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현대미술관
오랜만에 찾은 퐁피두센터는 코로나가 지나고 맞이한 주말이라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하지만 안으로 입장하자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작품을 감상하기에 더할 나위 가 없이 좋았다.
퐁피두 미술관에서 제일 먼저 나를 반기는 것은 마티스의 작품이다.
작품 속 두 여인의 하얀 옷과 배경의 진한 빨강과 초록 그리고 얼굴의 색감에서 색채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마티스의 시원하면서 강렬한 감정이 느껴진다.
다음으로 피카소의 작품을 감상한다.
입체파의 대부인 피카소 작품을 들여다보면 모든 인물들이 조각난 채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보여준다. 그 복잡한 인물들 속에 복잡한 내 마음을 보는 것 같아 저절로 힐링이 되었다.
그림책 넘기듯이 다음으로 다가오는 작품은 샤갈의 작품이다. 고단한 인생이지만 늘 즐겁고 행복한 순간을 꿈꾸는 그의 작품 앞에 서면 누구든 얼굴에 미소가 그려진다.
샤갈 전시관을 나와 사람들을 따라 칸딘스키의 작품 앞으로 갔다.
추상주의자 칸딘스키는 형체를 파괴하지만 그 안에 시적인 아름다움이 울려 퍼지고 있어 늘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준다. 그의 색에서 늘 음악적인 리듬이 느껴지는 것은 그가 의도한 것이다.
미술관 테라스로 나가니 바로 눈앞에 펼치진 파리의 모습에서 한가로움과 편안함이 넘쳐난다.
2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퐁피두 센터의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현대 작품들이 나를 반긴다.
그중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이 <벤의 상점>이다.
잡다한 일상용품을 모아서 가게를 차린 벤의 작품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들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 자신 역시 예술이 된다.
다음으로 주세페 페노네 <호흡기 롬 브라>를 만난다.
모든 벽이 월계수 잎으로 구성된 그의 작품 안에서 자연만이 우리의 심장을 편안하게 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이어지는 요제프 보이스의 <궁지>라는 작품 안으로 들어서자 숨이 막힌다.
무거운 천으로 덮인 피아노와 벽에서 소리를 낼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소리를 낼 수 없이 사는 우리의 숨 막힌 삶을 보여주는 것 같다.
다음으로 야코프 아감과 장 뒤뷔페의 작품을 감상한다.
두 작품 모두 시각적 아름다움을 보여주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자신이 시점을 바꾸면 언제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의자>라는 작품 앞에서 현대 미술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실제 의자와 사진 속 의자 그리고 문장 속의 의자 중에 당신의 의자는 무엇이냐고 묻는 작품 앞에서 진짜 의자는 오직 나의 머릿속에 있는 의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퐁피두 센터의 마지막 전시실에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귀중한 액체>라는 작품이 있다.
어둡고 폐쇄된 공간 안에 눈물과 정액 그리고 피를 담은 용기들이 작은 웅덩이가 있는 침대로 액체를 내려 증발시킨다. 침대 근처의 벽에는 젖통 모양의 공과 거대한 남자의 옷이 보이며 그 반대편에 소녀의 셔츠가 보인다.
소녀의 셔츠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당신을 용서하고 사랑한다.
학대받은 아버지의 무거운 기억으로 창조한 이 작품에서 루이스 부르주아는 아버지에 대한 용서를 보여준다.
나는 울컥하는 기분에 서둘러 퐁피두 센터를 나왔다.