 종교개혁은 사람들로부터 이제 성당과 사제를 통하지 않고 개인적인 묵상과 기도 그리고 선행으로 구원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심었다.
이는 역사상 처음으로
개인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이었던 대항해 시대와 함께 기존의 질서와 세계를 벗어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불확실성과 회의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이는 자유의지를 가진 르네상스적 인간에서 회의하는 바로크적 인간으로 나아갔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렘브란트의 <자화상>이다.
렘브란트의 관찰 대상은 <나>이다. 생로병사라는 끊임없는 삶의 무게로 회의하고 괴로워했던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 렘브란트의 <자화상>이다. 렘브란트는 솔직하고 자기 분석적인 자화상을 많이 그려 무려 60점의 <자화상>을 남겼다. 이 작품은 궁핍하고 비참했던 말년 즈음인 1660년에 그린 것으로, 소박한 위엄과 번민에 가득 찬 한 인간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유화물감을 겹겹이 찍어 바른 두꺼운 질감이 그의 삶의 무게만큼 무거워 보이는 이 작품에서 <렘브란트의 빛>이라 불리는 강렬한 명암 대비 효과에 무겁고 짙은 농도의 색채가 덧입혀지면서 복잡한 표정 속에 감춰진 인간의 내면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