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영국박물관 그리스관

by 손봉기

이 모든 것들은 신들의 질투에서 시작되었다.


인간과 신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질투의 신 에리스가 황금 사과를 결혼식장에 던지면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 이 사과를 차지할 것이라 외쳤다.


황금 사과의 주인공을 가려야 하는 제우스는 지상에서 가장 잘생긴 인간이 황금 사과의 주인공을 결정할 것이라며 헤르메스에게 심판자를 찾으라고 이야기한다


날개 달린 모자와 날개 달린 신발을 가진 헤르메스는 사과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세 명의 여신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와 수소문 끝에 트로이 왕자 파리스를 심판자로 결정한다.


심판을 앞 둔 파리스에게 헤라는 부를, 아테나는 강력한 군사력을, 비너스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약속하며 자신을 선택해 달라고 경쟁한다.


파리스가 황금사과의 주인공으로 비너스를 선택하자 비너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트로이의 적국인 그리스 도시국가의 왕비인 헬레나를 지목한다.


파리스가 헬레나를 몰래 데려오자 그리스와 트로이간의 전쟁이 일어났으며 <트로이 목마>라는 오디세우스의 전략으로 10년간의 트로이 전쟁이 그리스의 승리로 끝난다.


하지만 트로이 편을 들었던 포세이돈 신의 방해로 전쟁에 승리한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는 포세이돈의 아들이자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동굴에 갇혔다가 탈출해야 했으며,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유인하여 물에 빠져 죽게 하는 사이렌의 저주를 이겨내야 했으며 혼돈의 바다 카립디스에서 여섯 마리의 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스퀼라에게 6명의 부하를 바쳐야 했다.


종국에는 자신만이 살아남아 불사의 요정인 칼립소가 사는 섬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그는 칼립소와 사랑에 빠지며 다시 7년의 시간을 보낸다.


고향 이타카를 눈앞에 두고 달콤한 사랑에 빠졌던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와의 사랑이 식어가자 고향에 두고 온 아내와 자식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칼립소는 불안으로 오디세우스에게 신들이 먹는 음식인 암브로시아와 신들의 음료인 넥타를 건네며, 이 음식을 먹고 영원한 젊음과 영원한 삶을 얻어 자신과 함께 영원히 살 것을 제안한다.


칼립소의 제안을 받은 오디세우스는 몇 주 동안 바다를 보며 고민한다. 그 바다 건너에는 무려 이 십 년간 떠나 있던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이 있었다. 또한 그의 아내와 재산을 노리는 무리가 있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싸움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오디세우스는 영원불멸의 존재가 되라는 제안을 거절한다. 칼립소의 섬에는 예측할 수 없거나, 불안하거나, 구할 수 없거나, 자유롭지 못한 것은 없지만 오디세우스가 전부를 던질 만한 미래가 없었다.


인간으로서 죽을 수밖에 없지만 그 한계로 살아 있을 때의 황홀함과 열렬한 사랑의 감정을 알고 있는 오디세우스에게, 모든 것이 주어진 채 아무런 일없이 영원이 산다는 것은 지옥이었다.


인간의 삶은 죽음과 고통의 연속이지만 그렇기에 그 속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지는 사랑과 행복의 감정이 있음을 그는 알았다.


결국 그는 신의 길 대신 인간의 길을 선택하며 고향으로 돌아가 가갔다.


영국박물관 2층 70번 전시실로 이동하면 자신의 운명을 사랑한 오디세우스를 만날 수 있다.



<오디세우스의 귀환>이라는 코너에 있는 석고에는 오디세우스가 사이렌의 유혹을 받지 않으려고 자신을 돛대에 묶은 채 사이렌의 노래를 듣고 있는 장면이 새겨져 있고 항아리에는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를 속이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영국박물관 1층 18번 전시실로 가면 인간의 운명을 사랑한 그리스 문명을 보여주는 파르테논 전시실이 나온다.


파르테논 전시실로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가면 아테나 여신의 탄생을 묘사한 동쪽 페디먼트 조각상이 보인다.


중앙에서 무장한 채 서서히 부상하는 아테나의 모습이 파괴되어 보이지 않지만 탄생 장면을 목격하는 몇몇 신들의 조각이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다.



파르테논 최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동쪽 페디먼트 조각상 중 왼쪽 끝에 표범 가죽 위에 한가하게 기대어 한 손에 술잔을 들고 떠오르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마차를 바라보고 있는 신이 디오니소스이다.


디오니소스는 아직 아테나의 탄생 소식을 듣지 못한 채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그 옆으로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와 그녀의 딸 페르세포네 그리고 망토를 펄럭이며 황급히 아테네의 탄생을 알리는 이시리스 여신이 보인다.



중앙을 지나면 삼미의 여신이 보이는데 제일 오른쪽 신이 아프로디테로 그녀가 입은 옷자락들이 몸을 감싸며 살아 숨 쉬는 듯하다.


아프로디테 옆에 무릎을 내어주고 있는 여신이 아프로디테의 어머니 디오네이며 그 옆으로 불과 화로의 여신 헤스티아가 보인다.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하며 머리를 중앙으로 돌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오른쪽 끝에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는 달의 여신 셀레네의 전차를 끄는 말이 보인다. 벌린 입, 커진 코, 뒤로 젖힌 귀가 밤새 달을 싣고 달린 피로감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파르테논 전시실의 중앙으로 내려오면 파르테논의 프리즈에 새겨진 조각들을 볼 수 있다.


아테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행렬을 보여주는 프리즈의 조각상들은 인간의 행렬과 기마 행렬로 나누어진다.


체계적인 진용을 갖추고 무리를 지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기마행렬은 병정들의 머리와 발끝 그리고 말의 머리 등이 파도가 치듯 살아 움직이며 우아하게 아테나로 향하고 있다.



인간의 행렬은 희생시킬 소를 끌고 가는 도살꾼부터 시작하여 머리에 항아리를 이고 가는 이방인과 바구니를 들고 가는 아가씨들 그리고 대머리에 수염이 긴 노인 등이 보인다. 그리고 행렬 끝부분에 제사장인 할아버지와 소년이 아테나 여신에게 바칠 신성한 겉옷을 들고 걸어가고 있다.


다채로운 공동체 정신과 인간에 대한 자부심으로
생동감이 넘치는 조각들은
물질적 풍요로움과 우아함이 넘친다.


인간의 행렬 옆으로 신의 행렬이 보인다.


날개 달린 장화를 신고 날개 달린 모자를 무릎에 올려놓은 신이 헤르메스도 보이고 그 옆으로 술잔을 들고 디오니소스도 보인다. 디오니소스 옆으로 지하의 신 하데스에게 딸을 빼앗겨 슬픔에 잠긴 채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대지의 신 데메테르가 있다. 그녀의 손에는 딸을 찾아 지하를 헤맬 때 사용했던 횃불이 들려 있다.



데메테르의 오른쪽으로 발꿈치에 창 조각이 보이는 전쟁의 신 마르스가 보이며, 그 옆으로 헤라와 제우스가 있다. 프리즈의 끝에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토스와 함께 앉아 있는 아테나의 모습이 보인다.


기원전 492년부터 세 차례에 걸친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은 세계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하지 못하였다면 인간 중심의 민주주의가 신과 왕 중심의 페르시아 문화에 의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 1호인 파르테논 신전은 그리스가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고대 그리스 시민들의 인간과 민주주의 대한 자부심을 보여주는 최고의 건축물이다.


당시 파르테논 신전 건축을 주도한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우리의 정체가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것은 소수자가 아닌 다수자의 이익을 위해 나라가 통치되기 때문이다.

시민들 사이의 사적인 분쟁을 해결할 때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 그러나 주요 공직 취임에는 개인의 탁월성이 우선시 되며 추첨보다 개인의 능력이 중요하다.

가난 때문에 능력자가 공직에서 배제되는 일은 없다.
우리 시민 개개인은 인생의 다양한 분야에서 유희하듯 우아하게 자신만의 특질을 개발하고 있다.

이것이 아테네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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