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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Aug 07. 2020

영국박물관 그리스관

아모르파티

지척에 고향을 둔 오디세우스는 깊은 시름에 빠졌다.


그는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여 목마를 이용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 명장이었다. 그는 전쟁을 승리로 가져오기 위해 10년간을 전쟁터에서 보내야 했다. 그리고 트로이 쪽을 응원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저주로 전쟁을 이기고도 고향으로 돌아오는 데 다시 10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포세이돈의 아들이자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동굴에 갇혔다가 탈출해야 했으며,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유인하여 물에 빠져 죽게 하는 사이렌의 저주도 이겨내야 했다.


또한 혼돈의 바다 카립디스에서 떼 여섯 마리의 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스퀼라에게 6명의 부하를 바쳐야 했다. 종국에는 동료 병사들이 자신의 경고를 무시하고 헬리오스 신의 가축들에 손을 대어 오직 자신만이 살아남아 불사의 요정인 칼립소가 사는 섬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그는 칼립소와 사랑에 빠지며 7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전쟁과 신들의 저주로 인한 고통은 7년의 달콤한 세월을 보내면서 잊혀졌다. 하지만 고향 이타카에 두고 온 자신의 아내와 아들 생각은 그의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칼립소는 오디세우스가 언제 떠날지 몰라 불안했다. 그녀에게 유일한 사랑과 행복을 주었던 그가 떠나면 그녀 역시 불행하게 살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녀는 오디세우스에게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그녀는 신들이 먹는 음식인 암브로시아와 신들이 마시는 음료인 넥타를 건네며, 이 음식을 먹으면 신들과 같이 영원한 젊으며 영원한 삶을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칼립소의 제안을 받은 오디세우스는 몇 주 동안 바다를 보며 고민한다. 그 바다 건너에는 무려 이 십 년간 떠나와 있던 그의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이 있다. 물론 고국으로 돌아가면 그의 아내와 재산을 노리는 무리가 있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싸움도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오디세우스는 영원불멸의 존재가 되라는 제안을 거절한다. 


칼립소의 섬에는 예측할 수 없거나, 불안하거나, 구할 수 없거나, 자유롭지 못한 것은 없지만
오디세우스가 전부를 던질 만한 미래가 없었다.


인간으로서 죽을 수밖에 없지만 그 한계로 살아 있을 때의 열렬한 사랑의 감정을 알고 있는 오디세우스에게, 모든 것이 주어진 채 아무런 일없이 영원이 산다는 것은 오히려 지옥이었다. 인간의 삶은 죽음과 고통의 연속이지만 그렇기에 그 속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과 행복이 있음을 그는 알았다. 이는 신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인간의 삶이었다. 결국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대영박물관 그리스관


인간이 농사를 지으며 도시를 형성하고 문명을 만든 것은 지금으로부터 5,500년 전이다. 이때부터 인간은 자연을 움직이는 신을 섬기고 신의 은총 속에서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자연은 곡식이 자라도록 햇빛과 바람 그리고 비를 내리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천둥과 폭풍을 일으키며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이기도 하였다. 이런 대자연의 변화가 모두 신의 섭리라고 고대 사람들은 믿었다. 이후 인간 사회의 최고 지배자인 왕과 제사장은 신의 대리인으로 절대 권력을 누렸으며 모든 인간들은 신을 받드는 것처럼 왕과 제사장을 섬겨야 했다.


신 중심의 서양문명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시대에 와서 인간 중심으로 바뀐다. 그리스는 지형적으로 산이 많아 왕국을 형성하지 못한 채 조그만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졌다. 도시 국가들은 지중해 해상무역을 하며 번영을 이루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이루어 낸 번영을 노리는 주위의 왕국으로부터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들이 직접 나서서 방어해야 했다.


도시국가의 시민들은 자신의 돈으로 무기와 갑옷을 구입하였으며 스스로 전쟁터에 나갔다. 시민들 스스로 재산을 만들고 스스로 지키는 시스템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가져왔다. 국가의 모든 정책은 왕이 아닌 시민들이 모여서 결정하였다.


신과 왕의 통치가 아닌 시민이 통치하는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는 그리스 사람들에게 커다란 자부심과 더불어 자의식을 심어주었다. 그리스 사람들의 자부심과 자의식은 신 중심의 문명에서 인간 중심의 철학과 문학 그리고 예술을 발전시켜 나갔다. 대영 박물관에서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트로이의 전쟁>과 <오디세우스의 귀환>이라는 전시 코너이다.


대영박물관 2층 70번 방으로 이동하여 그리스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감상하자.  


이 곳에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이야기를 담은 항아리와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유물 중에서 조각이나 건축물의 일부는 많이 남아있지만 회화작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그리스 시대의 회화를 보려면 부득이 항아리 같은 도기에 그려진 그림들을 통해 신화 속 주인공들을 만나볼 수밖에 없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도자기는 크게 검은색 그림으로 장식한 흑회식과 붉은색 그림으로 장식한 적회식으로 나누어진다. 흑회식은 도자기 전체에 검은색 유약을 입히고 그림을 넣는 부분을 남기고 바탕을 긁어내는 방식이다. 인물은 검은색으로 남고 배경은 원래 도자기의 표면인 붉은색이 드러난다. 인물의 세부묘사는 가느다란 칠 필로 그어서 표현한다. 반면 적회식 도작시는 흑회식 도자기와는 반대이다. 적회식 도자기는 표현하고자 하는 인물을 긁어내는 방식으로 긁어낸 부분에 붓으로 그림을 그려 인물을 좀 더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다.




<트로이의 전쟁> 코너에 있는 흑회식 항아리에는 트로이 전쟁 중 아마존의 여왕 펜테실레이아를 죽이는 아킬레우스의 모습을 담은 모습이 그려져 있다. 여기서 아마존은 남미에 위치한 강의 이름이 아니라 현재 터키 인근에 위치한 국가를 말한다. 아마존의 여왕 펜테실레이아는 트로이 전쟁에 나가 수많은 그리스 군을 무찌른 전쟁 영웅이다. 그녀는 결국 아킬레스와 대적하였으나 그가 던진 창에 찔려 전사하였다.


위의 작품에서 아킬레스의 얼굴은 투구로 가려져 있는 반면 펜테실레이아의 투구는 벗겨져 밖으로 내던져진 상태다. 여왕의 창은 아킬레우스의 가슴을 비켜나가고 아킬레우스의 창은 그녀의 목을 관통하여 피가 솟구치는 순간 두 사람의 눈은 마주치고 말았다. 그때 아킬레우스는 아마존 여왕의 아름다움에 반해 한 순간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잔인하기 짝이 없지만 운명적인 사랑을 표현한 이 작품에서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그리스 문명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이 작품 속에 보이는 애절함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신중심의 문명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이다. 적이면 죽음의 대상일 뿐이지 적군을 사랑하는 장면을 묘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오디세우스의 귀환> 코너에 있는 적회식 항아리에는 오디세우스가 사이렌의 유혹을 받지 않으려고 자신을 돛대에 묶은 채 사이렌의 노래를 듣고 있다. 사이렌은 바다의 요정으로 여성의 머리에 물새의 몸을 가진 모습이다. 흑회식에 비해 새의 깃털 묘사가 훨씬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있다.




그녀는 섬에 선박이 가까이 다가오면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선원들을 유혹하여 바다에 뛰어드는 충동을 일으켜 죽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녀들이 암초와 여울목이 많은 곳에서 거주하는 이유도 노래로 유인한 선박들이 난파당하기 쉬운 장소이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유혹을 이겨 내기 위하여 부하들에게 자신의 몸을 돛대에 결박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의 결박을 풀지 말라고 했다. 사이렌의 고혹적인 노랫소리가 들려오자 오디세우스는 결박을 풀려고 몸부림쳤다. 그러나 귀마개를 쓴 부하들은 명령에 순종하여 그를 더욱 단단히 결박하였다. 결국 선박의 항해는 계속되었고 노랫소리는 점점 약해져서 마침내 사이렌의 유혹으로부터 무사히 벗어나 섬을 지나갈 수 있었다. 이에 사이렌들은 모욕감을 느껴 단체로 자살했다고 한다.



그리스 문학의 최고봉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그리스와 트로이가 고대에 실제 벌였던 전쟁을 기반으로 만든 서사시이다. 전편인 <일리아드>는 10년간의 트로이 전쟁을 그렸다. 후편인 <오디세이>는 전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10년의 과정을 그렸다. 두 이야기의 간단한 줄거리와 의미는 아래와 같다.  


신과 인간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질투의 여신인 젤로스가 황금사과를 결혼식장에 던지며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 이 사과의 주인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결혼식에 참석한 여신들은 황금사과를 서로 갖겠다고 제우스에게 요청하지만 제우스는 그 결정권을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자에게 넘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자로 선택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주겠다는 비너스의 유혹에 넘어가 황금사과를 비너스에게 준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적국의 왕비 헬레나였고 파리스가 헬레나를 몰래 트로이로 데려오자 그리스와 트로이는 전쟁을 벌이게 된다. 처음에는 파리스의 형이자 트로이의 왕자인 헥토르에 의해 트로이가 승기를 잡으나 뒤늦게 참석한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에 의해 전세는 역전된다.


아킬레우스는 친구를 죽인 트로이의 명장이자 왕자인 헥토르와 결투하여 승리한 후 헥토르의 시체를 수레에 묶은 채 수 일동안 전장을 돌아다닌다. 이를 보다 못한 트로이의 왕이자 헥토르의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밤에 홀로 아킬레스를 찾아가 아들의 시체를 돌려 달라고 눈물로 간청한다.


이때 아킬레스는 모든 위험을 감수하는 아버지의 사랑에 감명받아 시체를 돌려주면 장사를 지낼 때까지 휴전을 선포한다. 결국 죽음이 난무하는 전장에서도 인간이 인간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연민의 감정만이 유일하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결론으로 <일리아드>는 이야기를 전개해 간다.   


<오디세이>는 승리한 트로이의 장군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귀환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는 당시 배로 며칠이면 갈 수 있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10년이 걸린다. 트로이 전쟁 당시 트로이 편을 들었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방해 때문이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동안 온갖 고난을 극복하였다. 그리고 영생불멸의 신이 되라는 유혹을 이겨내고 고향으로 돌아가 인간의 사랑을 실현하며 위대한 인간으로 행복한 죽음을 맞이했다.


<오디세이>는 신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며 살아갔던 고대 그리스의 인간 중심의 문명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서사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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